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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리치 Jan 13. 2019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는 시간

시간부자 139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시절 강북과 강남을 오고 가야했다. 거리는 왕복 40km였고 2시간 정도가 매일 소요됐다. 그것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미 주변의 대다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해가 되어 나는 지방 도시 A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곳에선 도시와 도시를 오고 가야 했기에 왕복 50km를 매일 다녔다. 대신 교통량이 서울보다 적어 출퇴근 시간은 이전보다 빨라진 왕복 80분 정도면 충분했다. A지역에 사는 주변의 대다수 사람들 또한 나와 비슷한 시간과 거리로 출퇴근을 했다. 나는 이전보다 시간이 단축된 것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80분 출퇴근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같은 시간이었는데도 누군가에겐 기쁨이,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상이 된 것이다. 이후로 나는 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고, 어느덧 80분의 출퇴근 시간은 나에게도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니 좋아진 것도 당연한 것이 되었다.


다시 다음해가 되어 나는 지방도시 B로 옮기게 됐다. 이곳에선 시간과 거리가 모두 단축되었다. 도시와 도시를 오고 감에도 불구하고 왕복 30km에 1시간이면 출퇴근을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마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가 된 기분이었다. 출퇴근을 하면서 느꼈던 정신적 스트레스와 지루함은 말끔히 사라지게 됐다. 그리고 그 기분을 B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정말 힘들겠다. 진짜 고생하는구나.


B지역 사람들에게 시간과 거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출퇴근 시간 및 거리가 도시B안에서만 움직이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아무리 설명하여도 그냥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바로 출퇴근시 도시 밖을 벗어나느냐였다. 그것이 편안함과 고생함의 경계를 가로짓는 주된 기준이었다. 나는 분명 서울에서 살던 때보다 훨씬 더 좋아진 출퇴근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B지역 사람들에겐 그저 불행한 사람일 뿐이었다. 이후로 오랜 시간을 그들의 가치 체계속에 파묻혀 지냈고, 어느 순간 다른이들에게 나의 출퇴근 환경을 얘기하는 것이 부끄러워진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하니 마치 내가 고생하는 것 마냥 느껴진 것이다.




사람은 무언가를 판단할 때 평소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 또는 좋음 나쁨을 평가한다. 그것이 지속되면 가치관은 확고해지고 시간이 흐르면 개인의 가치관을 넘어 하나의 진리처럼 자리잡게 된다. 진리는 주변으로 퍼져 나가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결국 평가의 대상이 나를 넘어 주변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면 서로가 서로를 평가하게 되고, 평가의 빈도가 많아져 데이터가 쌓이게 되면 하나의 평균치 즉 평가의 타협점이 생성된다. 그 타협점이 바로 집단의 가치관이다. 집단의 가치관 역시 시간이 흐르면 확고해지고 그것은 가치관을 넘어서 집단의 진리로 자리 잡게 된다. 집단의 진리는 구성원의 인식을 통제한다. 인식이 통제되면 사실이 사실로서가 아닌 필터링을 통과하여 가공되어버린 현상으로 보이게 된다.


"나는 기차로 출퇴근을 해."

-> "정말? 힘들겠다. 고생하며 사는구나."

-> "와! 안막히고 좋겠다."


"나는 사업을 할 생각이야."

-> "그건 너무 불안한 삶이야."

-> "멋있다. 나도 도전해보고 싶어."


"나는 매일 새벽에 운동을 해."

->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니."

-> "그래? 건강해졌겠다."


"나는 결혼을 해야 할까?"

-> "최대한 늦게 해라."

-> "그럼. 결혼해서 빨리 자리 잡아야지."



내가 좋아했던 일이 다른 집단에서는 싫은 일이 된다.

내가 기뻐했던 일이 다른 집단에서는 슬픈 일이 된다.

내가 편리하게 느꼈던 일이 다른 집단에서는 불편한 일이 된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진실이 다른 집단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진실이 된다.


내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 벗어나게 될 때 내가 알던 것이 진리가 아니었다는 게 보인다. 반대로 벗어나지 않는다면 내가 알던 것을 절대적 진리로 믿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람은 언제나 다수의 의견을 토대로 기준삼아 판단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의 상대적 관점을 알기 위해서 매번 내가 속한 집단을 탈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질문하고 또 질문해야 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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