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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리치 Jan 06. 2019

시간을 버리는 것 또한 사치이다.

시간부자 137화

싱가포르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놀러갔다. 약 5만원의 자유이용권을 구매후 들어가려는데 또 하나의 티켓이 보였다. 바로 익스프레스 티켓이었다. 이것을 추가로 구매하면 놀이기구를 대기시간없이 탈 수 있는 우선권이 주어졌다. 아주 특별한 티켓이었다. 그런데 가격이 약 6만원이었다. 본래의 티켓보다 더 비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만약에 그것을 산다면 주어지는 혜택들이 분명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인당 11만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자유이용권 두명분보다 비싼 가격으로 혼자서 누리는 이 상황이 너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나와 아내는 한참을 고민끝에 '간만에 해외에 나왔는데 그냥 한 번 질러보자'는 심정으로 그 티켓을 구매했다. 총 22만원의 비용을 지불했다. 단지 놀이동산 입구를 입장하는데 말이다.


과하게 돈을 쓴 것에 대해 마음 한 켠에 불편함으로 남아 노는 데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가 됐다. 그러나 그 우려는 첫번째 놀이기구 입구 앞에서 단번에 사라지게 됐다.


입구위의 화면에 예상 대기 소요시간이 30분이라는 메세지가 떴고 그 밑으로 줄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옆에 또 하나의 통로가 보였다. 바로 익스프레스 티켓 구매자를 위한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10초 정도 들어가니 놀이기구가 눈앞에 바로 보였다. 우리에겐 이 기구를 타기 위해 29분을 기다린 사람보다 먼저 우선권이 주어졌다. 이 느낌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이제껏 살면서 대기시간없이 놀이기구를 타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놀이동산에서 겪는 일반적인 경험은 1시간을 기다려서 3분만에 즐기는 시간이 끝나버리는 허무함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다음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또 몇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다. 익스프레스 티켓은 그러한 것들을 사라지게 해줬다. 놀이기구도 재밌었지만 대기시간없이 기구를 타는 과정의 경험은 더욱더 특별했다.


그 특별함의 이유에는 두가지가 있었다.


첫번째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30분째 입구 근처에서 기다리면서 지루함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제약없이 기구를 바로 탈 수 있는 특별한 통로로 들어가는 우리의 모습이 분명 달리 보였을 것이다. 하나의 무리를 단번에 제끼며 들어가는 순간마다 그 무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에 어떠한 감정들이 담겨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일반 티켓구매자들보다 좋은 환경에 있는 우리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신분상승이 된 느낌과 흡사했다. 단 돈 6만원에 말이다. 물론 그 6만원의 추가 비용을 내기까지 많은 심적 고민들이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시간을 사 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명품 브랜드 옷을 살 때 누가 봐도 그 브랜드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디자인 돼있을 때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큰 맘 먹고 비싼 돈을 들여 사는데 명품인게 티가 나지 않으면 손해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기능적으로 큰 차이가 없더라도 명품인게 티가 나면 그래서 고급스러워 보인다면 구매욕구가 솟구친다. 반대로 기능적으로 훌륭하지만 이것이 명품 브랜드인지 일반 브랜드인지 구분이 안간다면 구매욕구는 낮아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사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품 옷을 입었을 때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속상한 마음이 생긴다.


시간을 산다는 것은 기능적으로는 편리하겠지만 디자인도 없고, 브랜드도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기에 더욱 사치라고 느껴졌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시간이 완벽하게 기능의 차이를 발휘하여 우리와 일반 티켓 구매자의 사이를 갈라 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눈에 띄는 차별적인 혜택이 주어졌다. 그것은 어떤 비싼 명품들보다도 고급스런 명품 대접을 받는 느낌을 겪게 해주었다. 다시 말해서...


시간이 곧 명품이었던 것이다.


두번째는 시간을 얻게 되니 시간을 원하는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놀이동산이라는 시스템의 시간속에 나를 맡겨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구매함으로써 그 시스템의 시간들을 나의 상황에 맞춰 원하는대로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익스프레스 티켓이 없었다면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모두 관람하는 데 하루의 시간도 부족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들을 기다리는데 소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티켓으로 인해 반나절만에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모든 것을 아주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체력의 고갈없이 저녁의 다른 일정들도 진행할 수 있었다. 즉, 단지 남들보다 좀 더 빨리 타기 위해 6만원을 쓴 것이 아니었다.


하루의 시간을 원하는대로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산 것이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에 쫓기어 정작 자신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적 자유를 원하지만 재산이 많아져도 정작 자신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것에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시간을 사는 것이 사치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재산에 비해 과한 돈을 의미없이 쓸 때 사치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시간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생명의 길이에 비해 과한 시간을 의미없이 쓸 때 내 생명에 대한 사치가 된다.


그러나 둘의 차이점이 있다. 재산은 늘릴 수 있지만 내 생명의 시간은 이미 정해져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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