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으로 우리는 재산을 잃으면 슬퍼하며 울고, 곰을 만나면 겁에 질려 도망치며, 경쟁자에게 모욕을 당하면 화가 나서 반격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방어하고자 하는 가설은 이러한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울기 때문에 슬퍼하고, 때리기 때문에 화가 나며, 떨기 때문에 겁을 먹는다는 것입니다."(Common sense says, we lose our fortune, are sorry and weep; we meet a bear, are frightened and run; we are insulted by a rival, are angry and strike. The hypothesis here to be defended says that this order of sequence is incorrect... we feel sorry because we cry, angry because we strike, afraid because we tremble.)(윌리엄 제임스, <감정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우리는 보통 감정이 행동을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우리를 떠나면 슬퍼서 눈물이 흐르고, 무서운 동물을 만나면 공포에 질려 도망치며, 상대방에게 모욕을 당하면 화가 나서 반격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윌리엄 제임스라는 심리학자는 이 순서가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가 울기 때문에 슬퍼지고, 떨기 때문에 겁을 먹으며, 때리기 때문에 화가 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제임스의 말은 마치 꼬리가 개를 흔든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이론은 당시 심리학이 감정을 주로 내적인 현상으로 보던 관점에서 벗어나, 감정과 행동 간의 관계를 재조명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제임스는 감정이 행동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감정을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숲속을 걷다가 갑자기 커다란 갈색 곰이 눈앞에 나타났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곰의 거친 숨소리와 광택이 나는 털, 날카로운 발톱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우리는 보통 이런 상황에서 겁이 나서 도망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임스의 설명에 따르면,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곰을 보자마자 다리가 떨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며 손바닥에 땀이 나는 신체 반응이 먼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떨림과 심장 박동을 느낀 우리가 "아, 무섭다!"라고 감정을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곰을 만났을 때 우리는 먼저 뛰기 시작하고, 그 다음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순서는 뇌과학적으로도 뒷받침됩니다. 현대 연구에 따르면, 외부 자극은 뇌의 편도체를 통해 매우 빠르게 처리되며, 이 과정에서 '싸우거나 도망치기'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이 즉각적으로 유발됩니다. 신체는 심박수 증가, 땀 분비, 근육 긴장과 같은 반응을 먼저 일으키고, 이후 대뇌 피질이 이를 인지하여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형성합니다. 이는 감정이 행동보다 먼저라는 기존 관점을 뒤집으며, 신체의 자동 반응이 감정 경험의 기초를 제공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은 단순히 심리학적 주장에 그치지 않고, 감정과 행동의 신경과학적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데에도 기여합니다.
제임스의 통찰을 일상에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기분이 우울할 때 억지로라도 웃어 본 적 있습니까? 처음엔 어색하지만, 몇 초 지나면 조금씩 기분이 나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웃음의 피드백 가설' (facial feedback hypothesis)이라는 심리학 이론과 관련 연구에 따르면, 웃는 표정이 뇌의 긍정적 감정을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합니다. 바로 제임스의 이론이 설명하는 원리입니다. 우리의 웃는 행동이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중요한 발표를 앞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두려움에 떨며 주눅이 든 채 서 있으면 긴장만 더 커집니다. 하지만 어깨를 펴고 당당한 자세를 취해 보십시오. 그 행동만으로도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고,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할 것입니다.
제임스의 이론은 참 독창적이지만, 모든 감정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또 다른 심리학자인 캐넌과 바드는 감정과 신체 반응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떨리는 몸과 두려운 마음이 따로따로,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또 샤흐터와 싱어는 "똑같은 신체 반응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심장이 빨리 뛸 때 놀이공원에서는 설렘으로 느껴지지만, 밤길에서는 공포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임스의 이론을 일상에서 실험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오늘 하루 동안 웃음의 효과를 직접 경험해 보십시오. 기분이 별로일 때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어 보십시오. 또는 긴장되는 순간에 자신감 있는 자세를 취해 보십시오. 행동이 감정을 바꿀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할 기회입니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제임스는 행동이 열쇠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작은 행동 하나가 당신의 기분을 어떻게 바꿀지 기대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