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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채권(10) 치머만 전보 사건과 미국의 참전 2

3. 제1차 세계대전 - 당신의 애국심을 보여 주세요

by 한정엽

1915년 5월, 영국 민간 여객선 루시타니아(Lusitania) 호가 독일 잠수함의 어뢰 공격에 아일랜드 남쪽 해안에서 격침되어 침몰된 것이다.


루시타니아 호 침몰과 미국의 분노


이 배의 침몰로 약 1,200여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문제는 사망자 안에 미국인이 126명 포함되어 있었다.


루시타니아 호의 침몰 <출처 : 위키피디아>



이 사건으로 미국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당시 민간인을 태운 비무장 여객선을 침몰시킨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분별하고 비양심적인 독일의 공격에 분노했고 중립의 입장에 섰던 이들도 전쟁에 참전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급격히 돌아섰다.


윌슨 대통령의 재선과 전쟁 불참 선언


하지만 윌슨 대통령은 이런 여론을 억누르고 강력한 항의문을 발표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독일 잠수함의 불법행위에 대해 경고하는 것으로 끝을 낸 것이다.


사실상 미국의 전쟁 참전은 불가능해 보였고, 1916년에는 ‘전쟁에 참전하지 않겠다’는 공약으로 대통령 재선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19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수락하는 윌슨 <출처 : 위키피디아>


일명 ‘치머만 전보(Zimmermann Telegram)’ 사건이었다.


치머만 전보 사건의 파장


1917년 독일 외무장관 아르투르 치머만(Arthur Zimmermann)이 1월 16일 자로 멕시코 주재 독일대사에게 보낸 비밀 전보 한 통의 내용이 공개되었는데, 독일이 멕시코, 일본과 동맹을 맺고 미국을 공격하자는 내용이었다.


그에 대한 대가로 재정적 지원은 물론 옛 멕시코 영토였던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를 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영국 정보부가 내용을 감청, 해독하여 미국 측에 전달한 것이다.


이 내용이 공개되자 미국 여론은 단숨에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여론으로 돌아섰다.



치머만 전보 사건을 풍자한 그림 <출처 : 위키피디아>


참전 여론과 멕시코의 사실 확인


하지만 윌슨 대통령은 신중했다.


유럽 전쟁에 미국의 젊은이들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가 강했다. 이 전보는 ‘영국이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한 모종의 거짓된 조작’이라는 음모설도 파다하게 퍼졌다.


영국 정보부는 거짓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런 소동 속에 3월 29일, 어처구니없게도 독일의 치머만 장관이 전보 내용은 사실이라고 발표했다.


전보를 받은 멕시코 정부도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중립을 지키겠다는 내용 발표와 함께 ‘전보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미국에 알려왔다.


독일 치머만 장관 <출처 : 위키피디아>


이어 전보의 일부 내용처럼 실제로 독일 잠수함의 무제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악화된 여론과 미국의 참전 선언


중립국 선박도 예외가 아니었고 1917년 라코니아(RMS Laconia)호가 독일 잠수함의 무제한 공격에 의해 피격되면서 미국인 승객이 사망하자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미국인들은 당장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전쟁을 말리는 이들은 매국노로 불릴 정도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결국 여론에 굴복한 윌슨 대통령은 1917년 4월 의회에 전쟁 선포를 요청했고 상원과 하원의 압도적 다수로 가결되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1917년 독일과의 관계 단절을 발표하는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전쟁 채권을 통한 전비 마련


드디어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선전포고 당시 미군의 수는 얼마 없었고, 장비도 턱없이 부족했다.


바로 군인 모집을 시행해야 했고 훈련도 시켜야 했으며 장비도 구비해야 했다.


문제는 이를 충당할 돈이었다. 정부의 예산은 불을 보듯 뻔해서 별도의 돈을 마련해야 했고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쟁에 항상 따라다니는 전쟁 채권의 발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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