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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E Jun 09. 2019

00 :: 그땐 그랬는데 말이야

다시 만난 그곳

프롤로그

 

 과거의 힘은 현재의 우리에게 대개 관대하고 넓은 영역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한껏 아름답게 포장된 표지만 보여주는 기억으로 드러나면서 짙은 핑크빛의 단면만 보여준다. 나의 과거 역시 별 다를 바 없다.  


    

 2019년 현재, 내 나이도 어느새 20대 후반의 길목에 접어들었다. 무얼 하며 어떤 것들을 이루며 과거를 채워 지금의 현재에 서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오늘을 사는 나와 미래를 꿈꾸는 내게 확실한 힘이 되어 준 그 지난 일들이 있다. 지금 당장, 딱 떠오르는 그 존재와 시간을 꼽아보자면 두 가지를 선택 할 수 있다. 내 곁에서 믿음직하고 소중한 친구로 머물러 주는 선민이를 만난 것과 4년 전, 신사의 나라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것이지 않을까.      



 선민이와 만난 건 중학교 1학년, 그러니까 대략 13년 전이다. 와, 그러고 보니 우리가 함께 알고 지낸 것도 벌써 인생의 절반 가까이 되었다. 꽤나 긴 시간동안 우리 둘 사이가 매일 좋았을까? 천만에 말씀 백만의 개똥이다. 학창시절 우리 사이가 좋았던 기간은 서로 알게 된 지 1년차, 그때 뿐 이었다. 중2가 되면서 들어서던 거대한 자의식은 나와 그녀에게 서로의 존재를 거부해도 잘 살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게 자의였던 타의였던 간에 우리에게 존재하던 서로에 대한 감정은 점점 악랄한 전쟁 통에 쳐 박히는 모양새가 되었고, 결국 우리 관계는 파국으로 치 닿고 만다. 



각자의 존재 없이도 ‘나 이렇게 잘살아’ 하며 괜한 허세를 보여주던 기간이 조금씩 고꾸라져 갈 때 즈음, 우리는 다시 서로를 찾게 되었다. 사실 화해를 하게 된 시점은 이상하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 어이없는 틈에 그 1년간의 지독한 냉전을 단 숨에 녹여버렸던 것 말고는... 어떤 상황이었는지에 대한 세심한 기억은 내 머릿속에는 물론이고 그 아이의 머릿속에도 그저 희뿌옇게 부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 때에 비해 어느 정도 머리도 마음도 큰 지금, 지난 이야기들을 꺼낼 때면 서로 배를 잡고 웃으면서 각자의 흉내를 낸다. ‘네가 그때이랬잖아. 완전 어이가 없어서’ 하면서 서로를 비웃고 조롱한다. 하지만 그게 결코 기분 나쁜 받아들임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들 속에서 참 많이도 울었고 깊게 속상하기도 했으며 외로웠기도 많이 외로웠다. 과장하여 말한다면, 절벽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지금 소소한 술자리에서 웃으면서 그때의 기억들을 미화시키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그 어떤 때보다 즐겁다. 웃을 일 없던 각자의 일상에서 함께 하는 이 자리에서만큼은 간만에 제대로 된 생 라이브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것이다.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며 우리가 이렇게 웃을 수 있게 된 것은 그 시간을 거치며 우리가 깨닫게 된 부분의 역할도 꽤나 크다. 



하지혜 신선민의 우정에서 절교라는 기간이 있던 그 기간에 서로를 향해 날선 모습을 내 보였던 것도 어쩌면 서로에 대한 감정을 갈구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에 대한 깨달음. 각자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들었던 것도 서로가 서로를 너무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있기에 빚어난 어설픈 대처 때문이었단 깨우침. 하지만 그 중, 나와 선민이가 나눈 이 웃음의 영역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가버린 시간이 전해주는 너그러움 때문이 아닐까.      



 이미 지나간 시간에 대해 갖는 내 마음의 너그러움은 앞서 말한 2014년의 런던 생활도 선민이와의 관계 그래프와 동일한 미화 노선을 그리고 있다. 2014년 그곳에서의 나는 참으로 외로웠고 우리나라가 참 그리웠다. 그래서 결국 약속된 시간 보다 더 이른 귀국을 감행했다. 그때는 그게 당장의 나를 위해 더 옳은 선택이라 믿었다. 



하지만, 내가 내린 선택 후 다가오는 그 뒤에 따르는 책임은 꽤나 크게 다가왔다. 그 책임이라 하면, 평생을 안고 갈 후회와 아쉬움이었다. 이 감정이 피어오른 가장 큰 이유는 런던에서의 내 생활이 꽤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뒤바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런던의 글루미한 날씨에 짜증을 내고, 잘 터지지 않는 데이터에 답답해하며, 잘 늘지 않던 영어 실력에 낙담하던 그 좋지 못한 기억은 그저 2014년 어느 날의 한 순간으로 묻혀 진 저편으로 날려 버린 채 그저, 좋았던 기억들이 나의 2014년을 뒤덮어 그 때 그 런던에 대한 환상을 펼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낭만은 내게 언젠가는 꼭 다시 들러 그 때 그 분위기, 그 때 그 감성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와야지 하는 목표의식을 갖게 하는데 충분한 조건으로 작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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