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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Jun 24. 2020

저축대부조합의 파산과 영향

미국 경제 역사 이야기 63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중에 부동산 정책이 있었다.


연방주택사업국(FAH)의 역할


모든 미국인들이 부담 없이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재산 증식은 물론 안정적인 가정환경을 구축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새로 생겨난 것이 연방주택사업국(FHA, Federal Housing Administration)이었다.


FHA 로고 <출처 : 위키피디아>


연방주택사업국은 모기지(mortgage, 부동산 담보 대출 시, 부동산에 설정되는 저당권 또는 그 저당권을 나타내는 증서) 사업자에게 주택 보증보험을 제공했다. 이 보증보험을 통해 주택 담보 대출자에게는 대출금을 저금리로 20년간 분할상환 방식으로 받는 구조였다.


제도의 도입으로 자가주택 소유는 점진적으로 늘어났다.


아울러 페니 메이(Fannie Mae, Federal National Mortgage Association, 연방 모기지 협회)를 만들었다. 여기서 채권을 발행했다. 그 자금으로 저축대부조합이 발행한 모기지(mortgage)를 매입했다. 주택담보대출 시장을 활성화시켰다.


페니 메이  과거 본사 건물   <출처 : 위키피디아>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의 활성화와 저축대부조합


1970년도에 사업 효율성을 높이고자 했다. 모기지 시장의 활성화가 목적이었다. 프레디 맥(Freddie Mac, Federal Home Loan Mortgage Corporation, 연방주택담보대출공사)를 만들었다.


낮은 금리로 모기지 시장을 키웠다. 자기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부동산 가격은 경제 성장과 맞물려 점차 상승했다. 초창기 저축대부조합의 업무는 굉장히 안정적이고 편안했다.



프레디 맥 로고  <출처 : 위키피디아>


이른바 ‘3-6-3’ 사업이라고도 불렸다.

3%의 예금 이자를 지불하고 6%의 대출을 제공한 뒤, 오후 3시에는 경영진이 골프를 치러 나갔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야근을 극도로 자제시켰다. 저녁 늦게 건물 창문의 불빛을 보면, 은행에 무슨 사건이 생겼나 하고 고객들의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꾸준히 오르는 부동산 가격과 안정적인 연방정부 금리 정책으로 사업은 큰 문제가 없었다.


1970년 대 초가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버지니아 연방 모기지 협회  <출처 : 위키피디아>


볼커의 고금리 정책 영향


볼커의 금리 인상 정책으로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예금 금리는 폭등했다. 대출 이자 수입은 고정으로 묶여 있었다.  예대마진(대출로 들어온 수입에서 예금 이자 지급으로 나간 지출을 뺀 차액)이 적자로 돌아섰다. 당장 문을 닫고 파산을 해야 할 판이었다.


이 갈등과 고민의 시기에 레이건 정부는 오히려 반대의 정책을 펼쳤다.


80년대 초반부터 부실의 징조를 보여온 저축대부조합의 퇴출은 없었다. 관용정책(forbearance policy)을 실시했다.


금융권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한꺼번에 묶여있던 규제를 철폐해 버렸다.


레이건 대통령 재임 후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아울러 예금보험 한도 금액을 기존 4만 달러에서 10만 달러로 증액했다.


그동안 소극적인 예금으로 이어가던 조합이 본격적인 투자에 나서게 됐다. 규제가 없어진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불법적인 거래로 인한 조합 내부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도 발생했다. 고위험 자산 투자까지 손을 댔다.  


주택대부조합의 공격적 영업과 정크본드(junk bond)


여기서 등장하는 주인공이 정크본드(junk bond)의 제왕’, 마이클 밀켄(Michael Robert Milken, 1946 ~ )이었다.


마이클 밀켄  <출처 : 위키피디아>


저축대부조합은 밀켄의 정크본드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진행했다. 결국 정크본드의 특성 상, 한번 부실화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한꺼번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장부상의 이익이 현실적인 손실로 되돌아왔다. 부실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연방정부의 조사와 함께 밀켄은 사기 및 내부자 거래, 증권거래법 위반 등으로 10년 형의 징역과 함께 6억 달러의 배상금을 판결받았다. 이후 2년으로 감형되고, 2020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최종 사면되었다)


부실이 본격으로 터지기 시작한 것이 1989년 초였다. 부시 대통령 재임 기간이었다. 레이건 시절에 키웠던 잠재적 부실을 부시 대통령 때 해결해야 했다.



연방예금보험공사 로고  <출처 : 위키피디아>


수많은 저축대부조합들이 파산했다.


저축대부조합 파산 사태와 연방정부 감독권 강화


이 영향으로 저축대부조합 예금 보호 기관이었던 '연방저축대부보험공사(FSLIC, Federal Savings and Loan Insurance Corporation)'도 거의 파산을 했다. 이 기관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로 흡수됐다.


부시 행정부는 부실 저축대부조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리신탁공사(RTC, Resolution Trust Corporation)'를 설립했다.


바로 이를 실행했다(참고로 RTC는 부실 조합 정리 및 자산 처분, 세금  손실 축소를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1989년 8월부터 95년 12월까지 운영됐다)



RTC 정리신탁공사(RTC) 문건  <출처 : 위키피디아>


최종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1995년도이었다.


총 소요 비용은 약 5,000억 달러가 집행되었다. 1986년부터 1995년까지 3,234개의 저축대부조합 중에서 1,043개가 문을 닫았다.


이후 ’ 1989 년 금융 기관 개혁 및 회복을 위한 집행법(FIRREA, Financial Institutions Reform, Recovery, and Enforcement Act of 1989)‘이 제정되었다.


예금 금융권에 대한 연방정부의 감독권한이  강화되었다. 하지만 얼마 후 다시 규제를 풀기 시작했고,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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