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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팔 Oct 24. 2020

킬러? 질러!

“어서 오...세.....요” 내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문을 밀치고 들어와 매장 안을 빠르게 훑는 사내 눈은 날카롭고 매서웠다.

“뭐... 특별히 찾는 옷이라도....”

“..............................................”

사내는 내 말에 전혀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Old 하면서도 몸에 착 달라붙은 정장 차림의 그는 매장 안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또각또각...’

바닥을 밟은 구두 굽 소리가 유난히 크고 또렷했다. 나는 카운터에 서서 딴짓을 하는 척하면서 남자를 곁눈질해서 본다. 작은 키에 딱 벌어진 어깨, 짧게 깎은 머리, 뺨에 난 상흔, 옷을 집을 때마다 오므라드는 커다란 손. 이런 체형은 자연스럽게 두 가지 직업을 떠올리게 된다. 운동을 하거나 남을 거나.


“이 셔츠 얼마죠?”

저음으로 깊게 깔려 나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사내 직업을 가늠하지 못하게 했다. 그가 고른 옷은 워낙 화려한 색상이라 일반 고객들도 관심 밖이어서 한쪽 구석에 진열해 놓았는데 거침없이 그걸 꺼내 묻는 걸 보면 내 짐작은 후자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 대게 조폭들은 옷을 화려하게 입고 등장하지 않는가.)

“아.. 네.. 거기 태그에 가격이... 나와 있는데...” 나는 방금 한 직감을 머리에 담은 체 불안한 음성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장사하신 지 오래되셨나?” 진열된 옷들을 만지작거리며 빈정거리듯 묻는 사내 말투에선 해결사의 본능이 묻어났다.

“한 1년 반 정도.... 됐습니다.” 나는 신문받는 용의자처럼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고른 옷을 한참을 꼼꼼히 살피는 사내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흘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사내와 나는 거리를 두고 말없이 각자 움직임을 이어갔다. 벽시계 초침 소리, 사내 구두 굽소리, 그리고 내가 침 넘기는 소리만이 침묵을 뚫고 있었다.

‘째깍째깍...’

‘또각또각...’

‘꿀꺽’

그때였다. 사내는 눈에든 옷들을 주어 담기 시작했다. 한두 벌이 아니라 마치 계절 옷을 한꺼번에 준비 하 듯이.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저 많은 옷들을 혹 그냥 가져가겠다는 건 아닐까? 안된다고 하면 어디서 갑자기 떼거리로 몰려와 칼로 나를 협박하지는 않을까? 그건 조폭이 아니라 강도잖아. 그럼 난 한 개만 가져가세요라고 타협을 해야 하나? 내가 너무 나갔나? 혹 폭력이라도 쓰지 않을까. 아니다. 진짜 조폭들은 쉽게 주먹을 내놓지 않는다.


“바지 단은 줄여주지요?” 사내는 어느새 내 뒤에서 바지를 들고 말을 꺼냈다.

“아~ 물론이죠”라고 했지만

“대신 바지 줄이는 비용은 손님 부담입니다” 는 말은 뒤이어 나오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사내 다리 사이즈를 재기 위해 줄자를 몸에 갖다 대는 순간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의외로 짧은 다리였다. 조폭이 아니라 혹시 역도선수는 아닐까? 역도선수들은 무거운 무게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기에 그 중량에 몸이 눌려 키가 작아진다고 하던데... 만약 조폭이라면? 그들도 덩치 키우는 단련을 하겠지만 역도선수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혹 매일 밤 시체라도 짊어지고 날라야 하기 때문에 그 중량에 눌러 작아진 건 아닐까? 섬뜩해진다.

“바지 줄이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요?”

“한두 시간 정도 걸립니다.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수선 집에 맡겨야 해서...” 때를 봐서 신고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사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그 정도 시간이면 작업하기에 충분하다는 듯이.

“그럼, 바지는 낼 찾아가는 걸로 하지. 그리고 이 바지 말고...” 몇 벌을 더 고른다. 수선비만 해도 만만치 않게 나올 거란 생각에 진작 말하지 않을 걸 후회했지만 한편으론 오늘 매상은 이 사내 손에서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직감이 틀리다면 말이다.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우린 다시 마주 섰다.

내가 포장을 하고 있는 사이 사내 손이 뒤로 간다. 나를 쳐다보면서...

순간 긴장한다. 내 예상이 맞았다. 나는 옷을 쇼핑백에 담으면서 한 손으로 데스크 서랍 문을 연다. 그가 칼을 꺼낸다면 난... 난... 아무것도 없다. 무기가 될 만한 물건은 겨우 볼펜 정도다. 칼과 볼펜이라니... 이미 승부는 결정 난 거다. 맥이 풀리고 식은땀이 흐른다. 그의 손은 여전히 뒷주머니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나는 볼펜을 움켜쥔다. 이윽고 천천히 앞으로 향하는 사내의 손. 내가 볼펜을 꺼내려는 찰나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사내는 당황한 듯 내 얼굴을 보는가 싶더니 빠르게 허리를 구부려 물건을 집는다. 서랍에서 빠져나온 내 손에는 이미 볼펜이 움켜쥐어져 있다.


사내는 먼지를 털어낸 지갑을 열며 묻는다.

“모두 얼마죠?”

나는 볼펜을 슬며시 내려놓고 그 옆에 있던 계산기를 꺼내 두드린다.

지갑을 뒤척이던 사내는 육두문자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는가 싶더니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건가, 나는 다시 긴장한다.

“어. 김 부장! 열 장만 찾아놔. 음. 그래.”

방금 한 욕보다 더 짧은 대화는 사내 정체를 어둠의 세계로 점점 몰고 갔다. 돈. 많. 은. 조. 폭. 두. 목?

“아~ 카드로 하셔도 됩니다.”

혹시 다음에 산다고 그냥 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재빨리 대답한다.

“카드요...” 사내는 비웃는 듯 한 웃음을 흘리더니 십만 원짜리 수표를 몇 장 꺼내 카운터 위로 떨어뜨린다.

뒤에 이서를 해주셔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사이 안주머니에서 파커 만년필을 꺼내 능숙하게 수표에 쓰는 모습을 나는 조용히 지켜본다.


사내는 도로에 비상 깜빡이를 켜놓고 주차해 둔 차 조수석을 열더니 포장 더미를 툭 던져 놓는다. 한눈에 봐도 좀처럼 보기 힘든 고급 세단이었다. 통화를 하는 듯 잠시 운전석 앞에서 서성이는 사내는 바로 옆에서 내달리는 무거운 덤프트럭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쪽을 보는 듯 한 느낌에 재빨리 유리문에서 물어 난다.

차는 천천히 차선을 바꾸며 내 시야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짧지만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있었던 바로 전 순간들이 마치 영겁의 시간처럼 흘러갔다. 피식 나오는 쓴웃음을 지며 카운터로 돌아가다 문득 스치는 생각에 뒤돌아 도로를 바라본다. 이미 사라진 사내 얼굴을 애써 기억하려 한다. 킬러가 아닌 옷 지르는 질러를...

생각해보니 사내 눈은 따뜻하게 날카로웠던 것 같았다.


※ 이 글은 제가 옷 로드샾을 운영하고 있던 어느 날 조폭 스타일의 남자가 옷을 사러 왔을 때 느꼈던 위압감과 공포심을 이야기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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