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입매수(LBO)의 시작과 마이클 밀켄 이야기 16
마이클 밀켄의 정크본드 투자 전략은 미국 금융 시장의 판도를 바꾼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그럼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요소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서 역사적인 결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했던 것이다.
밀켄은 기존 금융기관이 외면했던 저신용등급 기업(비투자등급, 즉 BB 이하)의 채권에 집중했다.
그는 이들 기업이 충분한 현금흐름과 성장 가능성이 있다면, 향후 기업가치가 상승해 높은 이자를 어렵지 않게 지급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두 번째로 높은 위험성 대비 폭발적인 수익률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그는 1950년대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였던 브래독 히크먼(W. Braddock Hickman)의 연구를 토대로, 정크본드가 디폴트(파산) 위험은 높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위험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높은 수익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엄격한 금융계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충격적인 발상이었지만, 여러 기업체 투자를 통해 실제로 사실임을 증명해 내었다.
세 번째는 분산투자와 '하우스 에지(House edge) ' 전략이었다.
밀켄은 카지노 업체가 확률적으로 항상 돈을 버는 것처럼, 투자자도 다양한 정크본드에 분산 투자하면 일부 기업이 부도나더라도 전체적으로 시장에서 받을 수 있는 수익률 대비 훨씬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하우스 에지'라고 불렀다.
이러한 투자 전략에 맞춰 정크본드 시장은 새로이 포지셔닝되고 창출되면서 점점 더 확대되었다.
사실 운영 초기에는 기존 투자등급 채권이 일시적 신용등급 하락으로 '정크'가 된 '폴른 엔젤(추락천사채권, fallen angel)'에 집중했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신용등급이 아예 낮은 기업이 정크본드를 발행할 수 있도록 시장파이를 키운 것이다.
이를 통해 막 태동하기 시작한 레버리지드 바이아웃(LBO) 시장과 이에 동반되는 기업 인수합병(M&A) 자금 조달 원천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결과적으로 정크본드는 기존 은행 대출로는 불가능했던 대규모 인수합병이나 레버리지드 바이아웃 자금 조달의 핵심 수단이 되었고, 이는 1980년대 미국의 기업 구조조정과 경영 혁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밀켄은 전통적인 동부 금융기관, 즉 뉴욕을 중심으로 한 월스트리트가 아닌,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이곳의 젊고 공격적인 자산운용사, 보험사, 저축대부조합 등 새로운 투자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투자자 네트워크와 정보 관리 또한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컴퓨터 시스템과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시장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관리했다.
이 과정에서 밀켄의 정크본드 전략은 단순한 개인적 감이나 직관이 아닌 철저한 데이터 수치에 기반했다.
이런 배경에는 와튼스쿨 대학원 시절부터 신용등급별 채권의 수익률, 부도율, 재무제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한 사례가 큰 경험이 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남들과는 다르게 컴퓨터와 초기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었다.
밀켄은 복잡한 재무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최첨단 컴퓨터 시스템에 투자했고, 이를 통해 수천 개 기업의 재무 데이터와 채권 성과를 비교·분석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한 투자의 선구자라고 볼 수 있었다.
그의 사무실에는 최첨단 컴퓨터 장비들이 속속 도입되었고, 직원들에게 항상 "데이터를 보라(Look at the data)"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내용이지만, 1980년대 오직 종이에 인쇄된 자료로만 연구하고, 컴퓨터가 도입되는 것을 꺼려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의 선구안이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타 업계 사람들은 이러한 방식을 거부한 사례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밀켄이 중점적으로 분석한 데이터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과거 신용등급별 채권의 수익률이었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에서 발행한 채권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제공했으며, 실제로 투자등급 기업이 발행한 채권보다 훨씬 더 수익률이 높다는 점을 데이터로 직접 확인한 것이다.
다음은 부도율(디폴트율) 통계였다.
정크본드는 부도 위험이 높지만, 여러 기업에 분산 투자할 경우 전체 포트폴리오의 부도율은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는 점을 과거 데이터를 통해 분석하고 이를 투자자에게 설득한 것이다.
세 번째는 시장 공급과 수요 분석이었다.
당시 금융 시장에는 투자등급 이하 채권의 공급이 매우 적었지만, 밀켄은 잠재적 수요가 크다는 점을 파악했고 이를 직접 공급하는데 앞장섰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현금흐름 분석이었다.
밀켄은 신용등급보다 기업의 실제 현금흐름과 미래 성장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여겼는데, 그의 팀은 기업의 재무제표를 심층 분석해, 기업이 받은 신용등급 보다 실제로 부채 상환 능력과 성장성을 더 높게 평가했던 것이다.
당시 유형자산 중심, 즉 토지와 건물, 공장을 가진 기업이 크게 성장한다는 것보다, 새로운 기술을 갖고 현금을 창출하는 기업이 더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마이클 밀켄의 정크본드 투자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시장의 비효율성 발견과 데이터 분석이었다.
그는 시장이 과소평가하던 정크본드의 가치를 데이터로 입증하여, 위험 분산과 장기적 수익률에 대한 확신을 제시함으로써 개별 채권의 위험보다 포트폴리오 전체의 수익성에 집중했던 것이다.
두 번째로 성장성 있는 기업과 투자자 연결이었다.
자금이 필요한 기업과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를 효과적으로 연결하여, 투자자 설득은 물론 시장의 신뢰를 구축하였는데, 이런 배경에는 그의 방대한 데이터와 분석력을 통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이는 나중에 출현할 사모펀드들이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경제 환경과 시장의 타이밍이 아주 좋았다.
1980년대 미국의 저금리 환경과 벤처 붐, 그리고 인수합병 시장의 활성화는 정크본드 투자 전략의 성공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당연히 레버리지 바이아웃의 성장도 밑바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