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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Jul 29. 2020

존 처지 해밀턴과   피어폰트, 헬렌 모건 해밀턴

알렉산더 해밀턴의 아들과 자손

존 처지 해밀턴(John_Church_Hamilton)의 삶


처지는 해밀턴의 네 번째 아들이자 변호사이며 역사가 다. 어머니를 도와 아버지의 전기를 작성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존 처지 해밀턴  <출처 : 위키피디아>


그는 1812년 미국-영국 전쟁에 참여했고 중위로 전역했다.


군 생활 중 그리 뛰어난 전공을 세우지는 못했으나, 후에 대통령이 되는 윌리엄 헨리 해리슨(William Henry Harrison, 1773~1841, 미국 제9대 대통령, 급성 폐렴으로 취임 후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그는 문학의 길이 적성에 맞았고, 아버지의 전기를 쓰기 위해 역사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말했다.


1834년 ~ 1840년에 아버지의 편지와 논문, 자료 등을 정리하여 ‘알렉산더 해밀턴의 삶’이란 두 권의 전기를 썼다.


이후 미국 의회 도서관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1858년~1864년 사이에 7권의 ‘알렉산더 해밀턴의 삶:미국의 역사‘라는 책을 출간했다.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스카일러 <출처 : 위키피디아>


아버지의 자료에 근거한 사실과 동시대 역사적 사건을 연결해 저술했다.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스카일러의 유언을 받들어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저술에 힘썼다.

 

해밀턴의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12살이었다.


85세 때 인터뷰한 내용을 살펴보면,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 평생 가슴속에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저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결투 전 날, 속삭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가 문가에 조용히 기대서서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아름다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눈빛은 부드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죠.


죽기 2년 전(1802년) 해밀턴의 초상  <출처 : 위키피디아>


'존, 오늘 밤 아빠와 같이 자지 않을래?' 아버지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아버지의 옆에서 잠을 잤고, 새벽에 일찍 아버지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결투를 위해 집을 떠나기 전, 내 손을 잡고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오늘의 이 기도를 잊지 말라고 얘기해 줬습니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래 전의 많은 기억과 추억이 잊혀졌지만, 그 날 아버지의 부드러운 표정과 말투, 결투 전에 함께 한 기도의 느낌은 영원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1900년 트리니티 교회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그는 89세의 나이로 1882년 7월 뉴저지주 스톡턴 코티지에서 사망했다.


장례식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묻힌 뉴욕 맨해튼의 트리니티 교회에서 진행되었다.

 


피어폰트 모건 해밀턴(Pierpont Morgan Hamilton, 1898~1982)


그는 투자 은행가 J.P 모건(Morgan)의 손자이자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의 자손이다.


윌리엄 피어슨 해밀턴(알렉산더 해밀턴의 증손자)과 줄리엣 피어폰트 모건(존 피어폰트 모건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피어폰트 모건 해밀턴  <출처 : 위키피디아>



유명한 두 가문의 직계 자손이자 미국 공군의 장교였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나왔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아울러 제1차, 2차 세계대전 모두 참전을 했고, 공군에서 복무했으며, 장군의 지위까지 올라갔다.


복무 중에 ‘명예의 훈장(Medal of Honor)’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권위 있는 훈장으로, 의회의 이름으로 대통령이 직접 수여한다. 의회 명예 메달이라고도 불린다.


명예의 훈장(육군)   <출처: 위키피디아>


이 훈장은 1861년 해군에서 처음 시작된 이래, 총 3,506명에게 수여되었다. 이 중 약 40%가 남북전쟁때 수여 되었다.  


그는 오랜 기간 군 복무를 했고, 전역 후에는 금융회사 임원으로 일했다. 198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헬렌 모건 해밀턴(Helen Morgan Hamilton, 1896~1985)


그의 바로 위 누나로 헬렌 모건 해밀턴(Helen Morgan Hamilton, 1896~1985)이 있었다. 그녀 또한 군 장교로 복무했고 중령으로 전역했다.


헬렌 모건 해밀턴   <출처 : 위키피디아>


1949년에는 마셜 플랜(Marshall Plan)을 관리하는 '경제협력관리국(ECA, Economic Cooperation Administration)'의 공공 연락 국장을 역임하였다.


아울러 1953년 '국립 역사 보존 신탁(National Trust for Historic Preservation, 워싱턴 DC에 본사가 있는 비영리 단체로 약 30만 명의 회원이 있음)' 창립 멤버였다.



국립 역사 보존 신탁 본사(워싱턴 DC)   <출처 : 위키피디아>


1985년 1월,  88세의 나이로 코네티컷주 미스틱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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