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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리치 Sep 10. 2018

93화 -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

타임리치


누군가에 대해 안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는 다른 그 사람만의 특징적인 모습일 때를 말한다. 예를 들면..


"그는 눈이 두개야."

"그녀는 손가락이 10개야."

"그 친구는 입으로 밥을 먹어."

"너는 숨을 쉬는구나."


이런 내용으로 누군가에 대해 안다고 말하진 않는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특징적인 모습은 특별한 상황에 노출됐을 때에만 나타난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빗대어 말하면 특별한 값이 입력됐을 때 사람마다 다른 저마다의 개별적인 값이 결과로 출력된다.


"그는 오이를 -> 싫어해."

"그녀는 쫄면을 -> 좋아해."

"그 친구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 말이 없어져."

"너는 물을 -> 무서워해."




아내와 분식집을 가면 아내는 항상 쫄면을 시킨다. 아내에게 '쫄면'이라는 특정값이 입력되면 '좋아한다'는 결과값이 늘 같다. 오래전부터 봐왔기에 이젠 매우 익숙한 장면이다. 그래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아내에 대해 잘 안다. 그 중 하나를 얘기하면 그녀는 쫄면을 정말 좋아한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언제까지 이렇게 쫄면을 좋아할까?'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쫄면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일까?'


나를 돌이켜봤다. 1년전에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일까 생각해보니 그렇진 않았다. 그러자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쫄면을 가장 좋아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조금씩 신기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이유였을까?

이미 알고 있는 모습이고 익숙한 모습인데 왜 신기해 보인 걸까...?


그것은 아내에게 '쫄면'이란 항목이 입력될 때 다른 하나의 항목이 더 입력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시간이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감지하지 못한다. 늘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2년전, 1년전 그리고 지금...아내에게 '쫄면'이라는 일정한 값이 똑같이 입력되고 있었지만 다른 하나의 값 '시간'은 지속적으로 변하면서 입력되고 있었다.

.

.

(쫄면, 3년전)

(쫄면, 2년전)

(쫄면, 1년전)

(쫄면, 올해)


(x, y) 를 하나의 값으로 본다면 아내에게는 단 한번도 같은 값이 입력된 적이 없다. 시간이 계속 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에겐 언제나 '좋아한다'는 같은 결과값이 나타났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아내가 늘 한결같기 때문일까? 아니...오히려 그 반대이다.


아내는 계속 변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아래의 식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

.

아내 + 3 -> 10

아내 + 2 -> 10

아내 + 1 -> 10

아내 + 0 -> 10


여기서 결과값이 항상 10으로 유지가 되려면 아내가 계속 변해야 한다. 만약 아내가 변하지 않는다면 결과값은 계속해서 바뀔 것이다. 시간은 계속 변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3년전 쫄면과 오늘의 쫄면은 전혀 다른 존재다.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좋아한다'는 같은 결과가 나타나려면 아내는 그에 맞게 변해야 한다.


그렇다면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쫄면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일까?'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이 흘러도 항상 좋아할 수 있도록 아내가 변하면 된다.




지금 당신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늘 한결같은 모습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결같은 모습이 여러개라면 다양한 방면으로 변하고 있음을 뜻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신이 아는 것은 단지 항상 일정하게 나타나는 그 사람의 결과값일 뿐이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거나 더이상 알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당신의 마음 상태일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그 사람의 본질이라고 단정지었기에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런데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사람의 단편적인 행동에도 수많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상대의 아무런 의미없는 행동들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게 된다.


이것을 관심이라고 한다. 관심은 사랑을 굳건하게 만들어주는 밑바탕이 된다.



아내를 안 지 8년이 넘었다. 아내는 여전히 분식집에서 쫄면을 먼저 주문한다. 필자는 여기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너는 쫄면을 좋아해." 가 아니라...


"너는 올해가 되어도 쫄면을 좋아하는구나."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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