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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E Jun 10. 2019

02 :: 그곳으로 향하는 길

다시만난 그곳

    

 내게 여행은 여행지에서의 순간만을 두고 여행이라 할 수 없다. 내 여행의 시작은 여행하기를 결정하는 그 순간부터가 확실한 시작점이 되며, 여행지에서의 일들을 돌아보며 글을 쓰고 사진을 정리하는 지점까지가 한 여행 일정의 모든 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지금도 런던, 파리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그 소중한 기억들을 조금 더 길게 끌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걸 지도.  


    

 여행 계획을 작성하면서 수도 없이 확인했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준비했다. 그 촘촘한 준비의 내용은 인천공항까지 도착하는 나의 루트와 기내에서 보낼 나만의 시간이었다. 



나의 현재 거처인 고향집 진주에서 인천공항까지는 인천공항 리무진을 이용해 대략 4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장시간 비행에 버스까지 타고 움직이는 동선이라 듣기만 해도 벅차고 꽤나 피곤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는 나에게 그 정도의 여정은 우리 집 반려견 봉봉이가 뜯는 개 껌보다도 쉬운 일이다. 우리 엄마 왈 “니는 진짜 여행 체질이다”하며 지난 싱가폴 가족여행에서 혀를 내 두를 정도로 나는 여행만 한다 치면 에너자이저가 되고 부지런해지는 몸이니. 그래서 나는 출발 당일, 새벽 2시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고 새벽 5시에 인천행 버스에 탑승했다. 



 4시간의 여정 후 도착한 인천공항 2터미널. 2터미널이 생긴 후로 처음 이용해 보는 거라 괜히 설렜다. 최근 드라마에서 굉장히 많이 비춰졌던 2터미널의 화이트 톤 인테리어는 실제로 보니 더 모던했고 세련되어 보였다. 특히나 체크인부터 수화물 드롭까지 그 모든 시스템이 자동화 처리 되어 더 신속하게 수속을 밟을 수 있던 점은 가히 인상 적이었다. 보통 1터미널에서는 수속 밟는 상당한 대기 줄에 의해 길면 30분 내외로 소요되었던 시간이 셀프 체크인 덕에 10분이면 모든 것이 해결 되니! 이 또한 신세계 아닌가. 무엇보다도 기계치인 나 같은 사람도 쉽게 체크인을 할 수 있도록 곳곳에 안내원들이 배치되어 있어 친절히 알려주시니. 참, 그 곳 매력 낭낭하더라. 인천국제공항이 세계적인 공항으로 위상을 떨치는 이유를 잠시나마 몸소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다. 



 어릴 때부터 공항에만 오면 괜히 설레는 것은 물론이고 한껏 움츠리고 있던 어깨도 쫙쫙 펴진다. 여길 오는 나는 어딘가로 떠나 즐거움을 누리고 올 사람이라는 특권의식을 배양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옳을까? 여행을 떠나는 순간만큼은 나 같은 초라한 사람도 당당히 사치품도 사고(사치품이라 해봐야 디자이너 브랜드의 틴트 종류다) 괜히 라운지 같은 곳을 기웃거리며 식사도 해결 해 보고. 이게 언제 또 다시 찾아 올 지모를 호사라고 생각하며 그저 내게 주어진 지금을 마음껏 즐기려고 최대한 당당한 척, 하지만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촌스러워 보이지 않도록 애쓰며 나만의 기품을 저 밑에서부터 끄집어 올려 공항을 거닐어 보게 되는 것이다. 



빽빽하고 촘촘하게 자리가 채워진 좌석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간다. 하나 둘 승객들이 탑승하고, 다행히도 이번 런던 비행은 조금 넓게 자리를 쓰면서 갈 수 있게 되었다. 3,4,3 좌석이었는데 복도 쪽인 나와 창가 쪽인 외국인 여성 사이 한 좌석이 비었던 덕이다. 미소가 예뻤던 외국인 여성도, 나도 쾌재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그 한 좌석을 Share하며 13시간을 보냈다. 자주 꺼내 쓰는 백 팩도 우리 사이에 놔두고 양반다리를 하여 조금 편하게 있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엎드려 누워보기도 하면서 서로의 영역에 불쾌감을 주지 않는 한 각자만의 비행을 즐겼다. 



 인천공항에서 런던 히드로 공항까지는 장장 13시간이 소요된다. 그 길고도 따분할지도 모를 기내에서의시간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근 한 달을 고민했다. 이 고민 시작의 계기는 4년 전 런던으로 향하던 비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 비행은 내 인생에서 장시간 비행하는 첫 경험이었다. 비행기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겠다는 생각 따위는 내게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그 탓에 당시 기내에서의 나는 거의 13시간동안 지루함, 따분함, 답답함, 찝찝함의 복합적인 결과체로 존재하게 되었고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의 나는 반 녹초가 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짧은 비행을 하더라도 기내에서 해야 할 간단한 일거리들을 목록으로 만들어서 탑승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쩌면 첫 경험에 의해 생겨난 트라우마라고 해야겠지. 



 대충 졸다가 대충, 이번 기내 시간동안 해야 할 목록들을 해 내다가 기다리던 기내식 먹어 치우다 보니 13시간이 지났다. 런던 땅에 착륙한 시간은 현지시간으로 오후 4시 무렵이었는데도 겨울의 하루해가 짧기로 유명한 런던의 분위기는 이미 한창 짙은 어두움을 품은 저녁의 기운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캄캄한 오후의 배경, 참 간만이었다. 어쩌면 지난 4년간 이 배경과 분위기가 사무치게 그리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이야 런던. 너무 그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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