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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Jun 21. 2020

볼커와 스태그플레이션

미국 경제 역사 이야기 60

2차 대전 후 미국의 물가는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그 시기는 약 20여 년 간으로 1968년까지 2퍼센트 내외의 수준에서 머물러 있었다.


1970년대 경제 상황과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하지만 1968년 이후 물가가 조금씩 상승했다. 이후 본격적인 인플레이션이 시작되었다. 사회적 분위기가 일조하였다.


2차례의 전쟁(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으로 전쟁 비용이 생겨났다.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로'의 복지 정책이 맞물리면서 달러의 발행이 늘어났다.


늘어난 화폐만큼 물건 가격은 올라가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에 발생된 제1차 석유파동은 본격적인 물가 상승에 불을 붙였다.


근로자들은 임금 인상 시 물가 인상분에 대한 조건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한번 오르기 시작한 인플레이션은 내려올 줄 몰랐다.


윌리엄 마틴  <출처 : 위키피디아>


당시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은 윌리엄 마틴(William McChesney Martin Jr.,1906~1998)이었다.


그는 9번째 의장이자 가장 긴 재직 기간(1951년~70년)을 가진 능력자였다. 그의 재직 시대에 연준이 비로소 연방정부로부터 확실한 독립성을 지킬 수 있었다.


그는 통화가 늘어나더라도 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책을 준수했다. 결과적으로 1970년대 초에 와서야 낮은 금리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재무부 연방 기금 금리  <출처 : 위키피디아>


그 뒤를 이은 닉슨의 경제보좌관인 아서 번스(Arthur Frank Burns, 1904~1987)는 인플레이션의 대비책인 금리 인상을 추진하지 않았다. 대신 물가의 주체인 근로자의 임금과 물건 가격 통제를 시행했다.


하지만 이 정책도 결국 실패했다. 그의 재임기간(1970년 ~ 78년) 동안 평균 물가 상승률은 약 9%였다. 가격 통제로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었다. 연쇄적으로 실업자 수가 늘어났다.


높은 물가와 높은 실업률이 조합을 이룬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발생됐다.



카터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이 발생하고 물가가 미친 듯이 올랐다. 카터 대통령(James Earl Carter Jr. 1924 ~ )은 몸이 달았다.


국민들의 관심은 오직 물가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두 자릿수 물가 인상으로 불만이 하늘 높이만큼 올라가 있었다. 대통령 재선은 물 건너갈 수도 있었다.


결국 제12대 연준 의장으로 폴 볼커(Paul Adolph Volcker, Jr., 1927~2019)를 임명했다. 볼커는 결과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잡는 데 성공했다.



폴 볼커의 등장과 스태그플레이션


폴 볼커(Paul Adolph Volcker)  <출처 : 위키피디아>


과정은 너무도 어려웠다.


그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바로 금리를 인상했다. 통화량을 조절했다. 금리 인상은 중요한 수단이었다.


두 자릿수까지 금리가 올랐다.


사방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기준금리는 1981년 21.5%까지 올랐다. 급격한 통화량 감축과 이자 부담 증가로 기업과 농장주의 파산이 줄을 이었다.



미국 물가상승률  <출처 : 위키피디아>


 경제가 급속히 위축되자 시위를 벌이는 이들이 속출했다. 반대가 극에 달할 정도였다.


그는 고물가와 실업률을 반드시 잡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금리 인상에는 어떠한 의견도 개의치 않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끝까지 자신의 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물가인상률은 1983년에 3%대까지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카터는 대통령 선거에서 레이건에게 졌다. 레이건은 취임 초기 볼커를 그대로 기용했다. 정책을 준수해 나갔다.


레이건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하지만 자신만의 경제 정책인 ‘레이거노믹스’를 준비했다. 이후 볼커는 해임됐다.


볼커는 1979년 8월부터 1987년 8월까지 연준 의장을 역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Barack Obama, 1961~) 시절 '대통령의 경제 회복 자문위원회(President's Council on Jobs and Competitiveness)' 의장을 2009년부터 11년까지 역임했다.


그는 1970년대와 80년대 내내 미국 경제를 괴롭혔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은 것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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