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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Nov 08. 2024

데카르트 : 밀랍

 데카르트는 "우리의 앎이 정말 감각을 통해 얻어진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철학자들이 감각적 경험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는 관점에 도전하며, 진정한 앎이 감각을 넘어서는 이성적 사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탐구했습니다. 그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변화가 뚜렷한 물질인 밀랍을 통해 감각이 아닌 이성적 사고가 진정한 앎의 기반임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밀랍 실험: 감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성

 데카르트는 밀랍을 손에 들고 생각해 봅니다. 처음엔 이 밀랍이 단단하고 차갑고, 특유의 냄새도 납니다. 그러나 이 밀랍을 불에 가까이 가져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밀랍은 녹아 흐물흐물해지고 따뜻해지며, 향기도 사라집니다. 처음 손에 쥐고 있던 밀랍과는 완전히 다른 물질처럼 보이죠.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이 물질이 '밀랍'임을 압니다.


 만약 우리가 오직 감각에만 의존한다면, 이렇게 변화한 밀랍을 같은 물질로 인식할 수 있을까요? 데카르트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감각은 밀랍의 표면적 특성, 즉 형태, 냄새, 온도와 같은 외적인 특징만을 전달할 뿐, 그 물질이 가진 본질적 속성이나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성만이 이 변화 속에서 동일성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이성만이 겉모습을 넘어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힘을 준다고 강조합니다.



이성의 역할: 일상 속 예시

 우리가 날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조금씩 달라지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동일한 존재로 느끼는 것도 결국 이성 덕분입니다. 친구가 목소리나 표정이 달라져도, 그 친구를 여전히 같은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이성의 작용이죠. 이성은 겉모습과 상관없이 본질을 알아보는 힘을 제공합니다.


 현대의 인공지능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예를 들어, AI는 고양이 사진을 학습할 때 다양한 각도, 크기, 배경에서 찍힌 수많은 고양이 이미지를 분석하여, 특정 고양이의 색상이나 자세와 관계없이 '고양이'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는 표면적인 차이를 넘어 그 본질적 특성을 파악하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AI가 고양이 사진을 인식할 때, 다양한 각도와 크기, 색깔의 고양이들 속에서 '고양이다움'을 파악하는 것처럼, 진정한 앎은 표면적 특성을 넘어선 본질의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일상에서 찾는 지혜: 본질을 보는 눈

 데카르트의 밀랍 실험은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을 보는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소비 생활에서 우리는 종종 제품의 겉모습이나 광고에 현혹됩니다. 예를 들어, 한정판이라는 문구나 화려한 포장에 이끌려 구매를 결정하기도 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실질적인 필요나 가성비를 따져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이 옷을 입으면 멋있어 보일 거야", "이 가방이 있으면 인정받을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정작 필요한 것은 옷의 실용성이나 가방의 기능성일 수 있습니다. 표면적인 매력이 아닌 진정한 가치를 보는 눈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SNS에서 화려해 보이는 친구의 일상이나, 겉으로 보이는 성공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SNS에 올라온 화려한 여행 사진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그 사람의 진정한 행복이나 내면적 성취를 반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겉모습에만 현혹되지 않고,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이성적으로 접근하여 그 사람의 성품, 배려심, 그리고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그 사람의 내면, 즉 생각과 마음가짐에 있다는 것을 이성은 알고 있죠. 데카르트가 밀랍의 본질을 알아보았듯, 우리도 겉모습이 아닌 그 사람의 본질을 보려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데카르트 철학의 핵심: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밀랍 실험은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결론에 도달하게 한 중요한 실험이었습니다. 감각은 불확실하고 변화무쌍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이성의 활동만큼은 확실합니다. 데카르트는 바로 이 '생각하는 나'의 존재야말로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이며, 이성을 통해서만 우리가 존재의 본질과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현대 철학자들은 감각과 이성이 서로 보완적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머리어 맥도웰(John McDowell)은 감각적 경험과 이성적 사고가 상호작용하여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앨러스터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는 도덕적 판단에서 감각과 이성이 함께 작용해야 함을 강조하며, 단순한 감각 경험이 아닌 이성적 숙고가 우리의 도덕적 결정을 이끌어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하지만 밀랍 실험이 보여주는 교훈, 즉 표면적 현상을 넘어 본질을 이해하려는 이성의 노력이 진정한 앎으로 가는 길이라는 통찰은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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