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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리치 Sep 20. 2018

98화 - '소확행'을 버리는 시간

타임리치


당신은 버스를 탔다. 앞으로 1시간 동안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하는데 이미 만석이다. 일단 자리가 날 때까지 서서 기다려 보기로 한다. 30분이 지나도 자리가 나지 않자 다리 근육이 서서히 조여온다. 피로가 점점 누적된다. 슬슬 졸음도 밀려온다. 40분이 됐을 때 자리가 하나 났는데 다른 사람에게 뺏기고 말았다. 그 사람이 편히 앉아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다음에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50분이 됐을 무렵 당신이 서있는 앞에 한 자리가 나게 됐고 드디어 당신은 앉게 됐다. 이것은 완전히 천국이다. 그동안의 모든 피로와 고통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듯하다. 그저 버스 빈 자리에 앉은 것 뿐인데 이렇게 큰 행복감을 주다니...


 '소확행'...그것은 소소한 일상에서 오는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을 뜻한다. 소확행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 해소시켜주고 활력을 넣어준다. 그러나 역기능도 있다. 더이상의 높은 곳, 더 큰 행복을 바라보지 않게 한다. 즉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것이다.  


소확행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을 때 그 힘은 더욱 강력해진다.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A :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한다.

B : 문제 자체를 피한다.


여기서 B는 문제로부터 멀리 도망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AB 모두 다가오는 문제를 그대로 받아 들이고 그 고통과 스트레스를 몸소 느낀다.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이후부터다. A는 고통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없애려 하고, B는 고통을 잊을 수 있게 만드는 다른 무엇을 찾으려 한다.


다시 버스를 예로 들어보자. AB 모두 버스를 타면 오랫동안 서서 기다려야 하는 문제를 만난다. 둘다 그 고통을 몸소 느낀다. 이때 A는 고통을 없앨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문제에 접근을 해보니 버스가 아닌 다른 교통수단으로 목적지를 향해 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린다. B는 고통을 잊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먼저 생각한다. 앉게 되면 느껴지는 편안한 행복감은 모든 것을 잊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B는 일단 고통을 감수하며 기다리기로 한다. 고통이 길었던 만큼 소소한 혜택들이 나에게 큰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이 더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개인의 성향, 취향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사항은 있다.


바로 수단이 목표가 돼버리는 경우이다.


AB에겐 오랜 시간 서있어야 하는 고통이 핵심적인 문제였다. A는 버스에서 내리는 방법을 택했고, B는 자리에 앉게 될 때 얻게 되는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 고통을 참는 방법을 택했다. 두가지 경우 모두 하나의 수단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것이 목표가 돼버리면 상황의 성격이 바뀌어 버린다. A의 경우 다리가 아플 때마다 버스에서 내릴 것이고, B의 경우 자리가 나면 혜택이 올 것이기에 일단 참고 버틸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면 사람은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려고 한다.


"힘들 땐 잠시 내려도 됩니다. 행복은 내리는 순간 찾아오니까요."

"삶은 버팀의 연속이기에 힘이 듭니다. 그러나 그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다면 진정한 행복이 찾아올거에요."


수단이 목표가 되고 가치가 부여되면 기존의 문제는 문제가 아니게 된다. 근본적인 문제였던 '고통'은 어느새 받아들여야 하는 일상이 되고 만다. 결국 고통은 나의 일상에 늘 함께한다. 그러면 나는 그 고통을 잠시 잊게 해줄 수단들을 더 찾게 된다. 수단이 곧 나의 목표이자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수단들은 소소한 일상에 있다.


소소한 일상에 나의 기분을 잠시 좋게 해줄 수단들...그렇게 소확행은 인생의 목표가 되어간다. 그럴 경우 위에서 말했듯이 더 큰 행복을 포기하거나 현실에 안주하려는 역기능이 생긴다. 그게 나쁜 것이냐고? 인생은 옳고 그름의 문제로 판단할 수 없다.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니까...다만 근본적인 것에 대해 짚고 넘어가 볼 필요는 있다.


진정한 행복한 항상 근본적인 것에 있기 때문이다. 



왜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걸까?


다시 버스 얘기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바꿔서 질문해보자. 왜 버스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걸까?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항상 버스를 타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스 안은 곧 나의 일상이 된다. 두번째는 버스 안의 일상에는 항상 오래 서있어야 하는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더 깊게 들어가보자.


왜 항상 버스를 타면서 그런 고통을 느껴야 하는 걸까? 버스가 아닌 승용차를 타고 가면 간단히 해결될 일인데 말이다.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내리지 않는 행동에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생각한다면 일단 내려야 한다. 그것이 고통을 없애는 첫번째 방법이다. 버스에서 빈 자리가 생겨서 앉았을 때 느껴지는 편안함에 더이상 의미 부여를 할 필요도 없어진다. 다시는 버스를 안 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좀 더 높은 차원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질문하게 된다.


버스 안에서 서서 가는 것이 왜 고통이었을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왜 버스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일들이 고통이었을까? 답은 버스가 향하고 있는 목적지에 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최종 목적지가 내가 원했던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탄 버스에서 1시간을 서있는 것과 애인을 만나러 가기 위해 탄 버스에서 1시간을 서있는 것의 느낌은 천지 차이다. 후자의 경우 빈자리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된다.


현재 나의 목표는 서있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빈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나의 목적지가 내가 원했던 곳으로 향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상의 일들은 그 자체로 행복이 된다. 그것이 나에게 버스의 빈자리처럼 혜택을 주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안된다. 물리적인 고통이 와도 상관이 없다.


근본적인 것에 행복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소확행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소확행은 주어진 과제가 해결이 됐을 때 행복이 온다. 예를 들면...


배가 고플 때 -> 맛있는 것을 먹는 것...

오래 서있다가 -> 빈 자리에 앉는 것...

누군가 보고 싶을 때 -> 그 사람과 연락하는 것...

기다리던 택배물건이 -> 도착하는 것...

하고 싶었던 취미 생활을 -> 해보는 것...


그러나 근본적인 것에 행복을 느끼면 문제 해결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 과정이 다 행복이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한다. 어떠한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안에서 재미 또는 행복의 요소를 찾아 즐김으로 승화시킨다면 쉽게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의 전제에는 '어떠한 상황'이 피하고 싶은 힘든 순간이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만약 그 상황이 피하고 싶은 순간이 아니라 꼭 한번 겪어보고 싶었던 기다리던 순간이라면 그 안에서 굳이 나를 행복하게 할 요소를 찾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소확행...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일상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근본적인 시선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확행이 목표가 되면 근본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나의 일상이 당연한 삶의 과정으로 인식된다. 그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바라보지 않게 만든다. 그런데 만약 당신의 삶의 목표가 소확행이 아닌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향해 있다면 소확행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진다.


당신의 모든 일상이 행복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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