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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Dec 10. 2024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낫고, 배부른 바보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It is better to be a human dissatisfied than a pig satisfied; better to be Socrates dissatisfied than a fool satisfied')(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중에서)


 공리주의는 인간의 쾌락과 고통을 기준으로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윤리 이론입니다. 쾌락은 선이고, 고통은 악이라는 겁니다. 공리주의는 개인적 차원의 쾌락과 사회적 차원의 쾌락이 모두 도덕적 가치를 가진다고 보았습니다.

 벤담과 밀은 이러한 공리주의적 원칙을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벤담은 모든 쾌락을 동등하게 평가하며 양적으로 측정하려고 했지만, 밀은 쾌락의 질적 차이를 강조하며 정신적 만족이 육체적 만족보다 더 고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쾌락을 이해하고 추구하는 방식에 있어 중요한 논쟁점이 됩니다. 

 제레미 벤담은 모든 쾌락이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쾌락을 양적으로 평가하며, 단순히 더 많은 쾌락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먹는 쾌락과 독서를 통해 얻는 지적인 쾌락을 동일한 가치로 간주되었습니다. 육체적 쾌락과 지적인 쾌락을 어떻게 양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접근은 쾌락의 질적 차이를 간과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심오한 경험이나 장기적 만족은 단기적이고 육체적인 즐거움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벤담의 관점을 비판하며, 쾌락에는 질적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독서, 예술 감상, 철학적 성찰과 같은 정신적 쾌락이 육체적 쾌락보다 고귀하며,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보았습니다. '배부른 돼지의 쾌락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지적 쾌락'을 선택하겠다는 밀의 말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쾌락의 본질에 대한 논쟁을 넘어서, 우리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겨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함의를 가집니다. 벤담의 관점은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즐거움을 최적화하려는 경향을 나타내지만, 밀의 관점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장기적이고 깊이 있는 만족을 추구할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소비문화와 성찰적 삶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두 공리주의자들 중 현대사회는 벤담의 관점에 더 많이 따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소셜 미디어에서의 '좋아요' 수집, 음식 배달 서비스의 확산, 쇼핑 플랫폼에서의 즉각적인 구매 만족과 같은 현대적 일상은 단기적 쾌락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러한 소비문화는 순간의 즐거움을 극대화하지만, 장기적인 성장과 깊이 있는 성찰을 종종 희생하게 만듭니다. 또한 오랜 시간 의미를 남기는 경험이나 장기적 만족을 단기적으로 육체적인 쾌락으로 대체하려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밀의 관점은 현대사회에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즉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기 쉬운 환경 속에서도, 성찰과 성장을 통해 더 깊은 의미와 만족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에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책을 읽거나, 운동을 통해 체력을 키우며 자기 계발에 집중하는 것이 더 큰 성취감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순간의 즐거움은 줄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더 깊은 만족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인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학생이 도전적인 과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즉각적인 쾌락을 주지 않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더 큰 성취와 보람을 안겨줍니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란 원칙을 내세웁니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어 쾌락의 조건, 즉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속에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평등한 분배와 복지정책을 위한 노력을 촉구합니다. 그런데 이런 쾌락과 행복의 물적 토대 마련으로 진정한 행복은 실현되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서 밀의 통찰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배부른 상태만으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살아가며 의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정신적, 문화적 환경이 필요합니다. 물질적 복지를 넘어 정신적 복지까지 확장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필요합니다. 이는 즉각적 쾌락에 함몰된 현대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지 중요한 방향제시를 합니다. 너무나 유명해서 상식화되어 버린 밀의 말을 여기서 다시 소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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