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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리치 Jul 28. 2018

67화 - '읽씹'에 빼앗긴 시간

타임리치


당신이 친구에게 묻는다.


"OO야, 혹시 오늘 무슨일 있어?"

"......"


혹시 듣지 못한 건가 해서 친구를 향해 다시 묻는다.


"무슨일 있었어?"

"......"


친구는 당신의 눈을 분명 봤지만 역시 대답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당신은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왜 대답을 안하지'

'무슨 심각한 일이 있었나'

'내 얘기를 듣긴 한거야?'

'나를 무시하는 건가'

'대답할 가치를 못 느끼는 건가'


이런 상황을 빗대어 '말을 씹는다' 는 은어적 표현이 사용된다.


말이 씹히는 느낌은 상당히 힘이 빠지고 유쾌하지 않다. 그 기분은 아무일도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로지 그 친구의 반응에 대해서만 집중하게 된다.


상대로 인해 기분이 나빠지게 되면 나의 시간을 상대에게 모조리 빼앗겨 버린다.


대화에서 말이 씹히게 되면 좋은 관계가 유지되기 힘들고 때로는 싸움으로 까지 번질 수 있다.



친구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메세지 확인은 분명히 했는데 답이 없다. 이틀이 지나서야 답문이 왔다.


"아...미안...중요한 일 때문에 바빠서 답을 못했네...무슨 일이야?"

"아니야...물어볼 게 있었는데 해결됐어.^^"


스마트폰이 보급화되고 '톡'으로 하는 대화 빈도가 높아지면서 메세지를 씹는 현상도 같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을 은어적 표현으로 '읽고 씹는다'고 한다. 줄임말로 '읽씹'이다. 상대의 메세지를 확인은 했지만 답장은 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읽씹'의 빈도는 말로 하는 대화에서 보다 훨씬 더 높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행하기도 하고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너무 흔해져서 무뎌지기도 했고 그저 바쁘겠거니 생각한다. 기분이 그닥 좋진 않으면서도 말이다.


오히려 왜 '읽씹'을 했냐고 따지는 쪽이 쿨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말로 하는 대화...

톡으로 하는 대화...

둘다 모두 대화하는 상황인데 '씹히는' 순간에 대해서는 왜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것일까


인터넷이 퍼지고 이메일 시스템이 주된 소통이었던 시절엔 그랬다. 우체부를 통해 배달되는 편지의 연장선이었기에 상대의 답장을 기다리는 것은 그냥 당연한 일이었다.


2G시대로 넘어오면서 문자를 보내는 일이 많아졌지만 이메일을 주고 받던 시스템의 습성이 남아서인지 답장을 오랜시간 기다리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하루 이틀 이상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것은 상대가 문자를 읽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젠 4G를 넘어 5G의 시대로 가고 있다. 모든 메세지가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직접 말로 하는 대화에서 상대가 내 말을 들었는지 확인하는 일보다 톡상에서 상대가 내 메세지를 읽었는지 확인하는 일이 더 쉬워졌다.


전화는 받지 않으면서 '왜 전화했어'라고 메세지가 오는 세상이 됐다. 그만큼 말보다 메세지가 편해진 세상이 된것이다.


이제는 문자에서 감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모티콘 하나로 미세한 심리표현도 어려움없이 가능하다.


말보다 톡이 편해질 정도로 기술은 발전했다. 그런데 '씹는'행위는 인터넷으로 이메일 보내던 시절 답장을 못했던 정도의 느낌으로만 여겨지고 있다.


발전된 기술 때문에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톡으로 말을 걸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일일이 모든 메세지에 답을 할 수 없다는 반박은 이유가 될 수 없다.


오프라인에서 누군가 직접 말을 걸었을 때 당신이 바쁜 상황이라면 그냥 듣지 않거나 못본 척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대답하지 않아도 말을 씹은 것이 아니라는 배려의 제스처가 된다.


온라인도 마찬가지다. 바쁘다면 메세지를 읽을 수도 없다. 당신이 상대의 메세지를 읽었다면 오프라인에서 말을 건 상대의 눈을 본 것과 같은 상황이 된다. 도저히 보낼 상황이 안된다면 애초에 읽지 않는 것이 낫다. 오프라인에서 못본 척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읽고 답을 안보내는 것은 내 자유인데 왜 이렇게까지 상대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럼 이렇게 되묻겠다.


오프라인에서 누가 당신에게 말을 걸었을 때 당신이 그사람의 눈을 보긴 했지만 대답하지 않는 것도 당신의 자유다. 그렇게 자유의지대로 살 것인가...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오프라인에서 그렇게 하면 나의 무시, 상대의 언짢음을 그 자리에서 바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온라인이 그렇게 발전해가고 있다. 디지털로 표현되는 감정의 섬세함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제 가상현실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게 됐고, 앞으로 5~10년후에는 어느 수준까지 표현력이 가능해질지 예측이 되질 않는다.


출처 : SKT Insight https://www.sktinsight.com/92686



"아,미안...중요한 일 때문에 바빠서 답을 못했네...무슨 일이야?"


이전에는 그저 바빳겠거니 생각했지만 요즘은...


그만큼 내가 너에게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었구나를 먼저 느끼게 한다.


'읽씹'으로 인한 감정의 소비는 점점 더 커져가고 그로 인해 빼앗기는 시간 또한 늘어나고 있다.


"그냥 답장 한번 안한고 갖고 일을 크게 만드네" 이것은 2G 시절의 이야기다.


기술이 미친듯이 발전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점점 더 우리 몸에 달라 붙고 있다. 모든게 디지털화 돼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인식은 우체부 아저씨가 손편지를 전달하던 20년전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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