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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리치 Jan 16. 2019

말을 끊지 않음으로써 얻는 시간들

시간부자 140화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환자의 주요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주요 문제를 의학 용어로 chief complaint 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환자의 가장 불편한 곳 혹은 가장 아픈 곳을 뜻한다. 주요 문제를 알게 되면 그것을 유발할 수 있는 질환들을 토대로 하여 환자에게서 추가 정보를 얻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주요 문제와 연관성이 있는 질문들을 계속 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가능성이 낮은 질환들을 하나씩 배제시켜 나간다. 이것이 질병을 진단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본 과정이다.


그런데 환자는 자신의 주요 문제외에 연관성이 없는 문제들도 함께 의사에게 얘기하고 싶어한다. 환자는 그것도 자신의 주된 문제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환자의 사소한 얘기들조차 모두 들어줄 여건과 여유가 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환자 한명당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에 그 시간안에 효율적으로 질문하고 정보를 얻어내야만 한다. 즉 chief complaint 위주로 대화를 이끌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환자가 불필요한 이야기를 꺼내면 말을 끊어야 한다.


그렇게 의사로서 진료를 한지 십여년이 넘어가게 되니 상대가 불필요한 말을 할 때 말을 끊는 것이 직업병처럼 돼버렸다. 물론 집중력있게 환자의 질병을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어느정도 불필요한 말을 끊으면서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이 필요하긴 하다. 문제는 진료가 아닌 일반인들과 하는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그 습관이 드러난다는데에 있다.


말을 지속적으로 끊다보니 어느 순간 상대가 불필요한 말을 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말을 끊는다는 것에는 다음의 두가지 전제가 있다.



1. 나의 말이 상대의 말보다 중요하다.

2. 나의 말이 맞고 상대의 말은 틀리다.


이러한 이유로 일단 말을 끊기 시작한다. 그 안에는 묘한 심리가 담겨 있다. 하나는 의미없다고 생각되는 상대의 말을 듣기 싫은 마음, 다른 하나는 상대는 이미 틀린 말을 하고 있으니 내가 먼저 말함으로써 상대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일찍 깨우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자신의 급한 성격이 상대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합리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합리화도 지속되고 반복되면 결국 습관이 된다.


습관이 되면 자신이 상대의 말을 끊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되는 경지에 이른다.


그렇게 되면 더이상 상대 말의 중요도 또는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 목적은 오로지 하나다. 상대가 나의 말에 설득이 되느냐이다.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대화의 최종 목적이 되면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없어진다. 기회만 노리게 된다. 상대의 말을 끊는 기회를 말이다. 말을 최대한 빨리 끊음으로써 상대가 빨리 설득이 되니 기다리기 지루한 나에게도, 좀더 빠른 시간안에 깨우침을 얻은 상대에게도 윈윈이 되는 순간이다. 빨리 설득된 상대는 똘똘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끝내 설득이 되지 않는 상대는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스러운 사람으로 간주된다. 소통이 목적이었던 대화는 없어진다. 상대에게 퍼붓는 일방통행의 연설만이 남아있게 될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고 있다. 이야기를 할 때 상대에게 전달되는 것은 나의 목소리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끊은 나의 태도 또한 같이 전달이 된다. 상대의 눈에는 나의 격한 감정, 나의 성급한 심리, 나의 무례한 태도가 함께 보이게 된다. 그것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마음을 닫게 만든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듣지 않게 된다. 그런데 애초에 나 역시 상대의 말을 끊었기에 상대의 얘기를 듣지 않은 상태다. 


결국 둘은 대화라는 명목하에 서로의 얘기는 듣지 않은 채 소중한 시간만 버리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오랜 시간을 이렇게 살아왔기에 대화를 할 때 말을 끊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지에 이미 이르렀다. 그래서 이것을 고치기 위해 아내에게 부탁을 했다. 내가 말을 끊을 때마다 나에게 신호를 달라고 말이다. 그뒤로 알게 됐다. 내가 열번 중 아홉번은 상대의 말을 끊는다는 것을 말이다. 


신호를 받을 때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는 연습을 했다. 바꿔 말하면 말로 껴들고 싶은 것을 참아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내가 말을 끊지 않으면 상대가 자기만의 논리를 이대로 확고히 다져버릴 것 같아 불안했고, 불필요한 얘기를 듣다가는 내가 말할 타이밍을 잃어버릴 것 같아 답답했다. 그래도 일단은 참았다. 말을 끊지 않음으로써 좋은 점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느껴지지 않았으나 기왕 시작한 것이니 한달은 버텨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연습을 한 덕분인지 말 끊는 빈도는 현저히 줄었으나, 나는 찰나의 순간을 또 참지 못하고 친구의 말을 끊게 되었다. 그러자 아내가 적나라하게 신호를 줬다.


"오빠, 친구가 얘기하려고 하는데 말을 끊으면 어떡해?"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친구에게 정중히 사과를 하고 하려던 얘기를 다시 해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는 얘기를 이어갔다. 나 또한 최대한 집중해서 친구의 얘기를 들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얘기가 끝날 무렵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친구에게서 나왔다.


너가 하려던 이야기는 뭐야?


그때 깨닫게 됐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해서 들어주어야 하는 이유를 말이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첫번째로 해야 하는 것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끝까지 들어주는 것과 경청해서 들어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 태도는 상대로 하여금 마음을 열게 만든다. 상대가 마음을 열면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상대 또한 나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진짜 필요한 것은 화려한 말발과 정교한 논리가 아니다. 그것은 나중 문제다. 일단은 상대가 마음을 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그것은 곧 상대가 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준비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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