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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Mar 07. 2021

US스틸 초대 회장 찰스 슈왑의 생애

앤드루 카네기 7

카네기는 홈스테드 파업 후 서서히 은퇴를 고려했고, 1901년 회사 매각을 통해 실천했다.


카네기 철강소의 찰스 슈왑


1900년 초, 회사는 날로 성장했고 부는 넘치도록 쌓였다. 당시 카네기 철강소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찰스 슈왑(Charles M. Schwab, 1862~1939)이었다.


찰스 슈왑(39세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슈왑은 독일계 이민자로 1862년 펜실베이니아 주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에서 태어났다.


그는 카네기 철강소의 엔지니어로 경력을 시작했고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1887년 홈스테드 철강소 총괄, 1890년 에드가 톰슨 철강소 총괄 대표직을 역임했다. 1897년에는 35살의 나이에 카네기 철강소 회장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베세머 공정을 통한 수익 증가


 당시 그의 주요 관심사는 철강 산업지속적인 수익 구조였다.



베세머 공정 <출처 : 위키피디아>


막대한 이익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에 많은 연구를 했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통합적 연계 구조를 통해 시장을 지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게 되었다.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가격을 낮추어 시장 점유율을 높이면 판매량만큼 이익을 얻게 된다는 결론이었다.


그렇기 위해서는 지금의 철강소를 통합하여 누구도 적하지 못할 강력하고 거대한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이 내용으로 발표를 했을 때,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진 이가 금융가인 J.P. 모건(John Pierpont Morgan, 1837~1913)이었다.


J.P. 모건 <출처 : 위키피디아>



금융황제 J.P. 모건과 찰스 슈왑의 연합


슈왑은 1901년 J.P. 모건이 지휘하는 금융가 집단에게 카네기 철강소를 매각하는 업무를 도와주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당시 골프에 빠져 있던 카네기를 설득하기 위해 J.P. 모건과 치밀한 각본을 짰다. 치열한 승부 끝에 카네기가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든 다음, 철강소 매각 협상을 진행했다.


단 몇 시간 만에 골프장 회동은 성공했고, 이 계약으로 카네기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이를 지휘한 이가 찰스 슈왑이었다.


US스틸의 탄생과 베들레헴 철강소 운영


카네기의 철강소를 인수한 모건은 타 철강소와 합병을 거쳐 1901년 US스틸(United States Steel Corporation)로 상장을 하게 되고 자본금은 14억 달러였다.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자본금이 10억 달러가 넘는 회사였다.


US스틸 로고 <출처 : 위키피디아>


슈왑은 초대 대표가 되었으나 동료 임원이었던 앨버트 게리(Elbert Gary)와 모건과의 잦은 충돌로, 1903년 이 곳을 나와 베들레헴 철강소(Bethlehem Steel Company)를 운영하게 됐다.


그는 철강에 관한 천부적인 자질과 능력으로 시대를 뛰어넘는 제품을 생산해 냈는데, ‘I-빔(I-beam)의 앞선 모델인 ‘H-빔(H-beam)’이었다.


이 H-빔을 통해 빌딩 건설 방식에 신제품을 적용해 폭발적인 수요를 만들었다.


H-빔 <출처 : 위키피디아>


당시 그의 주장으로 공장과 설비를 지을 때 수많은 투자자의 반대가 있었다. 판매 확보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슈왑은 투자자들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대규모 설비와 공장을 완성했고 건설 붐이 불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베들레헴 철강소의 성공과 경영 철학


교량 및 고층 건물에 강철 빔이 대량으로 사용되면서 압연 구조용 제품공급하는 선도적 회사가 되었다. 


마천루라는 시대를 만들어낸 일등 공신이었다.


베들레헴 철강 <출처 : 위키피디아>



이 성공으로 회사는 세계 두 번째로 큰 철강회사로 태어났다.


이후 베들레헴 철강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막대한 주문량을 소화하면서 다시 한번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뛰어난 역량에도 슈왑의 경영 마인드는 당시 기업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철저히 노조를 싫어했고 1910년에 발생된 베들레헴 철강소 파업도 공권력을 이용해 제압했다.


결국 그의 재직 시기에 회사는 노동조합을 가질 수 없었다.



인간관계론 <출처 : 위키피디아>


그가 회사를 운영하고 직원을 다루는 기술은 성공학의 대표적 저서인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의 《인간관계론(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 1936)》에서 자세히 다룰 정도로 유명했다.


허술한 자기 관리와 죽음


슈왑은 철저한 조직 관리 및 사업 운영과 달리, 자기 자신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부를 아낌없이 사용했는데, 1929년 대공황 발생 전에 수많은 재산을 대부분 사용한 생태였다. 현 기준으로 약 5억 달러에서 8억 달러 사이로 추정된다.


타고난 바람기로 혼외자식도 있었고 도박도 했다. 이로 인해 부인과의 갈등도 심했다.



찰스 슈왑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결국 대공황으로 그의 낭비는 끝이 났으나 가진 것을 모두 다 잃고 난 뒤였다.


말년을 작고 조그만 아파트에서 생활고 죽음을 앞둔 시기에는 약 30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사후, 베들레헴 철강은 제2차 세계대전의 물자 공급으로 엄청난 이득을 보게 되었고, 그의 지분 가치도 비례하여 늘어났다.


리더십은 강했으나, 자기 관리가 허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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