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미국은행’ 설립과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

알렉산더 해밀턴 07

by 한정엽


1790년 12월, 해밀턴은 의회에 두 번째 보고서인 '국가 은행에 관한 보고서(Report on a National Bank)'를 제출하였다.


'국가 은행에 관한 보고서(Report on a National Bank)'


(‘국가 은행에 관한 보고서" 내용은 기 작성된 '12화 최초의 중앙은행 : 제1 미국은행' 참고 요청드립니다)


이 보고서는 미국 중앙은행인 ‘제1 미국은행’ 설립에 관한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미국 내 은행이 3개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로버트 모리스에 의해 1782년 세워진 북미 은행(Bank of North America), 보스턴의 매사추세츠 은행, 해밀턴이 설립에 참여한 뉴욕은행(현 뉴욕멜런은행, The Bank of New York Mellon)이었다.



북미은행 <출처 : 위키피디아>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보면, 사실상 금융권의 기반이라 할 것도 없을 정도였다.


더욱이 신용이란 단어가 무색할 만큼 경제적 여건이 열악했다. 이런 상황에 미국의 중앙은행을 설립한다는 것에 대한 설득이 쉽지도 않을뿐더러, 발상 자체가 놀라운 것이었다.


시대를 앞서 간 것이었다.


당연히 공화파 의원들 반대는 극에 달했다.


하지만 해밀턴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밀고 나갔다. 결국 워싱턴의 최종 결재로 중앙은행이 ‘20년 면허’ 기간을 받아 필라델피아에 설립되었다.




필라델피아 '제1 미국은행' <출처: 위키피디아>


이로서 미국 최초의 중앙은행이 생겨난 것이다.


이때의 설립 기준은, 1913년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 약칭 연준, Fed)가 탄생할 때에도 많은 참고가 될 만큼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해밀턴의 놀라운 혜안이었다.


‘제1 미국은행’의 설립 이후 각 주에서도 주 정부의 승인을 받은 주법은행(state bank)이 생겨났다.


약 30 개 이상의 주법은행은 ‘제1 미국은행’ 정관을 거의 그대로 사용했고, 이후 본격적인 은행 설립의 기준이 되었다.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Report on Manufactures)’


이후 1791년 12월에 세 번째 보고서인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Report on Manufactures)’를 의회에 제출했다.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 내용은 기 작성된 '14화 해밀턴의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 참고 요청드립니다)


이 보고서는 현 미국의 경제 상황 및 발전 방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연방정부 부채 해결이나 중앙은행 설립 내용보다 논쟁거리가 더 많았다.


당시는 농업 중심의 경제 구조였다. 새로이 바꾸거나 개선할 만한 방향성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손에 잡히지 않는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제조업 중심의 보조금 지급은, 공화파 의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기에 충분한 이슈였다.


공화파의 대표적 인물인 매디슨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해밀턴은 기술 장려를 통해 외국의 인재를 미국으로 이주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인은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내용은 오히려 유럽에서 선풍적인 주목을 받았고, 이 보고서를 복사하여 여러 명이 돌려보는 진풍경이 발생했다.


하지만 보고서 내용 중 대부분이 채택되지 못했다. 제조업에 대한 경제적인 접목은 얼마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갤러틴의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와 공통점


아이러니하게도 약 20년의 시간이 흘러 1810년 제퍼슨 시대 재무부 장관인 갤러틴도 유사한 내용의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그는 제조업자를 지원하기 위한 연방 대출 프로그램을 제안한 것이다.



앨버트 갤러틴 <출처 : 위키피디아>


방식은 달랐으나, 제조업 육성이야 말로 향후 미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설명한 것이었다.


이 두 보고서의 내용 중 중요한 공통점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경제 활동에 필요한 금융자본의 부족’이었다.


당시의 미국 경제는 토지 중심의 경제 구조로 인해 모든 자본이 토지 수확물에 한정되어 있었다. 둘은 이런 현실을 아쉬워했다.


토지가 돈의 기능을 할 수 있다면, 구입을 위한 대출이나 매매가 자유롭게 진행된다면, 실제 경제 활동에 필요한 자본이 충분히 공급될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미국 아이다호의 밀 수확 <출처 : 위키피디아>


이 자본으로 제조업을 육성, 시행한다면 미국은 유럽 국가에 뒤지지 않는 경제구조를 가질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아니었다. 너무도 앞서간 나머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둘이 제시한 방향은 정확했고, 약 100년 뒤에 제조업의 강국으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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