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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May 06. 2020

해밀턴의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

미국 경제 역사 이야기 14

1,2차에 걸린 보고서가 의회를 통과되는 결과에 자신감을 가진 해밀턴은 세 번째 보고서를 준비, 제출했다. 앞서 제출된 금융 주제와 달리, 제조업 육성 및 발전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 - 세 번째 보고서


제목은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Report on Manufactures)'였고, 1791년 12월 의회에 제출했다.


핵심 사항은 제조업을 증진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추진해야 할 다양한 제안을 담았다. 아울러 농업에 대한 중요성을 같이 포함시켜, 남부 농업인들에 대한 정치적 반박을 사전에 줄이려고 했다.


해밀턴 동상  <출처 : 위키피디아>


방향은 2가지였다.


먼저 제조업의 성장은 장기적인 국가 경제의 기본적인 시스템으로, 이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연방정부의 정책이 보완되어야 가능하다고 전제한 뒤, 관세를 통해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수출 품목에 적용되는 관세율을 낮춤으로써 미국 제품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아울러 그 재원으로 값싸게 들어오는 외국의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를 높여, 그 수입으로 지원금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제조업 육성에 필요한 원재료의 관세는 낮출 것을 요청했다.


두 번째는 특정 제조업에 대해 산업 장려금을 지급해서 장기적으로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미국으로 이민, 정착할 수 있는 내용까지 포함했다. 제조업의 육성은 물론 다양한 고용 기회까지 제공하여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고 적극 지원하여 제조업에 연관된 산업 모두 성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고서가 나온 배경은, 영국의 자유무역 수출 구조가 전 세계를 주름잡고 있기에, 이를 대상 모델로 선정하고 뒤따라 가려는 것이었다.


산업혁명의 시작으로 전 세계 제조업의 중심은 영국이었고, 이를 통해 미국이 수입하는 물건의 70~80퍼센트는 영국산이었다.


이에 따른 관세 수입은 연방정부 세입의 90퍼센트였다. 결국 보호관세 정책을 시행하여 자국 내 부족한 제조업을 육성, 자생력을 갖춘 뒤 당당하게 경쟁을 통해 수출의 길을 넓혀 보고자 한 것이다.



1779년 Samuel Crompton의 방적기  <출처 : 위키피디아>


의회의 논쟁과 제출 안건의 일부 승인


이 안건도 앞서 제출된 2건의 보고서처럼 치열한 논쟁을 거치게 되고, 관세율 조정에 관한 내용만 의회를 통과하게 다.


산업 보조금의 경우 논란이 많았다.


보조금이 지급되면 제조업자의 이익만 남기게 될 뿐, 농업을 운영하고 있는 농부들과의 형평성 측면에서 공정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대다수 였다. 반대편의 입장은 담배와 목화를 유럽에 수출해온 남부 의원들 이었다.


이번 보고서는 시대를 앞서간 측면이 있었다. 향후 미국 경제가 농업에서 제조업 중심으로 전환한 뒤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해밀턴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경제의 중심은 농업이었다. 워낙 땅이 넓어 토지 가격이 저렴하여 농업에 집중하는 것으로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생산된 농산물이 전체 수출 품목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높았다.


주력 수출품이 아닌, 아직까지 손에 잡히지 않는 제조업에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것은 당시 남부 출신의 의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뉴햄프셔주의 제지 공장  <출처 : 위키피디아>


하지만 농업은 노동집약적 산업이었고, 그 수출 성장 한계가 뚜렷했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주력 산업을 다각화해야 한다는 것이 해밀턴의 의견이었다.


그렇지만 의회 내 반대편(남부 출신 의원)의 주장은 강했고, 이번 건은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제조업 보고서의 효과


이 보고서는 의외의 곳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미국 의회를 벗어나 유럽 각 나라로 사본이 복사되어 전파되었다. 유럽의 능숙한 기술자들을 미국으로 유도하기 위한 유인책으로 사용되었다.


미국 내 기술 전문가나 숙련자가 크게 부족하여 기계를 설치,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의 보고서는 여러 곳으로 전파되고 소개되어 유럽의 기술자가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훗날 기술 이민자들은 미국 내 제조업 회사를 차려 성공하게 되고, 이 성공사례가 더 확산되어 지속적인 산업화의 기반을 만들어 다.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  <출처 : 위키피디아>


150년 뒤 ‘창조적 파괴’로 유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 1883-1950)는 해밀턴의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야 말로 ‘응용경제학의 최고’라는 극찬을 했다.


아울러 일반적 지식이 아닌, 분석적인 경제 관련 자료를 확보, 제시하여 효율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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