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해가 저물고 밤빛을 흠뻑 먹은 건물들이 물 위로 흐드러졌다. 반짝였다.
밤이 되면 차분하게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어둠은 우리에게 관대함을 준다. 그래서인지 그리운 마음이 삐걱대고 올라온다. 그리움도 이 밤이면 괜찮을 것만 같다.
메마른 나뭇가지에 아슬히 한 잎 돋아나고 지는 그 모든 시간들처럼, 당신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내 마음이 돋아나고 지던 때가 있었다. 그 모든 순간들이 당신을 향한 시간이었다.
어둠이 내린다. 밤빛이 서서히 마음에 스며든다. 당신을 그린다. 고마운 도시였다.
꿈을 꿨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은 여전히 알 수 없었고 자유로이 아름다웠다. 변하지 않는 당신의 모습에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시간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것쯤은.
당신이라는 시간은 지독하리만큼 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내겐 행복이었다. 나는 얼마나 당신을 기다렸을까. 나는 얼마나 당신을 떠올리며 울었을까. 당신도 나를 생각하면서 조금 울어주기를 바랐다. 눈물이 우리의 시간을 말해주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