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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Mar 25. 2021

세기의 비극, 러들로 학살 1

존 데이비슨 록펠러 5

이 사건은 1914년 4월 20일에 발생된 것으로, '콜로라도 석탄 전쟁(Colorado Coalfield War)'중에 발생된 가장 큰 참사였다.


록펠러 가문 소유의 탄광에서 일어났다.


러들로 학살(Ludlow Massacre)의 주요 내용


이것은 탄광 파업 노동자와 콜로라도 주 방위군(당시 탄광 보안대 역할 수행)의 싸움 끝에 발생된 것으로 어린이 11명을 포함, 2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대부분 탄광 노동자의 가족이었다.


러들로 학살 사건의 잔해  <출처 : 위키피디아>


일방적인 공격으로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파업 노동자 가족들이 천막 아래 파놓은 대피호에서 질식사하였다.


희생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아이는 겨우 태어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생아였다.


사건이 발생된 장소는 콜로라도주 러들로 지역이었다.


콜로라도 탄광 지역의 생활상과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


당시 콜로라도 지역 내 탄광 노동자의 삶은 비참했다.


공장에 소속된 노동조합의 주도권은 백인과 숙련된 노동자 중심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고, 이들은 미국노동연맹(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FL) 소속이었다.


세계산업노동자연맹 로고 <출처 : 위키피디아>


끊임없이 밀려오는 이민자들은 낯선 미국에서의 생계유지를 위해 탄광에서 일하게 됐다. 가진 것은 몸밖에 없었기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기존 노동자들의 텃세가 심했다.


신규 노동자인 이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줄 별도의 단체가 필요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1905년에 사회주의 성향을 가진 '워블리'라 불린 '세계산업노동자연맹(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IWW,  Wobblies)이 결성되었다.


이 IWW 산하에 '미국 광부 노조(United Mine Workers of America, UMWA)'가 속해 있었다.


유럽에서 건너온 많은 노동자들이 이 에 가입을 했다.


당시 탄광 노동자들은 일반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보다 환경이 더 열악했다. 탄광 내 폭발, 질식, 디딤목을 세워둔 벽의 붕괴 등으로 끊임없이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1910년 1월, 록펠러 소유의 CF&I 광산 사고(75명이 폭발로 사망) <출처 : 위키피디아>


1912년 콜로라도 광산의 사망률은  1,000명당 7.1명 꼴이었고, 전국 3.15명 대비 사망률이 2배가 넘었다.


광산 회사의 무리한 운영 방식


광산 회사는 끊임없이 이익을 만들기 위해 낮은 임금과 가혹한 원가 절감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했다. 엄격한 경영 방침까지 더해져  광부들의 삶은 비참했다.


콜로라도 광산 지역은 대부분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동유럽, 남유럽 등의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회사는 일부로 이들을 고루 섞어 놓아 의사소통을 어렵게 했다. 조직화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아놓은 것이다.


언어 소통도 힘들었고 가진 것은 육체적인 노동력밖에 없었다. 생존권을 보장해줄 노조를 만들려고 했으나 회사의 조직적인 방해로 실패했다.



천막촌 파업 노동자들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당시 탄광에서의 관행은 채굴한 석탄의 톤수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는 방식이었다.  


석탄 이동을 위한 철로 부설, 갱도를 이어주거나 버팀목을 위한 갱 지주 작업 등의 노동 수당은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


아울러 반강제적으로 회사에서 제공된 막사 촌에 머물러야 했다.


이 곳에는 학교, 의사, 성직자, 치안기구가 있었고 여기서 사용 가능한 전표를 임금 형태로 지급받았다.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은 오직 지정된 상점에서만 구입이 가능했다.


회사는 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복지정책을 계속 축소했다. 이익을 올리고자 직영 상점의 판매 가격도 대폭 올렸다. 


탄광 노동자들의 생계비는 순식간에 폭등했다.



러들로 천막촌 광부 가족들 <출처 : 위키피디아>


불만을 표현할까 염려해 노동자들의 단체 모임 등을 철저히 방해했다.


노동자들의 저항과 정보 공개 요구


콜로라도 주의회는 회사가 발행한 전표의 의무 사용은 불법으로 규정했다. 광산 지역 생활을 향상하기 위한 법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하지만 회사는 이를 무시했다. 사실상 지켜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탄광에서 채굴한 석탄을 재는 저울과 판매할 때 사용되는 저울의 기준이 다르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회사 측의 명확한 정보 공개를 요구한 것이다.


광부들의 채굴 양을 회사가 속이고 있다는 내용이었지만, 회사는 이를 거부했다.



콜로라도 퓨얼 & 아이언 컴퍼니 회사 <출처 : 위키피디아>


이 지역에서 가장 큰 광산회사는 록펠러 가문의 소유였던 콜로라도 퓨얼 & 아이언 컴퍼니(Colorado Fuel & Iron Company, CF&I) 였다.  


로키 마운틴 퓨얼 컴퍼니(Rocky Mountain Fuel Company, RMF)와 빅터-아메리칸 퓨얼 컴퍼니(Victor-American Fuel Company, VAF) 사가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콜로라도 퓨얼 & 아이언 컴퍼니(CF&I)가 가장 문제점이 많았다.


문제 해결을 위한 7가지 요구 조건


열악해지는 삶의 과 위험해지는 업무 환경을 위해 광부들은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이들을 대신해 회사와 협상 진행을 맡은 것은 '미국 광부 노조(United Mine Workers of America, UMWA)' 산하의 '서부광부연맹(Western Federation of Miners, WFM)'이었다.


대상은 록펠러 가문과 여러 투자자들이 소유한  콜로라도 퓨얼 & 아이언 컴퍼니(CF&I)였다.


이 회사는 현실과 무도 동떨어진 가혹한 경영으로 광부들로부터 악명이 높았다.



미국 광부 노조(UMWA)  로고 <출처 : 위키피디아>



1913년 이들이 내세운 조건은 7가지였고, 광부들은 바로 파업에 들어갔다.      


1. 노조를 협상 대상으로 인정할 것

2. 채탄 가격 인상(임금 10% 인상)

3. 하루 8시간 노동법 준수

4. '무임금 노동'(철로 부설, 갱 지주 작업 등)에 대한 임금 지급

5. 채탄의 무게 측정 시 노조 측에서 선출한 인원 입회(투명성 보장)

6. 회사가 지정하지 않은 상점과 기숙사, 의사를 이용하고 선택할 권리

7. 콜로라도 주 법의 엄격한 준수(광산 안전 법규, 회사 발행 전표의 폐지 등)와 위협적인 회사 보안대의 폐지


회사 측은 즉각 제시된 조건을 거부했고,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회사에서 쫓아냈다.


쫓겨난 광부들은 광부노조 측에서 제공한 토지 위에 텐트를 세우고 천막촌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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