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는 정서(Emotion)를 단순히 감정적인 반응이나 신체의 자동적인 반응으로만 보지 않았어요. 그는 정서를 신체와 마음의 복합적인 변화로 이해했어요. 그는 신체와 마음의 변화를 함께 설명하면서, 정서를 더 깊게 바라봤습니다.
스피노자는 정서를 “신체가 활동할 힘을 키우거나 줄어들게 만드는 변화이며, 동시에 그 변화에 대한 마음의 인식”으로 정의했습니다. 즉, 정서는 신체가 변할 때 그 변화를 마음이 인식하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칭찬을 받을 때 얼굴이 붉어지거나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은 신체의 변화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의 반응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신체는 에너지를 얻고, 마음은 그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정서는 생각에 영향을 받지만, 단순히 생각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신체적 반응과 생각이 상호작용하며 정서를 형성합니다. 예를 들어, 갑작스러운 비에 우산을 놓고 왔을 때의 실망감은 신체가 반응하고 마음이 그 반응을 받아들여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누군가가 우산을 빌려주었을 때의 안도감은 몸과 마음을 활기차게 만듭니다.
스피노자는 기쁨을 ‘작은 완전함에서 더 큰 완전함으로 가는 것’으로, 슬픔은 ‘큰 완전함에서 더 작은 완전함으로 가는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기술을 배워 점점 능숙해질 때 느끼는 기쁨은 자신이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것이고, 중요한 능력을 잃거나 실패했을 때 느끼는 슬픔은 퇴보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옵니다.
스피노자는 신체와 마음을 독립적인 두 개의 실체로 보지 않고,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하나의 존재로 보았습니다. 마음이 행복하면 신체도 에너지를 얻고, 반대로 몸이 피곤하면 마음도 가라앉는 것처럼, 신체와 마음은 상호작용하여 정서를 형성합니다.
또한, 스피노자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강도가 그 관계를 얼마나 자유롭게 선택하고 키워왔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관계일수록 더 강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학교나 직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다 친한 친구가 되지는 않지만, 우리가 선택하여 가까워진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 깊은 애정을 낳습니다.
정서의 원인을 이해하면 그 감정을 더 잘 다룰 수 있다고 스피노자는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동료에게 화가 나는 이유가 질투 때문인지, 실제 피해 때문인지를 이해하면 적절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원인이 질투라면 기대를 조정하고, 실제 피해라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모든 존재가 스스로를 유지하려는 힘인 '코나투스'를 가진다고 했어요. 코나투스는 우리가 자신의 존재를 계속해서 유지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노력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배가 고플 때 음식을 찾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는 행동 모두가 코나투스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본능적인 힘이 우리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고, 우리가 삶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우리에게 기쁨이 찾아올 때는 이 코나투스가 강화된 것이고, 슬픔이 느껴질 때는 약해진 겁니다. 예를 들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스스로를 더 가치 있게 느껴 기쁨을 얻고, 실패하면 반대로 슬픔을 느끼는 거죠.
스피노자는 우리가 정서를 이해하고 다룰 줄 알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했어요.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선으로 여길 수 있고, 슬픔은 우리를 위축시키고 힘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악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거죠. 스피노자는 이렇게 기쁨과 슬픔을 윤리적으로 구분하며, 기쁨이 우리를 더 강하고 자율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대로, 슬픔은 우리의 능력을 제한하고 자유를 감소시키기 때문에 피해야 할 상태로 여겨집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이성적으로 정서를 이해하고 올바르게 다루면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스피노자의 이 이론은 정서를 단순한 심리적 반응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본질로서 이해하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이해하고 조절할 때 우리는 더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