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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리치 Jul 30. 2018

69화 - 언어 폭력의 시간

타임리치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수업시간 중 담임선생님이 내게 질문을 했다. 나는 답을 몰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다른 아이에게 물었다. 그 친구는 정답을 대답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많은 아이들 앞에서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너는 확실히 OO보다 머리가 나쁜 것 같다."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창피함에 머릿속이 백지가 된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그 뒤로부터 친구들이 나를 OO보다 머리가 나쁜 아이로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 JTBC 예능프로 '아는 형님' -


개그맨 김영철


필자에겐 KBS 개그콘서트 때부터 굉장히 웃긴 개그맨으로 기억돼있다. 2015년부터 예능프로 '아는 형님'에 출연 중인 그는 녹화중 누군가에 의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재미없는 사람으로 불렸다. 그뒤로부터 재미없는 사람이 그의 캐릭터가 돼었다.


그러자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출연진, 게스트, 방송을 보는 시청자에게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의 필터를 거친 후 전달이 되기 시작했다.


그는 점점 방송에서 위축이 되기 시작했고 다른 예능 프로에서 보인 재치와 적극성 또한 많이 사라지게 됐다.


그는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




인간은 매우 복잡한 동물이다.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존재다.


겉으로 보면 누가 봐도 쾌활한 사람이 혼자 있을 때는 세상 누구보다 우울해지는가 하면, 평소에서는 굉장히 약해 보이는 사람이 특별한 상황에서는 더없이 강해지곤 한다.


"너한테 이런 면이 있지 않아?"


상대를 통해 나의 내면 한 부분이 종종 드러나곤 한다. 알아줘서 고마울 때도 있고 말하기 싫은 걸 알아채서 창피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의 세밀한 부분까지도 유심히 관찰해준 것이기에 그 상대와는 좋든 나쁘든 특별한 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만약 그 상대가...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인 것 같아."


라고 단정지어서 말한다면 깊은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내 극한의 일부분을 확대해석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내가 누군가에 의해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규정이 되면 그 순간부터 나 자신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 평가가 자신이 바라는 이상향의 모습이었다면 내 몸을 그 모습으로 맞추기 위해 괴롭히려 할 것이다. 내 본질적인 마음은 원치 않는데도 말이다. 반대로 그 평가가 내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었다면 내 몸을 싫어하고 미워하게 된다. 상대의 평가가 엉터리였을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위축된다. 결국 마음 한 곳에 깊숙히 남아 계속해서 나를 건드린다.


질문형의 표현이 단정짓는 평가의 표현으로 바뀌게 되면 말의 힘은 사람을 뒤흔들어 놓을 만큼 영향력이 커진다.


그 힘은 다수의 사람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폭발적으로 상승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평가의 표현을 하면 그 말은 나뿐만 아니라 듣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사람들은 나를 겪어보기도 전에 그 말을 먼저 접함으로 인해서 나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된다.


말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주홍글씨같은 낙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폭력이 있을까...

 

- 드라마 '추노'의 한 장면 -


상대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개선과 발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기꺼이 해준 말이겠지만, 막상 듣는 사람은 평생 가슴에 묻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이 공개적인 자리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낙인같은 상처가 될 것이다.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너무도 신중해야 할 일이다.


아니...누군가를 평가하기 전에 그럴 자격이 있는 지 부터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일이기도 하다.


나 자신도 나를 단정짓지 못한다.


나에 대해 99%를 안다고 해도 때로는 나머지 1%의 모습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사람이다.


왜 그런지 궁금한가


그 이유를 묻는 과정이 바로 이해이다.


그 사람을 이해하면 어떤 평가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이해가 되면 평가할 이유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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