BBC의 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기반으로 제작된 김희애 주연의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이 드라마는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의 인연이 남편의 외도로 끊어지게 되고, 아내가 복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많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SBS의 금토 드라마인 <하이에나>는 김혜수, 주지훈이 주연을 맡은 변호사들의 생존기를 담은 드라마로, 얼마 전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매의 눈을 가지신 분이라면, 이 두 드라마에 모두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작품이 소품으로 등장한 것을 눈치 채셨을 거예요. 아름다운 색감 때문인지 실내 인테리어 소품으로 국내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프린트를 구입한다고 하는데요, 이번 기회를 통해 마크 로스코의 작품 세계에 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할게요.
19세기 사진기의 발명으로, 더 이상 미술은 현실과 닮게 잘 그리는 것이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아졌습니다. 기록으로서의 회화의 의미가 줄어들게 된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오히려 작가의 의도, 작품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철학적 의미, 사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작품의 본질 등이 더욱 중요해지게 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인지, 혹은 얼마나 테크닉적으로 잘 그렸는지는 20세기 이후의 미술에서 더 이상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현대미술을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심지어 몇몇 작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모두 자신이 직접 그리지 않고, 어시스턴트를 고용해 자신의 개념을 시각화하는데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만큼 아이디어, 개념이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드라마에 나온 마크 로스코의 그림 역시 누군가의 눈에는 그냥 몇 가지 색깔을 뭉뚱그려 칠해 놓은 것으로만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맥락을 알고나면 작품의 중요성에 대해 조금은 더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본명은 마르쿠스 로스코비츠로, 러시아에서 태어나 1913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1938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얻으며 이름을 마크 로스코로 개명 했습니다. 1930년대 초반부터 전쟁을 피해 유럽의 예술가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동했고, 미국 미술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1940~50년대 뉴욕에서는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마크 로스코 역시 그 핵심 주역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스코의 작품은 ‘색면 추상(Color Field Abstract)’이라고 불립니다. 그는 전쟁의 허무감을 극복하기 위한 근원적 상징물을 제작하기 위해 단순하고 강렬한 색채만을 이용해 화면을 구성하였습니다. 생략의 과정을 통해 회화가 가진 정신적 의미에 더욱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는 작품 안에 구체적 형상이나 사물을 재현하거나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색채가 가진 정서적 효과를 극대화하였습니다. 로스코의 그림은 어둡거나 밝은 바탕을 배경으로 모서리가 부드럽게 처리된 강렬한 색채가 돋보이는 추상화입니다. 색채로만 구성된 그의 회화는 오묘한 색감을 자아내며, 그가 가진 근원적 감정이 관객에게 전달 될 수 있도록하였고, 실제로 작품의 크기가 관객을 압도할 만큼 큰 경우가 많아 그림 앞에 서면 형언하기 어려운 아우라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작품의 의미를 설명할 때 ‘숭고(sublime)’라는 단어를 쓰기도 합니다.
로스코는 자신의 그림에 관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나는 색채나 형태나 그 밖의 다른 것의 관계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오직 비극이나 황홀경, 운명과 같은 기본적 인간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다. …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가진 것과 똑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Selden Rodman, Conversations with Artists, New York, 1957, p. 93;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 20세기 시각예술, 김금미역, 예경, 2006. P, 260 재인용.
그만큼 그는 회화를 일종의 종교처럼 받아들이고, 정서적인 교감에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50여 년의 작품 생활을 지속하면서 그의 작품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했는데요, 특히 말기의 작품에서는 화면 구성이 더욱 단순화되면서 색채의 조합 역시 우울해지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울증과 건강의 악화로 1970년 2월 25일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1971년 미국의 휴스턴에는 로스코 채플(Rothko Chapel)이 설립되었습니다. 이 곳은 컬렉터인 메닐 부부(John and Dominique Menil)가 모든 종교가 신념을 초월해 한 곳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로스코에게 의뢰한 공간입니다. 이 공간에는 로스코의 작품 14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넬슨 만델라, 달라이 라마 등 수많은 순례자, 지도자들이 이곳을 방문하였으며, 평화와 인권의 전당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8각형의 구조를 가진 로스코 채플에 들어서면 고요함과 적막함에 작품과 오롯이 대면하고, 또 명상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매년 100개국 이상에서 10만명의 관객이 찾는 이곳은 2019년 리모델링에 들어가 2022년 완공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미국 휴스턴에 방문할 예정이 있으시다면, 직접 한 번 방문해 보시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부부의 세계>와 <하이에나>에서는 로스코의 작품이 인테리어 소품으로 비교적 가볍게 활용된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원작이 아닌, 프린트로 구입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내에 걸기 적합한 너무 크지 않은 사이즈로 만들어졌고, 또 색감의 표현이 원작만큼 큰 울림을 주지는 못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프린트를 구입해서 집에 걸어두신다 해도, 그 작품의 의미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