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입매수(LBO)의 시작과 마이클 밀켄 이야기 15
정크본드(Junk Bond)라는 말은 금융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이 발행하는 고위험·고수익 채권을 의미했다.
'정크(junk)'라는 단어가 본래 '쓰레기'를 뜻했지만, 금융 시장에서는 투자 부적격 등급(BB 이하)의 신용등급을 받은 채권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대표적인 신용평가사인 무디스(Moody's)에서는 Ba1 이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서는 BB 이하 등급의 채권이 정크본드로 분류되었는데, 사실상 투자 목적으로 굉장히 위험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러한 정크본드의 주요 특징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높은 수익률이었다.
정크본드는 신용위험이 크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일반 채권보다 훨씬 높은 이자율(수익률)을 제공했는데, 실제로 지난 10년간 미국 정크본드의 투자수익률은 투자등급 채권의 두 배 가까운 수준에 달했다는 통계도 있었다.
두 번째로, 높은 위험성이었다. 당연히 발행 기업의 신용도가 낮았기에, 파산이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시장 상황이 악화되거나 해당 기업의 재무 상태가 나빠질 경우 원리금 상환이 어려워질 수 있어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세 번째 발행 목적이 독특했다.
이 채권을 발행한 기업은 주로 성장성이 높지만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 혹은 인수·합병(M&A) 등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한 사례가 많았다.
그만큼 시장에서 변동성이 높았다.
특히 금리 인하의 기대감, 급격한 경제 상황의 변화 등에 따라 정크본드 시장의 투자율이 널을 뛰었고, 이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과 수요가 덩달아 변동성을 가져간 것이다.
이런 정크본드의 특성을 이용해 1980년대 금융계에 새로운 혁명을 몰고 온 이가 바로 마이클 밀켄이었다.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은 194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금융인으로, '정크본드의 황제'로 불렸다.
그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버클리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후 와튼스쿨에서 MBA를 취득했다.
여기서 밀켄은 신용도가 낮은 채권에 관해 깊은 연구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금융 혁신의 씨앗이 되었다.
밀켄은 미국 투자은행 드렉셀 번햄 램버트(Drexel Burnham Lambert)에서 채권부장으로 일하면서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이 발행하는 고수익 채권, 즉 정크본드 시장을 개척했다.
그의 사무실은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멀리 떨어진 캘리포니아 비벌리힐스에 위치했는데, 이는 상징적으로 그가 월가의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아웃사이더였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X자형 책상"에서 자신이 일으킨 정크본드 제국을 운영하면서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오전 5시부터 업무를 시작해 하루 18시간 이상을 일에 몰두했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밀켄의 개인 연봉은 5억 5천만 달러에 달했으며, 이는 당시 월스트리트에서 전례 없는 금액이었다.
그는 매년 "채권인들의 축제"라 불리는 대규모 콘퍼런스를 개최했고, 이 자리에서 기업가, 투자자, 금융인들이 모여 거래를 성사시켰다.
밀켄이 주도한 혁신은 쉽게 말해 신용등급이 낮아 전통적인 금융기관에서 자금 조달이 어렵거나 불가능했던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에, 사업이나 기술 개발에 필요한 자본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그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금융인이 아니라, 미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제공하는 '자본의 민주화'를 추구했다고 자신을 정의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지원을 받은 MCI, 터너 브로드캐스팅(지금의 CNN), TCI, 타임워너, 바이어컴 등은 이후 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는데, 정크본드가 '쓰레기'가 아니라 '보물'이 될 수 있음을 실제로 입증한 인물로 평가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