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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Oct 17. 2021

미국 철도의 시작과 산업의 발달

기술과 산업의 발달 7

"사람들이 증기 기관을 통해 살고 있는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면서 편안하게 여행할 때가 올 것입니다. 새가 1시간에 15~20 마일을 날아가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이동할 것입니다 “


이 말은 1812년에 미국의 발명가 올리버 에반스(Oliver Evans)가 증기 기관과 철도가 만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예언을 통해 조만간 닥쳐올 미래를 예측한 말이다.



올리버 에반스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철도의 미래를 내다본 선구자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되는 이 말이,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근거없는 상상이나 뜬 구름 잡는 공상과도 같이 받아들였다.


실제로 사람들의 많은 조롱과 비웃음을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막연하게 증기기관을 철도에 이용한다는 생각과 ‘과연 그것이 움직일까?’ ‘칙칙 거리다 폭발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 말은 50년의 시간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공공 목적으로 철도를 처음 운영한 나라는 1825년의 영국이었다.


영국에서 성공한 초창기 증기기관차


초기 증기기관차를 이용하여 영국의 스탁턴(Stockton)과 달링턴(Darlington) 사이의 40km 거리를 시속 20km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사용된 연료는 석탄이었다. 어마어마한 연기를 배출하는 시스템이 부족한 한 것은 물론 빈번한 고장과 잦은 수리로 악명이 높았다.



1825년 9월에 운행한 증기기관차 <출처 : 위키피디아>



사실상 사업적인 이익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이후 개량과 개선을 통해 실제로 사업성을 검증받은 것은 1830년경 이었다. 영국의 무역항 리버풀과 면직물 산업의 중심지였던 맨체스터 간 약 45km의 거리를 40km/h 속도로 운행한 기차였다.


에반스의 예언이 나오고 18년 후에 영국에서 실현이 된 것이다. 


이를 바라본 미국의 기술자들과 투자자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조만간 세상을 바꿀만한 기술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머릿속에 있는 상상의 물건을 현실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 미국 기술 발전의 시작이었다.



1830년 당시 철도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미국 철도의 시작과 특허법의 효과


이는 1790년 미국의 특허법 발효로 그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특허법은 특허를 출원한 이들에게 ‘돈’이라는 실질적인 결과를 전달해 주면서 성장했다.  


아울러 수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아무것도 없이 오직 기술과 아이디어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고, 이런 금전적 혜택을 받은 대상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를 가장 성공적으로 키운 사람은 링컨 대통령이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선진적 기술을 만들고 발명할 수 있다면 당연히 남들과 다른 큰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정책에 반영했다.



특허 제도를 적극 권장한 링컨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링컨 대통령의 명언 중에 “특허제도는 이익이라는 연료를 천재라는 불 위에 뿌리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기술 발전을 통한 미국의 성장


사실 초창기 미국의 산업은 농업 중심이었다. 광활한 영토의 축복은 유럽의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였지만, 이를 활용 할 수 있는 기술력은 형편없었다.


농사를 사람의 노동력에 의지해야 했고, 수확된 농산물의 이동 수단도 애팔래치아 산맥에 가로막혀 너무도 많은 물류의 비효율성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하나둘 극복되면서 기술의 발전이 미국을 번영의 나라로 만들어 나갔다. 


이런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매코믹의 자동 밀 수확기였다.



매코믹의 자동 밀 수확기 <출처 : 위키피디아>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사업화가 가능하게 만들어 주면서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특허제도가 부를 가져다준 것이다.


밀 농사가 성공하고 이를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운송의 혁신을 가능하게 만든 철도가 있었다. 운하의 뒤를 이은 철도는 사실상 미국 내 핵심 운송수단으로 떠올랐다. 


대륙횡단철도와 철도 투자의 성공


미국 철도 산업의 절정기는 남북전쟁 시기에 시작된 대륙횡단철도의 완성이었다.


물류의 혁명을 불러온 이 사건으로 초창기 철도 산업의 투자자들은 떼돈을 벌었고 단번에 당대의 거부로 올라섰다.



미국 대륙횡단철도의 개통 <출처 : 위키피디아>



당시 철도 산업은 신의 기술로 인정받았고 연관된 산업이 고루 성장하면서 미국을 산업 강국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미국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시기에 유럽을 능가할 정도의 산업 생산력을 자랑했다. 


아울러 철도회사 주식으로 떼돈을 번다는 소식에 엄청난 자금이 철도 회사 투자금으로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이는 금융의 발전도 동시에 이끌어 냈다. 


철도의 역할과 물류 혁명


초기 대륙횡단 열차는 목재를 원료로 사용하였다. 이후 석탄이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대형 기관차가 출현하였고 이는 더욱더 많은 사람과 화물을 운송하게 되었다.


결국 철도는 짧은 시간 내 기존의 마차를 대신하여 지역 간 운송 수단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대규모 운송은 물류비를 절감시켰고, 이를 통한 유통산업과 경제의 발전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초창기 디젤 기관차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더구나 여행이 편리해지면서 인적 교류도 활발해졌다.


서부로 사람이 몰리면서 서부개척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당시 마차로 한 달 정도 가야 했던 거리를 단 6일 만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여객 운송 및 물류 비용도 과거보다 10% 밖에 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철도를 통해 동과 서를 연결해 나간 것이다.


철도로 몰려드는 투자 자본


이러한 철도산업의 발전은 또다시 대규모 자본을 끌어 올 수 있었고, 당연히 투자가들이 모여들었다.


철도로 혜택을 본 것은 단순 투자자들만은 아니었다.



철도 황제 밴더빌트의 아들 윌리엄의 철도 독점을 풍자한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철도의 기간망을 이용해 대규모 사업을 벌인 사업가들이 더 많은 혜택을 보았다.


당시 유명한 사업가들이 철강왕 카네기, 스탠더드 오일의 록펠러였다. 이에 더해 철도왕 코넬리어스 밴더빌트를 포함해 금융 황제 J. P. 모건도 있었다.


급성장하는 미국의 제조산업과 금융업


철도산업을 시작으로 미국의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갔다.


지역적 통합이 이루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연방정부가 미국 전체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1918년 미국 철도 지도 <출처 : 위키피디아>



이후 미국의 국내총생산은 4배 이상 커지게 되고, 경제 규모가 유럽을 압도할 수 있는 규모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세계 경제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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