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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팔 Dec 20. 2020

<캣츠>, 뮤지컬적 비판에 대한 영화적 항변


<영화적 상상력은 타 장르의 표현적 한계를 극복한다. 그것은 과잉이 아닌 풍요다>


“덕분에 크리스마스에 헤어질 뻔했어요.”

작년 이맘때 개봉한 영화 ‘캣츠’의 감상평으로 올라온 댓글이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최악의 뮤지컬 영화라는 평을 기가 막히게 표현한 위트 넘치는 멘트다. 관객은 물론 많은 평론가로부터 최악의 뮤지컬 영화로 평가받고 있는데다 작가 ‘스티브 킹’ 조차 기이한 영화(Which is relatively creepy.)로 치부해 버렸으니 그 마음고생이야 오죽했으랴. 더구나 같은 감독의 전작 <레미제라블> 만큼 기대했던 관객들 눈높이에도 한참 모자라는 터라 이래저래 치이는 모양새다. 다만 같은 작품을 뮤지컬과 영화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으면서 성격상 표현방식이 다른 예술 분야로 제작한 만큼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나는 평소 관람하는 빈도수나 관심도에서 영화 쪽에 가깝다 보니 그쪽에 더 관대해지는 편이다. 영화 <캣츠>를 본 후 지금도 몇몇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필름처럼 돌고 있을 만큼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대부분 비판적 시각 인 가운데 나하나 쯤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뮤지컬(또는 연극)과 영화는 장르적 유사성으로 서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가 흔하다.

<캣츠>처럼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지만 최근의 <레베카>,<스위니 토드>처럼 영화가 뮤지컬로 재탄생하는 작품도 적지 않다. 다만 이번 영화 <캣츠>처럼 뮤지컬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그 반대 경우보다 더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사례가 많은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현장감과 실제 몰입감이 훨씬 높은 뮤지컬(연극) 맛을 본 뒤 영화를 보면 날 것의 횟감과 튀김옷을 입힌 생선의 식감 차이쯤이 아닐까 싶다. 관객과 배우가 한 시공간에 존재해 서로 호흡을 느끼는 일종의 감정 객관화에서 유리 칸막이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찍어낸 이미지들이 나열되고 있는 것을 보는 게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물론 영화 <캣츠>의 문제가 이런 장르적 차이점에서 오는 표면적 이유는 아니지만 논란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과 마주하는 다른 매체로서 영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무한의 비주얼 강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캣츠>가 외면받게 된 주된 요인 가운데 한 가지인 배우들 분장만 해도 그렇다.

사람도 고양이도 아닌 어정쩡한 인면수(獸)같은 배우 모습들이 모리 마사히로의 ‘불편한 골짜기’ 이론처럼 호감도가 도를 넘어서 불쾌감을 줬다는 비판이 한목소리로 나오는데 내게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져 전혀 거부감 없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연극(뮤지컬)과 영화 예술의 차이 가운데 하나는 대상을 응시하는 매개체의 차이다.

연극은 관객의 눈이라는 현실적 시선으로 보기 때문에 연기하는 인물들 표정 연기를 점 더 세밀하게 보느냐 못 보느냐는 단순히 객석 위치ㅡ투자한 비용에 따른 혜택ㅡ에 의해 정해진다. 그럼에도 관객과 무대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 간격은 아무리 무대 코앞에서 배우의 표정연기를 본다 해도 <캣츠>처럼 가면 수준의 분장에 가려진 배우들 얼굴이라면 오페라글라스라도 준비하지 않은 이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소극장은 좀 낫겠지만) 반면에 영화는 관객이 응시하는 카메라 시점으로 배우들 열연을 본다. 카메라를 통해서 배우들은 대화하고 비치는 자신의 모든 걸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관객은 카메라 샷의 주관적인 시선에 따라 여러 방면에서 배우들 연기력을 체험한다. 클로즈업은 배우들 표정 연기를 좀 더 디테일하게 읽을 수 있다. 특히 배우들 눈동자까지 들여다보는 익스트림 클로즈업 효과는 카메라의 적극 개입이 만들어내는 인물 표현의 극치다. 때문에 ‘칼 드레이어’의 극단적인 클로즈업 영화 <잔다르크의 수난>에서 ‘마리아 팔코네티’의 내면 연기나ㅡ물론 무성영화 시대 영화라 성격이 좀 다르지만ㅡ30초에 인간의 모든 감정을 표현한다는 대배우 ‘로렌스 올리비에’ 연기에 전율한다.  

영화 <캣츠>에서 인면수 분장으로 배우들 실제 얼굴을ㅡ클로즈업 까지는 아니지만ㅡ가까이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런 면에서 다행히 아닌가?

빅토리아 역의 ‘프란체스카 헤이워드’, 아 그렇게 예쁜 배우 아니 고양이를 본 적이 있는가? 얼마나 아름다운 분장인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현실적 그녀만큼이나 뇌쇄적인 모습 또한 어떠한가. <반지의 전쟁>에서 본 간달프 만큼 묵직한 분장이 아니라서 가벼운 존재감이 빛났던 ‘이언 맥컬런’ 또한 나쁘지 않았다. 뮤지컬에서는 VIP석만이 누릴 수 있는 잠시의 호사일 수 있을지 모르는 배우들의 이 디테일한 표정들을 과도한 CG 사용이니 불쾌한 골짜기니 하는 비판자들은 대체 영화라는 지극히 진보적이고 기계적인 메커니즘에서 얼마나 고전적인 신파극의 작품이 탄생하기를 바랐는지 모르겠다. 첨단 세상에서 잠시 빠져나와 뮤지컬이라는 아날로그적 향수에 젖어 영화가 다시 쏟아내는 디지털 테크닉에 진절머리라도 나는 모양인가?

세계적인 뮤지컬이라는 명성에 대한 추앙 내지 경도가 부정의 직관을 투영하여 영화를 보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 인면수는 '불편한 골짜기'가 아니라 배우들의 디테일한 표정 연기를 볼 수 있다>

‘오컴의 면도날’ 원칙이 있다.

어떠한 사실 또는 현상에 대한 설명들 가운데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원칙이다. 예컨대 동일한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 가운데 가정이 많은 쪽을 피하라는 것이다. 가정 하나하나는 실현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확률을 내재하므로 가정의 수가 많아질수록 어떤 현상의 인과관계에 대한 추론이 진실일 가능성은 낮아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 <캣츠>를 저렇게 밖에 못 만들었을까에 대한 이유를 수십 가지 생각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냥 영화적 상상력과 감각적인 비주얼로 만든 현대적인 트렌드의 음악영화일 뿐이다고 인정하면 더 논쟁거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만약 오리지널이 영화였고 뮤지컬로 재탄생 했다면 과연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영화 <스위니 토드>에서 배우들의 내면 연기를 이끌어내는 클로즈업과 선혈이 카메라 앵글에 튀는 듯한 잔인함과 암울함이 화면 가득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그리고 팀 버튼 특유의 컬러와 미장센을 뮤지컬이 제대로 재현했다고 생각했을까? 히치콕 감독의 <레베카>는 또 어떤가. 영화의 무대인 멘댈리라는 미로와 같은 대저택이 영화처럼 살아 움직였던 공간이었던가? 영화에서 모노톤 특유의 질감은ㅡ이 영화는 흑백필름이다. 그런 색감은 서스펜스 스릴러의 긴장감을 올리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든다ㅡ또 어떻게 무대에서 구현됐는가. 흑백의 강렬한 콘트라스트로 댄버스부인(극 중 인물)이 품어내는 섬뜩한 클로즈업은 뮤지컬이 죽었다 깨어나도 만들어 낼 수 없는 효과 아닌가? 옥주현이 토해내는 “레베~~~카, 레베~~~~카! 가 전부야”라고 평한 관객들에게 뮤지컬을 볼 줄 모른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영화로서 <레베카>를, 뮤지컬로서 <레베카>를 보고 들으면 되는 것이다. 장르의 차이가 이해와 해석의 차이를 만들 수 있지만 주관적인 견해와 비평이 우호적이지 않다고 작품이 평가절하 되는 건 위험한 접근이다.    

어쩌면 배우들 분장에 대한 논란은 이 영화가 안고 있는 문제 중 지엽적인 부분일지 모른다. <캣츠>가 <레미제라블>와 같은 서사 구조는 물론 스토리를 끌고 나갈 수 있는 극적 요소의 빈약함도 부인할 수 없다. 감독 또한 인터뷰에서 뮤지컬보다는 좀 더 ‘쇼’와 ‘비주얼’에 중점을 두었고 ‘런던에 바치는 연애편지와 같다’고 한 말은 애초 원작의 장르적 해석보다는 영화적 판타지ㅡ최악 중 하나로 꼽는 영화 마지막 그리자벨라가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그런 관점에서 보자ㅡ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 아닐까? 현장감이 스크린 속으로, 生音이 첨단 사운드 시스템으로 그리고 분장이 CG로. 영화라는 매체가 표현할 수 있는 특성이 충실하게 녹아들어 가 만들어진 작품이 영화 <캣츠>인 거다.

동명의 세계 최고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비난일지 모르지만, 그 명성에 취해 많은 영화적 장점으로 만들어진 작품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훼손으로 폄하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대사 “우리는 고양이입니다. 개가 아닙니다.”는 이런 아쉬움이 배어있는  넋두리처럼 들린다.

“우리는 영화입니다. 뮤지컬이 아니라.”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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