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 속 아름다운 순간들
서울로 오자마자 일을 시작했고 이사를 했다. 전입신고를 하고 1인 가구가 된 것을 실감하자마자 한 달 반 만에 살던 집에서 나오게 되었고 짐을 싸서 정리하기 바빴다. 당장 이사 갈 집을 구할 수가 없어서 일단 친한 언니네에서 지내게 되었고 나는 다시 본가로 전입 신고를 하게 되었다. 서류상 한 달 반 만에 완전한 독립은 실패로 끝이 났다. 삶이 조금 익숙해지고 재미가 생길 즈음이면 늘 이렇게 겸손해지게 되는 일들이 생긴다. 역시나 삶은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싶다.
아무튼 그동안 정말 매일 잠만 자고 일을 했던 것 같다. 하루에 적게는 11시간 많게는 그 이상까지도. 그렇게 정신없이 매일을 보내느라 글을 쓸 시간도,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여전히 출퇴근을 하고,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잠만 자는 루틴이지만 이전보다 많은 것에 안정을 찾았다. 아직은 일주일에 하루만 오롯이 쉴 수 있지만 몸도 마음도 꽤 적응을 했다.
그런 하루를 이어오며 힘들었던 것은 몸의 피로이기도 했지만 마음의 근력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하던 사람도 운동을 쉬다 보면 근육은 금방 빠지고 근력은 떨어진다고 한다.(타고나기를 근력이 없는 나도 한창 열심히 필라테스와 요가를 할 때에는 근력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하는 지금은 근력 따위.)
아무튼 어느 책에서 봤던 구절처럼 마음의 근육도 잘 단련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이 사는 것은 정서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는 꽤 어려운 일이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못 하며 지내다 보니 머리가 텅텅 비고 기계가 된 느낌이었다. 시간적인 여유는 여전히 없지만 시간을 조금 더 쪼개어 써보기로 했다. 출근 시간만 두 시간 조금 안되다 보니 그 시간을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패드가 있어도 다이어리를 굳이 사서 펜으로 일정을 기록하고, (물론 기계치라 활용을 못하는 것도 사실. 패드는 조금 더 편하게 글을 쓰기 위해 구매했고 나름 잘 쓰고 있다.) 휴대폰이나 패드를 들고 다녀도 책은 따로 들고 다니는 나는, 그렇다. 디지털 시대에 따라가지도 못할뿐더러 아날로그 파다. 수많은 독서 어플이 나왔지만 늘 종이책을 고집했다. 책은 책장을 넘기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는 게 나는 좋았다. 그런데 현실은 지하철은 늘 사람으로 가득하고 앉아서 갈 수도 없으니 책을 펴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아날로그 파인 나는 아날로그 부심을 잠시 내려두고 디지털의 힘을 빌려보기로 한다.
드디어 독서 어플을 다운로드하였다. 읽고 있는 책은 이화정 작가의 ‘아름다움 수집 일기’다. 제목 그대로 삶의 곳곳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감사해하고 행복해하는 얘기들이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아름다운 것에 감응하며 기뻐하는 얼굴은 빛이 난다.’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한 시간을 따로 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매일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 우리에게는 쉽지 않은 이야기니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아름다움을, 낭만을 찾아보기로 한다. 그것이 나의 마음의 근력을 키우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사진을 보며 행복의 순간들을 떠올린다는 얘기처럼 나의 사진첩에는 어떤 사진들이 있는지 보았다. 나의 행복의 순간들이 쌓여있는 사진첩에는 예쁘게 차려진 요리들이 많았다.
나는 요리를 하는 일을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일로 하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또는 나를 위해서 건강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예쁜 그릇에 담고, 테이블을 꾸미는 모든 과정에서 행복을 얻는다.
어느 날에는 냉장고를 털어 이렇게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고,
매일이 폭염인 요즘 날씨에 갑자기 뜨거웠던 유럽의 오후가 생각이 나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유럽 게스트 하우스 조식 테이블 같은 세팅 부탁해요.!”
언니는 바로 이렇게나 예쁜 천을 깔아 유럽 어느 게스트 하우스 아침 식탁을 재현해줬다.
언젠가 포지타노 마을에서 아침부터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테라스에서 먹던 아침을 떠올린다. 머리가 새하얀 주인아주머니가 오렌지 주스와 커피를 따라주셨고, 따뜻한 크로와상에 과일잼과 버터를 발라먹었다. 여행이 주는 설렘과 낯선 곳에서의 아침의 생경함이 공존하던 그때 역시도 참 오랜 아름다움으로 남아있다.
가지와 호박, 파프리카를 올리브유에 굽고 홀그레인 머스터드와 바질 페스토를 발라 고다치즈와 함께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직접 끓인 라구 소스에 가지를 치즈와 함께 말아 멜란자네를 완성하고 여름과 잘 어울리는 토마토 마리네이드와 올리브 절임까지 곁들였다. 시원한 맥주 한잔까지 더하면 정말 여름의 식탁이 완성되었다.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는다. 이렇게 계절의 내음과 색을 가득 담은 식탁을 사랑한다. 제철에 나는 재료로 신선하게, 건강하게 요리하고 담아내면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길러지는 기분이 든다.
사람들은 내게 요리를 할 때 정말 진심이구나, 너 정말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 가진 아름다움에 감응하는 사람인 것이다. 책처럼 나는 아름다움을 잘 수집하며 살고 싶다.
현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로 팍팍하고 쉽지 않지만, 어차피 살아나가야 할 시간 속에서- 아름다움을 하나씩 발견하며 몸과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