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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Oct 19. 2020

1820~30년대의 경제적 배경

니콜라스 비들 1

알렉산더 해밀턴이 설립한 '제1 미국 은행(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이 유지되는 동안 미국의 금융과 경제는 발전했다.


제1 미국은행 모습(우측 흰색 건물)  <출처 : 위키피디아>


미국 금융의 발전과 주법은행(State Bank)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영토도 확장되었고, 경제 규모도 성장했다. 금융도 비례하여 발전했다. 초대 재무부 장관인 해밀턴이 꿈꾸었던 국가 자본의 증가는 금융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그 배경에는 '제1 미국은행'이 있었다. 초기 중앙은행 역할을 통해 혼란스러웠던 미국 금융이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순기능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제1 미국은행'의 기간 종료 이후 주법은행(State Bank, 각 주의 은행법에 근거하여 설립된 은행)의 은행권(지폐) 발급 증가로 금융 규모는 팽창했다.


하지만 양적인 증가에 비해 질적인 성장은 비례하지 않았다. 유통되는 주법은행권(지폐)의 할인율이 높았던 것이다.


은행권 발급 증가와 인플레이션


할인율이 커질수록 부족분을 메꾸기 위해 각 주법은행(State Bank)이 발행한 은행권(지폐)의 규모는 추가로 증가했다. 사실상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4대 재무부 장관 앨버트 갤러틴  <출처 : 위키피디아>


폭발적으로 늘어난 주법은행의 은행권(지폐)은 화폐 가치의 하락을 가져와 인플레이션이 만성화됐다.


이는 주법은행을 관리, 감독할 기구인 중앙은행(제1 미국은행)의 부재('제1 미국은행'은 20년 면허 기간 만료 이후 스티븐 지라드에게 매각되었다)가 불러온 현상이라고 갤러틴(제4대 재무부 장관)은 한탄했다.


이에 더해 '1812년 미국-영국(War of 1812)'의 전쟁으로 더더욱 물가가 상승하면서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이 심화됐다.


특히 1814년 영국군의 '워싱턴 방화 사건(The Burning of Washington)'은 불을 붙였다.


미국의 수도가 점령되자, 각 지역에서 주법은행의 뱅크런(bank run, 대량 예금인출 사태)이 발생된 것이었다.


'제2 미국은행'의 설립


결국 연방정부는 전쟁 자금의 상환 마련파괴된 지역의 복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제2 미국은행(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 설립을 서둘렀다.



제2 미국은행 삽화   <출처 : 위키피디아>



1817년 '제2 미국은행'이 설립되고 출발했다. 기간은 '제1 미국은행'과 동일한 20년의 기간이었다. 필라델피아에 본사를 두고, 자본금은 3,500만 달러로 늘어났다.


당시 나폴레옹 전쟁(1803-1815)의 여파가 남아 있어 미국의 수출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연방정부의 서부 지역 토지 매각 붐이 불면서 투기가 극성했고, 경제도 과열로 치달았다.


이러한 시기, 관리감독과 주법은행(State Bank)의 은행권(지폐) 남발을 통제해야 할 중앙은행(제2 미국은행)이 관리 소홀은 물론 자체적인 은행권 발행을 증가시켜 대출을 늘렸다.


과열된 경제에 더더욱 불을 붙인 것이다.



윌리엄 존스  <출처 : 위키피디아>


초창기 '제2 미국은행'의 방만한 경영


'제2 미국은행'의 초대 은행장 윌리엄 존스(William Jones, 1760~1831)는 해군 장관 출신이었다. 자질 부족(경제적 지식과 경험 부재)으로 금융 사기 사건에 앞장서는 경우도 발생했다.


볼티모어 지점의 손실(300만 달러)로 본점이 파산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이에 의회에서는 진지하게 '제2 미국은행'의 기간 종료를 앞당기는 것을 고민했다. 그만큼 문제가 심각했다. 결국 윌리엄 존스 은행장의 사임으로 마무리되었다.


2대 은행장인 랭던 취비스(Langdon Cheves, 1776~1857)는 하원 의장(8대)을 역임할 만큼 경륜 있는 정치인이었다.



랭던 취비스  <출처 : 위키피디아>


하지만 '1819년 경제공황(Panic of 1819)'으로 위기를 불러왔다.


'1819년 경제공황'과 급격한 대출 회수


1대 은행장인 윌리엄 존스가 남발한 대출을 너무 빠르게 회수했던 것이다.


그가 시행한 급속한 유동성(은행권) 축소와 대출 회수가 정책상 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기가 문제였다. 경제 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갑작스러운 대출 회수는 오히려 경제 상황을 악화시켰다.


나폴레옹 전쟁이 영국의 승리로 끝난 후, 유럽 각국은 황폐해진 농토를 개간하여 농업 생산력을 회복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농산물 수입이 축소되는 시기였다.


유럽 전쟁 특수를 누린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서, 농민들의 삶이 일순간 어려워졌다.



제2 미국은행의 1,000달러 발행 어음   <출처 : 위키피디아>


이러한 시기에 갑작스러운 대출금 회수는 모두 죽으라는 의미와도 같았다.


'1819년 공황'으로  담보로 잡힌 농토가 압류되면서, 파산하는 농민이 속출했다. 대출을 주도한 주법은행도 이와 발맞춰 파산 대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결국 연방정부의 토지 매각도 중단되면서 상승하던 부동산 가격도 추락했다.


경기 침체로 대도시에 불황이 닥쳐왔고, 실업자가 거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1819년 경제 공황(Panic of 1819)'이라고 부른다. 불황은 2년 여간 지속됐다.



1819년 경제 공황  <출처 : 위키피디아>



'제2 미국은행'과 금융에 대한 불만


처음 맞이한 금융 위기는 사람들의 의식을 새로이 일깨워 주었다. 은행을 살리기 위해 경제를 죽인 은행가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크게 커진 것이었다.


그 중심에는 '제2 미국은행'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불황을 잊지 않은 서민들은 후에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1767~ 1845)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표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1828년 대통령 당선).



앤드루 잭슨  <출처 : 위키피디아>


제2 미국은행장인 랭던 취비스는 연임에 성공하나, 좋지 않은 인식으로 서민의 불만이 높아져 있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얼마 후에 사임했다.


공석이 된 은행장의 자리에 1823년 1월, 제임스 먼로 대통령에 의해 37살의 니콜라스 비들(Nicholas biddle, 1786~1844)이 새로이 임명되었다.


니콜라스 비들의 은행장 취임


비들의 시대를 맞이해 비로소 '제2 미국은행'은 진정한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됐다.


그는 중앙은행의 역할 정립을 통해 금융 정통파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빠른 시간 내 통화 공급을 조절하여 유동성(화폐) 공급에 노력했다.


니콜라스 비들   <출처 : 위키피디아>


'제2 미국은행'의 재무건전성에도 주력했다. 지점 확장을 통한 지역 간 지급결제 제도를 크게 개선시켰다. 이로 인해 서부지역 주법은행이 발행한 은행권 할인율이 대폭 개선되면서, 이 곳 주민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반대로 할인율을 통해 중간 수수료로 먹고사는 중개인들과 은행권 축소 규제를 받게 된 주법은행의 불만은 커졌다.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이 1820~30년대 미국 금융의 시대적 배경이었다.


 ‘은행 전쟁(Bank War)’의 서막


1828년 은행을 ‘화폐 권력’이라 부르며 증오한 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이었다.



은행 전쟁 삽화 <출처 : 위키피디아>


'제2 미국은행'을 사이에 두고 앤드루 잭슨 대통령과 니콜라스 비들 은행장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은행 전쟁(Bank War)’이라고 부른다.





안녕하세요, 한정엽입니다.

너무 오랜만에 연락을 드려 무척 송구스럽습니다.


다행히 와이프의 안과 수술과 둘째의 수시 입시는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마음속으로 염려해 주신 구독자님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글의 작성이 원래 계획(9월 중순)보다 한 달여 늦어진 에 대해 설명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연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약 30여 편 가까이 작성된 글을 모두 폐기하고 다시 작성했습니다. 이유는, 제 개인적인 의견담겨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했다는 판단에 시간이 걸려도 다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수정 작성된 글에도 방향성에 대한 혼란을 드리게 된다면, 구독자님의 과감한 질책을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작년에 계약했던 재무회계 관련 원고가 마무리 되어 11월 중순에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10월에 출판사 편집자님과 막바지 작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여기에 집중 했습니다.


참고로 출판사는 '원앤원북스'이며, 제목은 《회계가 직장에서 이토록 쓸모 있을 줄이야》입니다. 출간되는 책의 자세한 내용은 추후 별도로 기재해 놓겠습니다.


이런저런 개인적 사정에도 '미국 경제사 이야기'를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향후 좀 더 꼼꼼히 글을 작성하면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편하게 읽어 보실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한정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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