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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리치 Oct 02. 2018

'단톡방'에서 축하해줬던 시간

시간부자 104화


언제부턴가 톡 앱을 열면 1대1 방보다 단체 톡방이 항상 우선 순위로 올라가 있다. 이전의 단톡방은 특별한 공지 사항을 알리는 용도로써만 사용됐는데 이제는 개개인의 이야기도 상당부분 단톡방에서 이뤄진다. 단지 기술의 발달 때문인지, SNS가 소통의 주된 매체로 자리 잡은 탓인지 점점 '1대1'보다 '1대다'의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져가는 듯하다.


단톡방에서는 특정인 누구를 지칭해서 말하기 보단 개인의 심정을 허공에 말하듯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인을 지칭해서 얘기를 건넨다 해도 그 이면에는 톡방의 다른 인원들도 나의 이야기를 볼 거라는 묘한 심리가 깔려 있다. 마치 모두가 보고 있는 토크쇼처럼 말이다.


토크쇼에서 MC가 게스트에게 사적인 질문을 건네고 게스트는 깊게 고민후 마음 속의 이야기를 어렵게 고백하지만 그 고백은 다시 MC에게로 향하지 않는다. 현장에 있는 수많은 카메라 맨들과 스텝들을 포함해 그 프로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로 향한다. MC도 게스트도 어렵사리 꺼내어 서로에게 건넨 이야기였지만 모두가 듣고 있기에 그것은 진심의 고백이 아닌...


진심의 공지사항이 되고 만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juble93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앱의 알람이 친구의 생일 소식을 알리면 톡방의 누군가가 대표로 생일축하 메세지를 보냄으로써 나머지 멤버들이 알게 되고, 결국 모두가 축하 메세지를 전달하는 아름다운(?) 상황이 연출된다. 


늘 보던 장면이고 늘 해오던 일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나는 이 상황이 뭔가 이상했다. 분명 훈훈한 장면인데 왠지 모를 공허함, 쓸쓸함, 외로움이 느껴졌다. 생일을 축하하는 입장에서도 받는 입장에서도 모두 그러했다. 왜일까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문득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고1 때였다. 쉬는 시간이었고 나는 책상에 앉아 밀린 숙제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교실 문이 열리더니 친구 A가 안으로 들어와 모두에게 외쳤다.


"야, 오늘 B의 생일이래!" 


그러자 반에 있던 친구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생일축하한다는 말들이 터져 나왔다. 나도 그 환호에 동참하여 축하한다고 외쳤다. 그런데 나의 눈은 B가 아닌 밀린 숙제를 쳐다보고 있었다. 축하해주고 있는 대세의 흐름에 이끌려 축하의 멘트를 얼떨결에 보냈지만 나는 숙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환호가 끝난 후 B가 머쓱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얘기했다. B를 바라보니 B는 그 고마움을 친구들이 아닌 칠판을 쳐다보며 얘기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의 생일이 되었다. 한 친구가 나의 생일을 사람들에게 선포했고, 여기저기서 축하의 메세지들이 들려왔다. 무척이나 기분이 좋고 고마웠다.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데 순간 B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누군가는 다른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누군가는 밀린 숙제를 하면서...

누군가는 폰을 만지면서...

누군가는 교실 문을 나서면서...

누군가는 내 등짝을 치고 지나가면서...


나를 축하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 고마워 해야하는 것이었을까? 고심끝에 나는 그 대상을 특정인이 아닌 나에게 축하를 외쳐준 같은 반 너희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고맙다고 외쳤다. B처럼 칠판을 보면서 말이다. 


수업이 끝나고 가방을 정리하는 데 친구 C가 다가왔다. 그리고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얘기했다. 


"생일 축하해, 이거 선물이다."


5천원권 도서 상품권이었다. 사실 C와 그렇게 친한 편은 아니었다.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바뀌면서 자연스레 멀어지게 됐고 그가 졸업이후 어떤 대학을 갔는지 취업은 했는지 어떻게 사는지 알지 못한다. 나에게 축하를 외쳤던 친구들을 떠올리면 사람의 모습이 아닌 '고1'이라는 단어와 '그날의 상황' 그리고 '교실의 모습' 으로 기억돼있다. 그러나 친구 C를 떠올리면 그에 대한 모든 것이 마음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C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나를 축하해주던 그날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것은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친구의 진심이 허공이 아니라 정확하게 나를 향하여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 또한 정확하게 그의 눈을 바라보며 나의 진심을 전달했다.


"고맙다. OO아..."




"행복하길 바래"

"잘 됐으면 좋겠어"

"항상 건강해라"


평소 친구 사이에서 이런 표현들을 서슴지 않고 얘기하거나 듣는 것은 쉽지 않다. 꽤 낯간지럽다. 남자들끼리 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1년에 한 번은 유일하게 감성적으로 바뀌어 어떤 표현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온다. 


그날이 바로 생일이다.


어찌보면 친구의 생일은 친구에게 진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1년중 유일한 날일지도 모른다.


그 진심을 공지사항처럼 허공에 날려 버리지 말고 정확히 그의 마음을 향해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단톡방이 아닌 1대1 대화방을 열어야 하는 수고만 하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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