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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Jun 18. 2020

닉슨 쇼크와 스미소니언 체제

미국 경제 역사 이야기 57

경제학에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라는 용어가 있다.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


로버트 트리핀(Robert, Baron Triffin, 1911~1993)은 벨기에 출신 경제학자로 예일대 교수였다. 1959년 미국 의회에서 연설을 했다. 기축통화인 달러가 가진 모순에 대한 내용이었다.



로버트 트리핀   <출처 : 위키피디아>


'기축통화는 널리 퍼지고 사용되어야 무역이 활발이 이루어진다. 그렇기 위해서 공급되는 양이 많아야 한다.

하지만 발행 양이 많아지면 발행 국가(미국)는 무역 적자가 발생된다. 반대로 유동성(달러) 공급을 줄이면 세계 무역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미국의 무역적자가 지속되면 달러의 공급이 늘어난다. 늘어난 양만큼 달러 가치의 하락이 이어진다. 지속되면 달러 신뢰도가 하락하여 각 국이 보유하는 자산으로서 가치가 하락된다.


결국 고정환율제도(달러와 각 국의 환율 연계 구조)는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했다.



미국 무역 수지 및 무역 정책 (1895-2015)   <출처 : 위키피디아>



이 연설을 토대로 브레튼 우즈 체체가 가진 모순을 지적한 말이 ‘트리핀의 딜레마’라는 용어다.


미국에서 발행한 달러의 양이 연방정부가 보유한 금보다 많아질 경우, 금으로 태환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인식되었다.



닉슨 쇼크(Nixon shock)


세계 각국이 안전자산으로 인식된 달러 가치의 하락으로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보유한 달러를 금으로 태환 하기 시작했다.


점점 줄어드는 미국의 금 보유량을 지켜보면서 닉슨 대통령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1971년 8월, 각 국가의 중앙은행이 보유한 달러에 대한 금태환을 중지한다는 특별조치를 발표했다. 일명 ‘닉슨 쇼크(Nixon shock)’다.



1969년 1월 닉슨 대통령 취임식  <출처 : 위키피디아>


사전에 어떤 국가와도 협의되지 않은 채 발표되어 급작스런 혼란이 발생했다. 브레튼 우즈 체제의 종말과 함께 미국의 수출 의존도가 놓은 나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


바로 이어서 국제수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수출 흑자국인 나라들에 대해 ‘달러 대비 평가절상’을 요구했다. 발행이 늘어난 달러 수만큼 자국의 통화 가치를 더 올리라는 뜻이었다.


각 국가들은 가만히 앉아서 자신만 손해를 볼 수 없는 입장이었다. 오히려 달러의 가치를 내리는 ‘달러 평가절하’를 요구하고 나섰다.



스미소니언 합의(Smithsonian agreements)


1971년 12월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스미소니언 합의(Smithsonian agreements)’가 이루어졌다. '닉슨 쇼크'를 정리하기 위해 10개국 재무장관이 참여한 회의였다.


주요 내용은 달러의 평가절하와 각 국가 통화의 평가절상, 변동 환율폭의 조정(기존 1% 내외에서 2.25%로 확대)이었다.



스미소니언 학회 로고  <출처 : 위키피디아>


달러는 기존 온스당 35달러에서 38 달러로 ‘평가절하’가 이루어졌다. 결국 브레튼 우즈 체제 골격은 유지하되 미국의 재정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합의를 통한 환율체계는 매우 불안했다.


결국 1년간의 시간이 흐른 1973년 2월경, 많은 국가가 변동환율체제로 전환함에 따라 스미소니언 합의는 무산되었다.


킹스턴 체제(Kingston system)


1976년 자메이카의 킹스턴에서 IMF 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발표된 것이 ‘킹스턴 체제(Kingston system)’다.


주요 내용은 변동환율제를 유지하되, 각 국가의 환율 변동의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결정했다. 변동폭이 심할 경우 정부가 외환 시장에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이 체제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적용하였다.


현재 킹스턴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킹스턴 체제의 확립으로 각 국가의 환율은 달러와 금의 고정적 연계성에서 벗어났다. 독자적으로 환율 조정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브레튼 우즈 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만 기축통화의 환율 적용 방식은 유지하기로 했다. 1969년 IMF에 의해 만들어진 ‘특별 인출권(SDR, special drawing rights)’ 제도도 유지되었다.


이 체제 이후 각 국가의 환율은 자율적으로 조정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금과 달러의 중요성이 낮아진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국가는 외환보유고를 달러 기준으로 운용하고 있다. 전 세계 무역 결제액의 60퍼센트 이상은 달러 결제다.


1973년 이후 미국 경제는 석유 파동과 경제 침체 속에 커다란 위협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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