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부자 150화
실용음악 학원에서 보컬 레슨을 받았던 적이 있다. 당시 나의 최고 음역대는 2옥타브 미였다. 그래서 노래 중에 미보다 높은 구간이 나올 때면 항상 신경이 쓰이고 긴장을 했다. 그 구간에서는 언제나 음이탈이 났기 때문이다.
어느날이었다. 강사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연습하고 있었다. 그 노래는 파#구간이 두번이나 나오는 노래였다.그런데 그날따라 유난히 노래하는게 어려웠다. 평소 소리내는 데 문제없었던 미구간이 매우 어렵게 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가끔 어거지로 성공했던 파#구간은 계속해서 음이탈이 났다.
강사가 말했다.
"오늘 부르는 노래는 지난번이랑 좀 다르네요."
"네. 평소 잘 나오던 음도 어렵게 나오고...아무래도 컨디션이 별로인가봐요."
사실 컨디션이 그닥 나쁘진 않았다.
"원인이 뭘까요?"
"원인이요? 글쎄요...날이 건조해서 그런가?"
강사는 웃으며 말했다.
"피아노를 한 키 올렸어요."
알고보니 나는 원곡보다 한 음이 더 높아진 곡을 부르고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잘 부르던 구간도 어렵게 부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어렵게라도 나온 음은 평소 내가 낼 수 없었던 파#음 이었다. 한 키가 올라감으로써 파#이 된 음을 나는 미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소리낼 수 있는 구간이라고 인식한 나는 어렵게나마 그 음을 내고 있던 것이었다. 강사는 말을 이었다.
"고음을 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들 중 하나는 처음부터 그 음을 내지 못할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에요."
미가 나의 최고 음역대라고 말을 한 순간...
'기브앤테이크'에 나온 능력치에 관한 재밌는 연구하나를 소개한다.
심리학자 애니트라 칼스텐은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시킨 후 지쳐서 더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지속하게 했다. 시켰던 일은 '그림 그리기', '큰 소리로 시 낭독하기', 'ababab반복해서 쓰기' 였다. 피실험자들이 육체적으로 완전히 지쳐버려서 일의 포기를 선언한 순간 그들에게 또다른 미션을 주었다.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
'ababab'를 반복해서 썼던 남성이 손에 감각이 무뎌져 한 글자도 쓰지 못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순간 연구자는 그에게 다른 목적으로 이름과 주소를 써달라고 하자 그는 아주 쉽게 그것을 적어내었다. 이런 현상은 다른 피실험자들에게도 똑같이 나타났다. 지쳐서 팔을 더이상 못올리지도 못하겠다며 포기한 한 여성은 자신의 머리를 만질 때에는 아무런 불편감없이 팔을 올렸다. 목이 쉴 때까지 큰 소리로 시를 낭독한 참가자는 그 일을 불평하는 소리를 하는 순간만큼은 목소리가 정상적으로 나왔다.
하던 일의 맥락이 바뀌자 마치 처음 일을 시작한 사람처럼 새로운 에너지를 뿜어낸 것이다. 일의 성격이 바뀌었을 뿐이지 하던 일의 연장선이었는데도 말이다. 바꿔말하면 그들이 육체적으로 지쳐 한계에 달해 하던 일의 포기를 선언한 것은 그것이 실제 한계였던 것이 아니라...
미가 나의 최고 음역대라고 믿어버렸기에 파#을 소리내려하는 순간 내 몸의 모든 근육들은 음이탈이 날 상황에 준비했다. 도전하기 전부터 이미 실패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음이탈을 냈다. 그러나 파#을 소리낼 수 있는 음의 영역이라고 믿어버린 순간 내 몸의 모든 근육들은 실패를 단 1%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하고 한계에 부딪치고 그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치는 여기까지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알고 있는가? 그 누구도 그 시점이 당신의 한계치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믿어버린다. 이후부터 그 시점을 맞이하게 되면 당신의 근육들은 모두 실패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당신이 그렇게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그렇게 묶어 두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최고 음역대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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