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흄은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원인과 결과'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를 들어, "날씨가 흐리면 비가 올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혹은 "커피를 마시면 항상 졸음을 줄일 수 있을까요?" 흄은 이러한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해 우리의 상식적 인과관계 개념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했습니다.
상상해보세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카페에서 늘 마시던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매번 이 카페의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졌기에, 오늘도 기분이 좋아질 거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흄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실제로 본 것은 커피를 마신 후 기분이 좋아진 결과일 뿐입니다. 커피가 기분을 좋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을 직접 본 적은 없죠."
커피와 기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의심하는 것이 어쩌면 우스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는 이렇게 단순히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는 이유만으로 필연적 인과관계가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흄은 이러한 인과관계의 필연성을 확신하는 것이 큰 착각일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야 해요." "신호등이 빨간불이면 차가 멈춰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우리는 이런 '~하면 ~된다'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흄은 이것이 마치 스키너의 상자 실험처럼 조건화된 반응이라고 봅니다. 스키너는 쥐에게 레버를 누르면 먹이가 나오는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연관시켜 쥐가 레버를 누르는 행동을 학습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반복된 경험을 통해 우리는 특정한 기대를 형성하게 되며, 이는 필연적 진리가 아니라 단지 습관일 뿐입니다.
흄의 통찰은 우리의 일상적 추론에 깊은 의문을 던집니다. 귀납적 추론이란, 과거의 경험이나 반복적인 관찰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매일 아침 같은 길로 출근하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길로 가면 30분 만에 회사에 도착했으니, 오늘도 30분이면 충분하겠지." 하지만 교통사고나 공사, 집회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이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지는 못하는 것이죠.
"유튜버 A가 추천한 주식을 산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수익을 얻었대. 나도 사야겠다!"
"이 다이어트 약을 먹은 연예인이 살을 뺐으니, 나도 이 약을 먹으면 살이 빠지겠지!"
이런 생각들이 바로 흄이 경계하라고 했던 성급한 인과관계 추론의 예입니다. 흄의 철학은 우리가 일상에서 성급하게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오류를 피하도록 돕습니다. 그는 사건과 결과 사이에 필연적인 연결이 있다고 확신하기보다는, 여러 가능성을 고려하고 신중한 판단을 내릴 것을 제안합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라고 말합니다. 흄의 생각도 이와 비슷합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우리는 그것을 잘 활용하지만, 그 내부의 복잡한 작동 원리를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흄은 우리의 지식에 내재된 이러한 한계를 받아들이고, 경직된 확신보다는 열린 태도로 경험을 받아들이는 회의적 태도를 제안합니다.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 요즘 운이 없어. 아침에 까만 고양이를 봤거든." 이때 우리는 흄의 관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정말 고양이를 본 것과 운이 없는 것 사이에 필연적인 연결이 있을까?" 혹은 "이는 상관없는 사건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이처럼 흄의 철학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상황에서 더 신중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줍니다. 마치 내비게이션이 다양한 경로를 제시하되 최종 선택은 운전자의 몫인 것처럼, 흄의 철학은 우리에게 생각의 길잡이를 제공하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우리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완벽한 도구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구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흄의 철학을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무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한계를 인정할 때 더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흄의 철학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더 면밀히 관찰하고,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상황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게 돕는 나침반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