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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리치 Feb 13. 2019

'갑질'을 하는 시간의 의미

시간부자 148화

종합병원 근무시절이었다. 어느날 한 간호사가 나에게 고민을 토로했다. 담당중인 환자 A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 간호사의 고충은 이랬다.



A는 의식불명으로 응급실에 내원후 내과병동에 입원한 환자였다. 응급처치를 받은 다음날 A의 의식은 돌아왔고, 입원3일째부터는 체력이 회복되면서 일상적 움직임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그러자 A의 돌출행동이 시작됐다. A는 간호사의 호출이 필요할 경우 '아가씨'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그뒤로 이어지는 그의 요구는 각양각색이었다.


'부르면 빨리 와라'

'식사 좀 빨리 갖다줘라'

'내가 원하는 약을 처방을 해달라'

'이불이 얇다'

'수건이 부족하다'

'실내화를 구해줘라'


그의 요구가 들어지지 않거나 지연될 경우 그는 모든 짜증을 담당 간호사에게 내곤했다. 심하게 화를 내거나 폭행의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항상 이런 말을 뒤에 붙였다.


'나를 위해 있는 병원인데 왜 나에게 모든 혜택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거냐'

'이 병원에서 월급받으면서 이렇게 일할거냐'



그 간호사의 얘길 들은 나는 대답했다.


"에이, 설마요...A가 얼마나 착하시고 매너있는 분인데.."


간호사가 다시 말했다.


"선생님 오실 때만 그렇게 공손하게 태도가 바뀌어요. 그래서 더 소름돋아요."


A를 담당했던 모든 간호사들의 얘기들 그리고 A와 같은 병실을 사용하고 있던 다른 환자들의 얘기를 통해 추후 그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됐다. 담당 의사였던 나 혼자만 진짜 실상을 모르고 있던 것이었다. A는 퇴원이 가까워질 무렵 몸이 춥다며 이불을 서너개씩 더 요구했다. 그리고 퇴원 이틀전 이불과 함께 야반 도주했다.


A는 시로부터 의료비 전액을 지원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중 한 명이었다.




종합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가장 많이 마주하는 사람이 바로 간호사다. 그들은 환자의 불편사항을 첫번째로 해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수많은 요구사항들을 들어준다. 그러다보니 환자는 가끔 헷갈린다. 내가 간호사위에 군림해있는듯 하고 그들을 마음껏 부려도 될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마치 개인비서처럼 말이다. 그것은 주어진 혜택을 권력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을 누려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소위 '갑질'에 대해 얘기할 때 주로 회자되는 대상은 부와 권력을 지닌 특정 일부 집단이다. 그러나 실상은 이 사회에 있는 모든 부류에서 '갑질'이 나타난다. 사회적 약자 집단에서조차 말이다. 위의 사례가 그것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갑질'을 특정 집단의 문제로만 보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일 수 있다.


그렇다면 환경의 문제일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순간적으로 주어진 권력이 '갑질'을 하고 싶게 끔 요동치게 만드는걸까? 필자의 경험상 권력이란 환경과 '갑질'의 연관성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냥 사람마다 달랐다.


사회적 약자의 환자일지라도 위의 사례와 다르게 최고의 매너를 보여준 사람도 있었고, 너무도 착한 심성때문에 두발벗고 나서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VIP병실을 이용하는 부유층의 환자들 또한 누군가는 '갑질'같은 행동을 남발했고, 누군가는 최고의 예의를 갖추어 의료진을 대우해줬다. 아무리봐도 '갑질'은 부, 권력, 직위, 주어진 환경의 문제와 연관성이 없었다.


그냥 그 사람의 문제였다. 애초부터 '갑질'성향이 있는 사람이 그러한 환경이 갖춰졌을 때 물만난 고기처럼 '갑질'을 뽐내듯 발휘했다. '갑질'성향이 없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 닥쳐도 자신의 품성을 유지하였다. 그럴 사람이 그러했고 그러지 않을 사람은 예상대로 그러지 않았다.


'갑질'성향이란 누군가를 군림하고 싶은, 지배하고 싶은, 그래서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경외감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 상태를 뜻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군림하기 어려울 때, 지배하기 어려울 때, 나를 경외하지 않을 때 '갑질'이 폭발한다. '갑질'은 상대로 하여금 내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면 '갑질'을 한다는 것은 모든 관계에서 내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해야만 하는 나의 마음 상태를 뜻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상대를 굴복시켜야만 나의 존재가치가 느껴지는 아주 불안한 상태인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 같지만 자세히보면...사람이 자리를 만든다.


애초부터 그런 행동을 해오던 사람이 그 자리에서 더욱 심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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