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0월 19일 주가가 폭락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명 검은 월요일(Black Monday)이라 불리는 사건이었다.
1987년 검은 월요일
다우 지수가 하루 만에 약 508포인트, 전날 대비 22.6%가 하락한 것이다(1,738.74포인트로 마감).
검은 월요일은 1929년 대공황 당시 주가 폭락이 발생한 날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날의 폭락으로 아시아의 홍콩을 비롯하여 유럽의 증권 시장도 연달아 폭락했다.
검은 월요일(Black Monday) <출처 : 위키피디아>
대공황 당시 발생된 대폭락보다 더 큰 비율로 지수가 하락했다. 전날까지 꾸준히 오르고 있는 다우지수였기에 사람들의 충격은 더 컸다.
월스트리트에서는 대공황의 전조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올 정도였다. 많은 투자자들이 혼란과 당혹스러움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연방준비제도의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1926~ )은 바로 대응을 시작했다. 기준 금리를 낮추고 통화량을 증가시킴으로써 경제위기를 바로 종결시킬 수 있었다.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1926~ ) <출처 : 위키피디아>
폭락의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배경은 레이거노믹스 시절 쌍둥이 적자로 쌓인 거품이 일시적으로 터져버린 것이란 의견이 있었다.
이에 더해 포트폴리오 보험(Portfolio Insurance)에 의한 프로그램 매매가 하락을 더 부추겼다. 폭락의 강도가 더 깊어졌다는 내용이다.
연준의 발 빠른 조치로 위기는 조기 수습되었고, 경제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취임
레이건 대통령의 뒤를 이어 제41대 대통령으로 조지 부시(George Herbert Walker Bush, 1924~2018)가 당선되었다.
조지 부시(George Herbert Walker Bush)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그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 부통령을 역임(1981~89)했다. 유엔 주재 미국 대사,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역임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레이건의 정책을 이어받아 보수적인 정책을 준수했다.
하지만 레이건 시절부터 쌓여온 재정적자의 압력과 부채는 새로운 정책에 많은 제동을 걸었다. 이러한 때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다. '제1차 걸프전'이었다.
제1차 걸프전 <출처 : 위키피디아>
제1차 걸프전 발발
이라크는 1980년에 발생된 이란-이라크 전쟁(Iran-Iraq War)으로 전쟁 비용이 꾸준히 증가했다. 경제적 부담(대부분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 빌려왔다)이 컸던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1937~2006)이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전쟁이 발발했다.
침공의 명분은 이라크의 원유 수출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루말리아 유전 복구 비용 협상 중단과 쿠웨이트 석유 과다 생산이 이유였다.
침공 개시 4개월여 만에 쿠웨이트 전역을 점령했다. 이라크는 이란과의 오랜 싸움에서 실전 경험이 풍부한 막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 4위의 병력(예비군 포함)을 가진 군사 강국이었다.
미국은 즉각 다국적 군을 구성했다. 1991년 1월 16일 ‘사막의 폭풍(Operation Desert Storm)’ 작전을 개시했다. 군 장비와 무기 수준의 차이가 너무도 컸다. 사실상 포격과 폭격이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사막의 폭풍(Operation Desert Storm) 작전 < 출처 : 위키피디아>
2월 24일 다국적군이 대규모 지상군을 진격시켰다.
지상군 투입 100시간 만에 부시 대통령의 중지 명령으로 전쟁은 끝이 났다. 전쟁 개시 42일 만이었다.
전쟁 과정에서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산업 시설은 파괴되었다.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에 있는 정유소를 파괴하여 페르시아 만이 오염되었다. 이라크는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승인 하에 제재를 받았다.
전쟁의 승리 이후
미국은 오랜만에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 중동에서의 패권은 더한층 강화되었다.
이 전쟁의 영향으로 원유 가격이 올라가면서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현상이 발생됐다.
하지만 증권시장은 쿠웨이트를 비롯한 중동국가의 시설 복구와 장기적인 유가 안정 심리에 영향을 받았다. 다우 지수가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걸프전의 부시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짧은 기쁨도 잠시, 레이건 때부터 쌓여온 쌍둥이 부채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추가적인 전쟁 비용 부담으로 경제는 불안한 상태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