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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리치 Aug 17. 2018

81화 - 세계여행을 준비했던 시간

타임리치


3년간 세계여행을 준비했다. 그리고 4년차...떠나는 해가 됐을 때 그 결정을 보류했다.


세계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동안 있었던 필자의 사고과정이 어느 정도 참고가 될 듯하다. 그 내용이 공감이 된다면 결정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공감이 되지 않는다면 더욱 확고한 믿음으로 본인의 결정을 따를 거라 생각한다.


"한 부부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났다."


하던 일을 멈추고 어디론가 자유로이 멀리 떠난다는 것 만큼 세상에 매력적인 것이 있을까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없을 때 '도전'이란 이름이 붙는다. 세계여행은 매력적인 도전들 중에 최고의 경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주체가 부부가 됐을 땐 더욱 그렇다.


2013년을 기점으로 퇴사후 세계여행을 떠나는 부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관련 내용의 서적을 서점에서 2~3권 정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젠 셀 수 없이 많아져 온라인 한면을 모두 도배하기도 한다.


나와 아내도 그 흐름에 합류하기 위해 준비를 했다. 원래 성격 자체가 완벽을 추구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미친듯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관련 서적, 관련 포스팅은 매일 보는 신문처럼 되었다. 세계여행을 준비하는 동호회도 가입하고, 책을 낸 저자들의 세미나에 찾아가 질문도 하고, 이미 여행을 다녀온 부부들을 만나 상담을 받기도 했다. 세계의 에메랄드 빛의 바다를 느끼기 위해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수영을 배웠고, 다이빙 자격증도 땄다. 아프리카 투어를 위해 처음으로 캠핑에 여러차례 도전했다. 회화 공부를 했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 1년이상 꾸준히 운동했다.


최종적으로 서울에서 스펙쌓는 과정을 중간에 멈추고 지방으로 이직을 했다. 떠나기 위해 주요 집안 살림을 다 정리하고 모든 게 빌트인으로 간소화 돼있는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그렇게 여행의 전체적인 계획이 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떠나는 시기가 가까워질 무렵...


우리는 모든 계획을 멈추었다.


쇳뿔도 단김에 빼랬다고...준비 기간이 너무 길어져서 였을까...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였을까...물론 그게 이유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도전 자체는 매력적이었으나 도전을 해야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나니, 도전에 임하는 나의 태도가 매력적이지 않음을 느끼게 돼서 였다.


그 이유는 이랬다.


첫번째, 치열한 삶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세상을 느끼기 위한 여정에 도전하는 것인데, 도전이 끝난 후에 다시 그 치열한 삶 속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도전을 도전 자체로 즐겨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두번째, 세계여행은 매우 비싼 비용이 드는 도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녀온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미니멀 라이프를 유지해야 했다. 좋게 말하면 소박한 삶이고 나쁘게 말하면 풍요롭지 못한 삶이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내 인생의 모토는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풍요롭게 사는 것이었다. 그 생각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듯 하다. 그런데 지금의 내 조건에서 여행을 떠나면 여행이 끝난 이후에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했다.


세번째, 인생의 모토가 시간과 물질에서 풍요로운 삶인데 풍요롭지 못한 삶도 가치가 있다고 설득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물론 소박한 삶도 가치가 있는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 물질적인 것을 갖으려는 마음에서 벗어 날 때 진정 자유로워 질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런데 물질적인 것을 갖으려는 마음은 물질적인 것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나의 본질은 풍요로운 삶을 원하는데, 도전을 위해 풍요롭지 못한 삶도 좋을 수 있다고 설득하는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다. 좋으면 그냥 좋은거지 설득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은 좋아하지만 풍요롭지 못한 삶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내 조건에서 여행을 떠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미래상을 명확하게 그려주지 않았다. 그저 막연했다. 물론 예측되지 않는 새로운 기대감으로 도전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에게 명확한 미래의 방향이 그려지지 않는 도전은 도전이 아니라 도피였다.


네번째, 소박한 삶의 가치를 얻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여행을 떠나는 상황 자체가 모순적으로 다가왔다. 여행이란 것이 일하지 않고 계속해서 돈을 소비하며 시간을 즐기는 풍요로움의 상징인데, 얻어 가야 하는 가치는 소박한 삶이었다. 그냥 걸어만 다녀도 행복하다? 풍경을 바라보며 차 한잔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것은 일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일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시간은 돈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마지막으로, 여행을 준비하는 기간동안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여행의 순간들을 상상했던 시간이 아니었다. 나의 계획을 남들에게 말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이게 결정적이었다. 나는 남들에게 그저 자랑하고 있었다. 너가 쉽게 할 수 없는 것을 나는 이렇게 하려 한다고 말하는 것은 꽤 중독적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의 반응은 항상 '부럽다' 였다. 그 맛에 나는 그 순간들을 계속해서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상황은 마치 그런 순간들을 즐기고 느끼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돼버렸다. 그런 나의 모습은 '도전'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없을 때 '도전'이란 이름이 붙는다.


세계여행은 분명 도전이다. 그런데 조금 더 세분화해서 보면 약간 애매하기도 하다.


1. 누구나 따라하고 싶은 데 따라하지 않는 것...

2. 누구나 따라하고 싶은 데 따라할 수 없는 것...

3. 누구나 따라하고 싶지 않은 것...


1번은 도전보다는 선택에 속한다.

3번은 분명 도전이라 할 수 있다.

2번은 선택과 도전의 중간에 있는 것 같다.


세계여행은 어디에 속할까?


필자는 그것을 도전이 아닌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도전은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어 있지만 선택은 언제든지 나의 의지로 택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선택이 아닌 도전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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