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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Jun 25. 2020

클린턴 시대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사태

미국 경제 역사 이야기 64

1993년 1월 제42대 대통령으로 빌 클린턴(William Jefferson Clinton, 1946 ~ )이 취임했다. 


클린턴 대통령 시대


그의 취임을 축하하고자 방문한 이 중에는 연준(Fed)의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1926~ )도 있었다. 


그린스펀은 제13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으로 1987부터 2006년까지 재직했다.


빌 클린턴(William Jefferson Clinton)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볼커의 후임이기도 했던 그는 1987년 금융 공황을 효과적으로 대처했었다. 


그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지속적인 재정 적자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긴축 정책을 제안했다. 클린턴은 그의 정책을 준수했다.


연방정부는 쌍둥이 적자(경상수지 및 재정수지의 적자)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시행해 나갔다. 연방정부 내 전산화 시스템을 도입하여 공무원 30만 명을 줄였다. 감세 정책을 폐지, 세수 수입을 증가시켰다.



NAFTA 로고  <출처 : 위키피디아>


클린턴 대통령은 1994년 1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에 서명했다. 


미국, 캐나다 및 멕시코 간의 무역과 투자 장벽을 제거했다. 지리적 영향권에 있는 국가들의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었다.


슈퍼 301조


아울러 유명한 ‘슈퍼 301조’를 활용해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여 나갔다. 


‘슈퍼 301조’는 1974년에 제정된 ‘1974년 통상법(Trade Act of 1974)‘의 제301조를 일컫는 불공정 무역 보복 조항이었다. 1988년 ’종합대외무역경쟁법(Omnibus Foreign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 of 1988)‘의 기준을 수정 입법한 것이다. 


슈퍼 301조는 한시적인 법이었다. 하지만 법의 효력이 중단된 후에는 수차례 행정명령으로 되살려 냈다(클린턴 재임 시, 총 3번 부활했다). 


이 법에 의해 무역 상대국가에 대한 광범위한 무역 보복조치가 가능했다. 



미국 무역대표부 로고  <출처 : 위키피디아>



미국 내 기업이 다른 무역국의 불공정 무역행위로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 받아들여지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 Office of the 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는 이를 확인, 해결 조치를 요구했다. 


3년 내 이의 실행이 진행되지 않으면, 해당 국가는 무역보복 조치를 받게 되었다. 결국 다른 나라의 무역 장벽을 부수는데 앞장서는 법이었다.


이런 과정으로 미국의 적자 규모는 점차 감소되었다. 증권시장도 서서히 달아올랐다.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Long-Term Capital Management) 사태


1994년 존 메리웨더(John Meriwether, 1947~ )가 설립한 헤지펀드(hedge fund)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ong-Term Capital Management, 이하 LTCM)가 사업을 시작했다. 


존 메리웨더   <출처 : 위키피디아>


이 헤지펀드는 ’ 최고의 두뇌집단 결합(트레이더와 파트너가 MIT, 하버드, 런던대 등 유명 대학의 석박사 출신의 학자들로 구성됨)‘이라 불렸다. 설립 후 3년간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다. 


운용 방식은 만기가 다른 채권들의 금리 차이를 예측하는 방식이었다. 초기 자산은 12.5억 달러로 시작했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때 상상 이상의 고수익을 냈다. 25억 달러까지 자산을 불렸다(연간 28 ~ 59%의 고수익을 올렸다). 


투자금이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자신감을 가진 이들은 이른바 레버리지(외부 자금 차입)를 도입하여 투자 규모를 키워 나갔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투자한 채권을 담보로 외부 자금을 차입, 재투자를 했다. 


전체적인 투자 규모를 확대했다. 빚이었다.  


1997년 러시아와 미국의 국채에 금리 차이가 커진 것을 발견, 대규모 공격적 투자를 감행했다.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러시아 국채에 대부분의 투자금을 쏟아부었고, 미국 국채는 공매도를 진행했다. 러시아는 오르고, 미국은 떨어질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하지만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엄청나게 많은 러시아 국채가 모두 휴지가 됐다. 반대로 미국 국채는 가격이 올라 공매도의 상환금액이 폭등했다.


레버리지(차입) 금액이 투자금 50억 달러 대비 1,200억 달러에 달했다. 비율이 약 24배나 되었다. 



LTCM 장기 자본 관리 (1,000달러 기준)  <출처 : 위키피디아>


더불어 파생상품 시장의 큰 손으로 불리며 여기에도 많은 투자를 진행했었다. 1998년 9월 기준 LTCM이 전 세계은행들과 거래하던 파생상품 규모는 약 1조 2500억 달러 이상이었다.  


뚝이 터지자 모든 것이 완벽하게 무너져 내렸다. 누군가는 뒷수습을 해야만 했다. 


마진 콜(margin call, 금융회사가 투자원금 손실이 우려되는 시점에 투자자에게 추가 담보 자금을 요청하는 행위)에 의해 LTCM이 보유하고 있던 채권이 시장에 한꺼번에 쏟아질 경우, 금융공황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LTCM 구제


결국 뉴욕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 of New York)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LTCM을 구제하기로 결정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건물  <출처 : 위키피디아>


하지만 LTCM은 은행이 아닌, 헤지펀드였다. 뉴욕 연준이 직접 유동성(자금)을 공급할 수 없었다. 금융권 공동으로 구제자금을 마련, 지원했다. 규모는 약 36억 5천만 달러로 LTCM 지분 90퍼센트를 담보로 잡았다. 


이와 더불어 연준(Fed)은 기준 금리를 7주에 걸쳐 인하했다. 결과적으로 LTCM 인수에 도움을 주었고 결국 2000년에 최종 청산됐다.


이후 세계 각국은 LTCM위기로 자국의 위험관리를 재점검했다.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나갔다.


헤지펀드의 소득 규모


체질이 개선된 헤지펀드는 이후 더 큰 성장을 하게 된다. 전설적인 인물로는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1930 ~ )가 있다. 


블룸버그(Bloomberg)에 따르면, 2018년 헤지펀드 소득 순위는 다음과 같다. 


르네상스테크놀로지스(Renaissance Technologies) 짐 사이먼스(James Simons) 회장이 16억 달러(1.81조원)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Bridgewater Associates)의 번 레이 달리오(Ray Dalio)회장이 12.6억 달러(1.42조)를, 3위는 시타델(Citadel)의 켄 그리핀(Ken Griffin) 회장이 8.7억 달러(0.98조)를 벌어 들였다.


평생 벌어 들인 돈이 아닌, 단 1년 간의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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