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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Jun 13. 2020

제2차 세계대전과 미국 경제

미국 경제역사 이야기 52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의 시작


약 6년여에 걸친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 진행되었다(종전은 1945년 9월 2일)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한 전쟁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경제적 호황기를 맞이한 미국은 이 시기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1940년의 GNP는 997억 달러였으나 1945년에는 2,119억 달러로 대폭 신장했다. 놀라운 성장률이었다.


기업들의 성장도 눈부셨다. 1939년 64억 달러에서 1942년 209억 달러로 3.2배 증가했다.


이는 뉴딜(New Deal)이라는 받침대 아래 기초를 튼튼히 한 뒤 높이 점프를 하게 된 효과로 나타났다.


전쟁 기간 동안 실업률은 완전히 자리를 감췄다. 수많은 기업에서 인력을 모집하는 바람에 사람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당시 인플레이션은 연방정부의 강력한 물가관리(급여 등)로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었다.



1941년의 루스벨트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전쟁 초기, 사회적 분위기는 참전을 하지 않는 쪽이었다.


1차 세계대전 중 외국에 빌려준 차관과 군수장비 판매 대금을 못 받은 사례가 있었다. 전쟁 지원을 하지 않고 유럽의 일에 관여하지 말자는 ‘고립주의’ 정책이 고개를 들고 나왔다.


의회에서는 1935~37년 사이에 전쟁 교전국에 군수장비 제공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1939년 금수조치 수정안이 나왔지만, 현금을 통해서만 군수품을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무기 대여법(Lend And Lease Act) 시행


결국 유럽 대륙이 독일의 손에 넘어갈 판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한 가지 방안을 마련했다.


그것은 ‘무기 대여법(Lend And Lease Act)’이었다. 연방정부에서 군수품을 사들여 연합국에 빌려주는 방식인 것이다.


그 예로 이웃집 호스 대여를 설명했다. ‘불이 난 이웃집(유럽)에 호스(군수장비)를 빌려 주는 것이다. 불이 꺼지면(전쟁이 종료되면) 호스는 돌려받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1944년 미국 군수 공장  <출처 : 위키피디아>


1941년 3월 ‘무기대여법(Lend And Lease Act)’ 과 70억 달러의 예산이 승인되었다. 최종 집행은 약 503억 달러를 사용하였다.


연합군이 전쟁터에서 사용하고 소비하는 모든 군수장비의 수량보다 더 많이 공급하고 지원해 준 것이다.

이 효과로 영국은 본토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2차 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진주만 공습과 미국의 참전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1941년 12월 7일의 진주만 공습(Attack on Pearl Harbor)이었다.


일본 항공모함의 함재기가 진주만에 정박해 있던 미국 태평양 함대를 공격해 침몰시켰다. 다음날 미국은 선전포고를 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1941년 진주만 공습 <출처 : 위키피디아>


전쟁 기간 중, 대규모 전시채권 구매 운동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개인(약 25% 매입)보다 은행과 증권사, 금융회사들이 구매했다. 1차 세계대전의 경험으로 전쟁 채권의 수익률이 좋다는 것을 인지한 효과였다.


전비 조달에는 세금의 역할이 컸다. 전쟁 비용의 약 45퍼센트를 충당했다. 그 중심에는 소득세가 있었다. 개인 소득과세율의 최고 세율이 자그마치 94%까지나 올라간 것이다.


면세 기준도 대폭 하향시켜 1,700만 명 이상이 세금을 내었다. 그 결과 소득세로 들어온 세금이 법인세 금액을 넘어선 것이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는 차이가 2배 이상 나기도 했다.


추가적으로 원천징수제도가 처음 시행되어 현금흐름도 개선시켰다.


USS 미주리(USS Missouri)호의 항복 문서 서명   <출처 : 위키피디아>



1945년 9월 1일 USS 미주리(USS Missouri)호가 도쿄 만에 진입하고, 다음 날 일본이 연합군에 정식으로 항복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막을 내렸다.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5,000만 명이 넘었고 전투에 참가한 군인뿐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2차 대전 이후의 미국 경제


전쟁이 끝나자 사람들의 잠재되었던 욕구가 넘쳤다.


대공황의 후유증으로 주식보다는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저축을 선호했고, 혹시 모를 미래를 준비하며 보험에 가입했다.


저축률은 최고조에 올랐다. 1940년 42억 달러에서 1944년에는 359억 달러로 8.5배나 급증했다. 연방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전시 채권이나 예금으로 몰린 결과다.


1946년 전시 통제가 해제되자마자 사람들의 소비 욕구가 늘어났다. 물건 가격이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기업의 실적은 전쟁 후에도 꾸준히 상승했다.


1943년 독일 폭격 <출처 : 위키피디아>


영국과 프랑스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모든 것을 상실했다.


어렵게 쌓았던 국가의 부는 물론 광대하고 영원할 것 같았던 식민지도 눈녹듯 사라져 버렸다. 남은 것은 전쟁으로 발생된 황폐한 국토와 막대한 빚이었다.  


반대로 미국의 국토와 산업 기반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생산력은 크게 늘어났다. 국민의 생활도 윤택해졌다.


미국 경제는 전 세계 총생산량의 50%를 차지할 만큼 성장했다. 화폐로 전환 가능한 전 세계 금의 70%가 미국의 수중으로 들어왔다.


바야흐로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미국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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