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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리치 Sep 02. 2018

89화 - '멘붕'의 시간에서 벗어나는 방법

타임리치


병원에서 순환기내과라는 진료과목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심장내과라고도 한다. 쉽게 얘기해서 심장병을 치료하는 과다. 심장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장기이기 때문에 질병 자체를 의사들이 매우 부담스러워 한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졌을 때 문제의 원인이 심장이라면 빠른 시간안에 치료해주지 않을 경우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담당한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면 주치의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순환기 내과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순환기내과 의사(심장내과 의사)는 종합병원에서 의사로부터 도움 요청을 가장 많이 받는 의사 중 하나이다.


모 대학병원에서 순환기내과 의사로 일했을 때의 일이다.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연락이 왔다. 응급실에 심근경색(심장혈관이 막히는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가 왔으니 봐달라는 것이었다. 심근경색은 소위 골든타임이라는 것이 있어서 시간내에 치료로 이어지지 않으면 즉사한다. 너무도 저명한 심근경색이라면 지체없이 치료를 시작하면 되지만, 애매한 경우는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데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심장에 문제가 없는데 치료를 시작했다가 더 위험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심혈을 기울여 그 환자를 진찰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응급의학과 의사가 뛰어오더니 내게 얘기했다. 2번 섹션에 심근경색이 더 강력히 의심되는 환자가 왔다는 것이었다. 다급해 보이는 것이 가능성이 꽤 높을 것 같았다. 지금 진찰 중인 환자는 애매하기도 하고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양해를 구하고 2번 섹션으로 바로 향했다. 2번 섹션으로 가는 도중 전화가 왔다. 중환자실 주치의였다. 며칠전부터 패혈증인 환자가 있었는데 오늘 아침 혈액 검사에서 심근경색 때 분비되는 효소 혈액 수치가 상승했다는 것이었다. 심근경색인지 아닌지 분간을 해달라는 도움 요청이었다. 중환자 실은 2층에 있기에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있었다. 슬슬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응급실의 2번 섹션 환자와 마주쳤을 때 심근경색이라는 걸 직감했다. 검사 소견을 보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치료를 진행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찰나에 또 한통의 전화가 왔다. 암 병동 중환자실 주치의였다. 며칠전 부터 심장에 물이 찬 환자가 있었는데 오늘 그 양이 급격히 늘어서 빼내야 할지 봐달라는 요청이었다. 심장 주변에 물이 차서 심장을 누르는 경우 심낭압전이라고 한다. 심장압전일 경우 즉사로 이어질 수 있다. 더구나 암 병동 중환자실은 다른 건물에 있었기에 50미터 이상을 뛰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5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4개의 과제가 동시에 들어왔다. 게다가 일반인도 아닌 의사로부터 온 도움 요청들이었다. 그래서 4가지 모두 심각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았다. 각각 하나의 문제씩 개별적으로 본다면 해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4개의 문제가 하나로 합쳐지게 되니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하나의 큰 문제로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나는 제대로 멘탈 붕괴에 빠졌다.




멘탈 붕괴...'멘붕'이라는 줄임말로 흔히 쓰이고 있다. 예기치 못한 문제로 당황했을 때 그 정도가 극에 달하여 어찌할 바 모르는 상태를 뜻한다. 여기서 예기치 못한 문제는 보통 두가지의 종류가 있다. 하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감당할 수 있는 문제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쌓여있을 때이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감당할 수 있는 문제들이 동시에 밀려오는 경우는 꽤 흔하다. 이때 '멘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감당할 수 있는 문제들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하나의 감당할 수 없는 문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만약 4개의 문제가 닥쳤다면 이때 문제의 크기는 1 + 1 + 1 + 1 = 4가 아니다. 4보다 훨씬 크다. 4개를 모두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감 및 두려움이 또 하나의 문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10 이상이 되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은 문제의 크기를 제곱의 배로 만든다. 결국 크기는 무한대로 늘어나게 되고 그 문제의 무게에 짓눌리게 된다.


'멘붕'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체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멘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더 간단할 것이다. 문제들을 눈에 보이게 하면 된다. 그럼 어떻게 보이게 할 수 있을까?


문제들을 메모하면 된다.


멘탈 붕괴가 오려고 할 즈음 나는 4명의 환자를 순서대로 메모했다. 눈에 보이도록 글로 쓰게 되니 내게 주어진 과제는 4개뿐이라는 걸 다시 인식하게 됐다. 그러자 심근경색이 강력히 의심되는 응급실 환자가 가장 긴급한 치료 대상임을 확신했고 바로 심혈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과제는 바로 3개로 줄었다. 나머지 3명의 환자는 위급한 정도가 모두 비슷했다. 심근경색이 애매하게 의심되는 응급실 환자는 검사가 필요했고 결과가 나오는 데 1시간이상이 필요했다. 검사 지시를 내린 후에 주어진 1시간 동안 나머지 2명의 환자를 모두 진찰할 수 있었다.


문제들을 한 눈에 보이도록 기록하면 우선 순위를 알 수 있다. 그럼 문제 해결의 순서를 정할 수 있게 된다. 순서를 정한다는 것은 계획을 세운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부담감, 두려움에서 벗어나 문제를 이성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걸 말한다. 문제를 이성적으로 인지하게 되면 문제는 더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다. 문제가 크고 작고를 떠나 애초부터 내가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애초부터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것은 애초부터 나의 일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 말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해결할 수 없었다는 것은 적어도 시도를 해본 후에 할 수 있는 말이다. 해결을 시도하기 위해선 문제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를 파악하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문제를 실제보다 크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문제를 두고 두려움, 부담감을 느끼는 경우는 앞서 말한 대로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난 경우보다 감당할 수 있는 문제들이 숫적으로 너무 많이 모여서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접하는 문제들은 단일 문제인 경우가 생각보다 드물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여러개의 작은 문제들로 이뤄진 집합체이다. 그 집합체가 어떤 작은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바로 문제를 파악하는 과정이다.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다면 일단 그 문제를 이루고 있는 작은 문제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있다면 한 눈에 보이도록 기록해보자. 이 문제의 우선 순위가 보일 것이다. 이것은 일의 순서를 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럼 문제를 이성적으로 인지해서 계획을 세우게 된다.


결국 문제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의 행동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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