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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Oct 23. 2020

은행전쟁(Bank War) 1

니콜라스 비들 3

'은행전쟁(Bank War)'은 1832년부터 36년까지 진행된 역사적 금융 사건이다.


면허 기간 만료를 앞둔 '제2 미국은행(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이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 의해 문을 닫게 되면서, 감독 기관이 없어진 주법은행이 활기찬 시대를 맞이한 사건이다.


은행전쟁(Bank War)의 결과


잭슨 대통령과 은행가들의 싸움을 묘사한 삽화  <출처 : 위키피디아>


결국 은행전쟁은 '제2 미국은행(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의 편에 서 있는 친 은행 세력과 반 은행 세력과의 정치적인 싸움이었다.


결과적으로 반 은행 세력이 승리했다. 중앙은행 격인 '제2 미국은행'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친 은행 편에는 은행장인 니콜라스 비들(Nicholas biddle, 1786~1844)과 헨리 클레이(Henry Clay, 1777~1852) 상원의원, 다니엘 웹스터(Daniel Webster, 1782~1852) 하원의원이 있었다.


반대편에는 앤드루 슨 대통령과 언론인 아모스 캔달(Amos Kendall, 1789~1869), 로저 타니(Roger B. Taney, 1777~1864) 재무부 장관 등이 있었다.



언론인 아모스 캔달   <출처 : 위키피디아>


시대적 배경


'제2 미국은행'의 태생적 한계는 면허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1816년부터 36년까지 20년 동안 운영이 가능했다.


제3대 은행장인 니콜라스 비들은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고자, 종료 이전에 면허 기간 연장을 진행했다.


당시 '제2 미국은행'은 미국의 중앙은행 격으로 연방정부의 세수입을 독점적으로 운영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아울러 각 주법은행(State Bank, 각 주의 은행법에 근거하여 설립된 은행)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연방정부의 재정을 향상시켜 경제를 안정화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전국에 유통 가능한 은행권(지폐) 공급을 통해 신용을 확대하였다. 다른 국가와 무역에서 손해를 보지 않게 환율의 변동성을 안정화시키는 업무도 하고 있었다. 또한 주법은행의 대출 관행을 규제하여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고 있었다.


제2 미국은행(필라델피아)   <출처 : 위키피디아>


사실상 금융에 관한 전권을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의 금융시스템으로 보면 당연한 업무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특혜이자 독점적인 권력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불만


서민의 편에 서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1767~ 1845)도 이 점이 못마땅했다.


농부와 서민의 돈을 이용하여 위험한 투자와 정치 간섭을 통해, 연방정부 자금을 무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소수 몇몇을 위한 경제 특권의 부여도 문제로 보았다.


잭슨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기회균등의 훼손과 연방정부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울러 중앙은행의 업무는 민간인이 아닌, 의회에게 그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만이 헌법의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여긴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부여한 자유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겼다. 은행가를 소수의 독점 권력을 통한 부패의 화신으로 본 것이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두 세력 간의 충돌을 야기했고, 어느 한쪽이 물러서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니콜라스 비들의 선제 대응


비들은 1828년 잭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제2 미국은행'의 면허 연장 문제에 대해 여러 번에 걸쳐 당위성을 설명했다. 때로는 간절하게 간청도 했다. 하지만 잭슨 대통령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1832년 잭슨 대통령이 재선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제2 미국은행'의 기간 종료는 불을 보듯 뻔했다.


이에 비들은 선수를 치기로 했다. 1832년 초,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기 몇 개월 전부터 의회 의원들을 설득하고 다녔다. '제2 미국은행' 허가를 연장해 달라는 청원이었다.



다니엘 웹스터   <출처 : 위키피디아>


1832년 초, 비들은 *국민공화당(National Republican Party, 1824년 설립, 1834년 휘그당으로 변경) 소속의 헨리 클레이 상원 의원과 다니엘 웹스터 하원 의원과 손을 잡았다.


(참고로 국민공화당은 1828년 대통령 후보로 존 퀸시 아담스를, 1832년 대통령 후보로 헨리 클레이를 선출했으나 모두 잭슨에게 패하였다. 이후 1834년 휘그당(Whig Party, United States)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휘그당은 반 잭슨 주의, 전통과 보수주의 기치를 내세웠다. 이후 1856년 해체됐다.


휘그당의 대통령으로는 1840년 윌리엄 헨리 해리슨(William Henry Harrison, 1773~1841) 제9대 대통령, 1848년 재커리 테일러(Zachary Taylor, 1784~1850) 제12대 대통령이 있다)


휘그당 출신의 재커리 테일러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결국 의회에서 이 안건('제2 미국은행'의 면허 연장)을 통과시켰다. 비들은 한숨 놓았다. 1832년 대통령 선거가 몇 달 남지 않았기에, 잭슨 대통령이 법안을 거부하기 힘들 것이라고 확신했다.


같은 편인 클레이 상원의원은 정치적 목적이 따로 있었다. 그는 은행을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잭슨에게 정치적인 위협을 가했다고 생각했다.


의회를 통과한 연장 안건은 대통령 책상 위에 놓였다. 의회는 잭슨 대통령을 압박했다.



마틴 밴 뷰런   <출처 : 위키피디아>


하지만 천하의 잭슨은 이 도전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부딪쳤다.


그는 이전부터 마틴 밴 뷰런(Martin Van Buren, 1782~1862) 에게 “은행이 나를 죽이려고 하지만 내가 오히려 그것을 죽일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순순히 물러서지 않음을 보여줬다.


잭슨 대통령의 반격


잭슨은 의회에서 상정된 안건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7월 10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당시 그가 작성한 메시지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자와 권력자가 연방정부가 부여한 권위를 이기적인 목적으로 휘두르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올바른 사회적 기준과 판단은 정당한 정부 아래에 존재한다. 개인의 재능, 정당한 교육, 부의 평등은 인간에 의해 생성될 수 없다. 하늘의 축복과 함께 산업과 경제의 바탕이 되는 온전한 노동의 열매로 누리게 될 때, 모든 사람은 법으로 보호받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법이 특정인이나 조직에게 의도적인 특권을 부여하여 부자가 더 부자가 되고, 특별한 수단이 없는 이들은 이것을 공정하게 얻지 못하게 될 때, 불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은행전쟁 당시 잭슨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출처 : 위키피디아>


그의 거부권 메시지는 '통제된 권력이 장악한 금융권 독식을 종료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아울러 연방정부의 보호 아래 기회의 평준화를 촉구하는 정치적 선언으로 전달되었다.


자신의 위기를 대중적인 기회로 만들었다.


결국 '제2 미국은행'은 독점적 조직이고, 권력과 돈 많은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정리했다.


경제와 금융의 관점이 아닌, 정치적인 사상과 주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비들의 선제 공격에 잭슨의 반격이 제대로 먹혔다.


여론은 대통령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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