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3(1). 비가 와서 싫은데 좋다

[치앙마이 혼자 여행] 도이 인타논 국립공원&카렌 부족 마을 투어

by 졔졔니모


치앙마이의 7월은 우기다. 그리고 굉장히 덥다. 사실 치앙마이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는 7월이 아닌 11월이다. 다 알고 왔다. 소나기를 퍼붓다가도 또 금방 해가 나는 게 동남아의 날씨니까 우기여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이 인타논 국립공원 트랙킹만큼은 비가 오지 않는 비교적 맑은 날에 하고 싶었다. 출국 3일 전까지 계속 기상예보를 살피다 비가 오지 않는다던 수요일로 투어 예약을 했다.

처음으로 Klook을 사용해보았다

가이드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왓츠앱도 다운로드하였다. (왓츠앱이 없고, 태국 현지 번호도 없는 경우 연락이 어렵다고 하니, klook을 통한 투어 예약 시에는 원활한 투어 진행을 위해 왓츠앱 등을 미리 준비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로밍을 해서 현지 번호가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전 8시 픽업. 내 투어 그룹명은 '바나나'. 가이드 아저씨 별명이 바나나라서 그렇단다. 세상에. 어릴 때부터 바나나를 너무 좋아해서 엄마가 붙여주신 별명이라나. 사와디캅 미스터 바나나.


12인승 밴이 꽉 찼다. 독일에서 온 커플, 호주에서 온 중년부부, 뉴욕에서 온 아메리칸걸 둘, 호주에 살고 있는 아일랜드남, 싱가포르에서 온 남자,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까지 9명의 small group. 차 문이 열리고 한 명씩 탈 때마다 내심 이번엔 한국사람이 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결국 나 혼자였다. 퍽 아쉬웠다.


1시간 반 가량 차를 타고 국립공원을 향하는 내내 폭우가 쏟아졌다. 이 비를 맞으며 트랙킹을 해야 하는 건가 싶어 초조한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이드 아저씨는 유쾌하게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우리는 서로의 국적과 이름을 간단하게 소개했고, 아저씨는 코로나가 시작된 이래로 2년 간 관광객이 거의 없어서 가이드일을 하지 못해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치앙마이에 와준 우리가 너무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 가족, 친구들, 지인들에게도 많이 영업해달라는 말과 함께. 관광업 종사자들에게는 정말 힘든 시기였을 거다. 그의 고맙다는 인사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다.



와치라탄폭포
1009, Ban Luang, Chom Thong District, Chiang Mai 50160 태국

비를 뚫고 처음 도착한 곳은 '와치라탄 폭포' . 구름이 잔뜩 끼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가 원망스러웠던 것도 잠시, 폭포를 만나자마자 경탄이 절로 나왔다. 오히려 폭포가 자아내는 물안개와 흐린 날씨가 더 어우러져서 신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물줄기가 자연스럽게 깎아낸 바위, 그리고 그 위로 시원하게 떨어지는 엄청난 양의 물이 만들어내는 시원하고 청량한 소리가 어우러진 절경은 정말 멋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눈과 귀를 사로잡혀 멍하니 그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보아도 지겹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어 '시리탄 폭포'라는 와치라탄 폭포보다 규모가 작은 폭포를 보러 갔는데, 너무 첫 임팩트가 컸던 나머지 큰 감흥이 없었다. 작은걸 먼저 보여주고 큰 걸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와치라탄 폭포의 입구
와치라탄 폭포. 우기여서 물의 양이 더 많은거라고 했다. 경이롭다.


카렌 부족 마을 (mae klang)
Ban Luang, Chom Thong District, 치앙마이 50160 태국

다음 장소는 카렌 부족 마을이었다. 태국의 고산지대에 사는 여러 고산족 중 하나의 부족으로, 목에 링을 차는 목긴 카렌 부족이 유명한 편이다. 청동으로 된 링을 목에 걸기 시작해서 점차 링의 개수를 늘려가는 TV에서 많이 봤던 그 부족이다. 카렌족은 붉은 카렌과 흰 카렌의 두 부족으로 나뉘는데, 내가 방문한 마을은 흰 카렌 부족 마을로 목에 링을 차는 목긴 카렌족이 아니었다.

구름과 안개에 뒤덮인 카렌부족 마을 입구

가이드 아저씨에 따르면, 코로나로 인해 마을을 폐쇄했다가 약 5개월 전 2년 반 만에 마을을 개방했다고 한다. 일부 마을 사람들의 경우 아직 외지인들의 방문을 탐탁지 않아하는 경우도 있으니, 마을 사람들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 반드시 마스크를 쓰고, 허락 없이 사진을 찍는 등 무례한 행동은 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태국 왕실의 관심과 지원 덕분에 집, 물, 전기, 도로 등의 기반시설과 인프라가 갖춰질 수 있었다고 했다. 태국 사람들의 왕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 중 하나.


마을에서는 손으로 직접 직물을 짜는 모습과, 직접 재배하여 생산하는 커피를 체험할 수 있었다. 베틀을 이용해서 쓱쓱 직물을 짜는데, 봐도 봐도 도저히 그 원리를 모르겠다. 그저 마냥 신기.. 관광객인 우리를 위해 베틀 앞에 앉아주신 현지분의 성의를 봐서라도 뭔가 하나 사야 할 듯하여 핸드메이드가 확실한 크로스백을 하나 샀다. 350밧, 한화로 약 12,000원 정도. 태국 물가를 생각하면 꽤 비싼 편이었지만 어제 시장에서 봤던 가방들보다 훨씬 예쁘고 퀄리티도 좋아 보였다.


조심스레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너무 신기했던 광경

막간의 쇼핑 후 전통 방식으로 추출한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잠시 앉아 쉬었다. 천장에 달려있는 바나나를 먹어도 된다고 해서 아일랜드에서 온 남자가 하나를 집어 들었는데 애벌레가 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고 내려놓았다. 한바탕 웃고는 커피를 마시며 스몰토크를 이어갔다. (커피가 정말 정말 맛있었다! 산미 없이 고소한 완전 내 취향에 맞는 그런 커피였다.) 뉴욕에서 온 미국인 중 한 명은 태국에서 10년째 국제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꽤나 유창하게 태국어를 구사하며 가이드 아저씨와 대화를 했는데, 바나나의 태국어 발음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자칫 잘못 발음하면 남자의 중요한 부위(?)를 지칭하는 단어가 된다고. 오우.. 태국에선 바나나는 그냥 영어로 지칭하는 게 안전할 것 같다.

전통방식으로 추출한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 뒷편의 창고에서는 볶은 커피를 포장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마을을 나오며 내가 이 마을에서 보고 경험한 건 정말 카렌 부족의 전통과 생활양식 그대로의 진정성 있는 경험이었을까, 아니면 대중 영합화 과정을 거친 관광의 산물인 걸까 잠시 고민해보았다. 핸드메이드 직물과 커피는 농사와 더불어 이 부족의 주된 수입원 중 하나이기에 진정성 있는 경험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특정한 장소에서, 관광객들의 방문시간에 맞춰 베틀 앞에 앉아 직물을 짜고 커피를 내리는 건 역시나 무대화된(staged) 진정성이다.


관광을 통해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건 "관광객으로서 기대하는 일상과는 다른 무언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설정된 일종의 만들어진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설령 그럴지언정 나의 일상과는 다른 것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여행과 관광의 의미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Angka nature trail
HFQP+9CQ, Ban Luang, อำเภอแม่แจ่ม, Chiang Mai 50160 태국

간단한 식사 후 다시 국립공원으로 이동하여 30분 정도의 트랙킹 코스를 걸었다. 태국은 대부분 고지가 낮은 편인데, 이 도이 인타논 국립공원이 해발 2,565m로 태국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이라고 했다.


초입에 있는 전광판이 13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미스터 바나나에 따르면, 오전 6시의 기온을 기록해두는 전광판으로, 13 도면 태국 사람들이 추위로 병에 걸릴 수 있는 날씨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13 도면 너무 쾌적하고 좋은 날씨인데.. 더운 날씨에 익숙한 태국인들에게는 칼 같은 추위로 느껴진다고. (하긴.. 나는 더워서 반팔 입고도 땀을 뻘뻘 흘리는데, 현지인 중에서는 무려 패딩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내가 처한 환경에 이리도 다르게 적응해버린다.) 산 정상은 춥다고 하여 얇은 겉옷을 입고 갔음에도 쌀쌀함을 느꼈다. 방문 예정이라면 얇지 않은 겉옷을 준비하는 것이 필수이다.


고도가 가장 높은 곳에는 여기가 태국에서 가장 높은 곳이야!라고 나무 표지가 세워져 있었고, 곳곳에 돌로 만든 사원들이 우거진 나무속에서 신비한 광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비가 계속 왔지만, 비가 오지 않았으면 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경험하진 못했을 것이 분명하여 이쯤 되니 오히려 비가 오는 것이 고맙게 느껴졌다. (재밌는 건, 나와 싱가포르 남자만 우산을 쓰고, 다른 서양인들은 그냥 비를 맞거나 우비를 썼다. 물론, 장대비가 쏟아질 땐 그들도 우산을 주섬주섬 꺼내들긴 했다.)

태국에서 가장 높은 곳!

나무데크로 조성된 트랙킹 코스에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분명한 나무와 수풀이 가득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이국적인 숲 그 자체였다. 이끼 가득 덮인 나무들 너머 저 깊은 숲 어딘가에 요정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았고 (실제로 깊은 숲 속에는 요정이 아닌 재규어 등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고 했다.) 촉촉하게 가라앉은 숲은 높은 채도를 뽐냈다. 11월에는 만개한 꽃들로 가득하다고 했다. 꽃도 잎도 그 해의 역할을 끝내고 땅으로 떨어지는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이할 준비가 덜 된 11월을 날 때, 꽃이 만개한 태국의 봄을 만끽하러 한 번쯤 더 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던 Angka Nature Trail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건, 태국에서 가장 높다던 이 국립공원에도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길이 조성되어있다는 점이었다. 깊은 숲 속 코스까지 도는 것은 어렵겠지만, 산책길의 초입과 전시관에 휠체어 전용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태국은 특히나 편견과 차별이 없는 곳이라던데 산에서 그들의 배려심과 마음씀을 만나니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Grand Pagoda Nabhapolbhumisiri
HF3H+8QV, Chang Khoeng, Chom Thong District, Chiang Mai 50160 태국

내려오는 길에는 라마 9세와 시리킷 왕비의 60세 생일을 맞이하여 건강과 안녕을 기리기 위해 1989년에 세워졌다는 트윈 파고다가 있는 파고다공원을 들렀다. 갈색과 금색의 조금 더 큰 탑이 왕의 탑, 보라색과 금색으로 칠해진 조금 작은 탑이 왕비의 탑이라고 했다. 탑의 내외부는 아름다운 정원과 다양한 불교미술품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파고다공원에서 내려다보는 산자락과 마을의 풍광이 굉장한 장관이라고 들었는데, 구름과 안개에 덮여 전혀 보지 못해 퍽 아쉬웠다.


왕비의 탑
왕의 탑



살 것이 별로 없던 작은 로컬 마켓을 지나 치앙마이로 돌아오니 오후 5시 반.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날이 맑게 개었다. 잘 돌고 왔지만, 왠지 뭔가 당한 기분이라 괜히 분했다. 사실 하루하루의 계획이 없는 날것의 여행에 일자와 시간이 모두 정해진 하루 반나절 일정이 있는 게 부담스러웠다. 고민 끝에 넣은 일정이었는데 그래도 투어 하길 정말 잘했다. 태국스러웠고, 이국적이었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나저나 배도 고프고, 너무 피곤하다. 반일투어가 이렇게 힘든데 금요일에 예약해둔 종일 투어는 어떻게 가지? 아무래도 금요일 투어는 취소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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