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 대해 공감하는 마음은 선한 인격과 매우 가깝다.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결단코 선한 사람일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Since compassion for animals is so intimately associated with goodness of character, it may be confidently asserted that whoever is cruel to animals cannot be a good man.)(쇼펜하우어, <도덕의 기초에 관하여> 중에서)
쇼펜하우어는 우리 삶에서 도덕성을 설명할 때 중요한 열쇠로 "연민(Mitleid)"을 제시합니다. 쉽게 말해, 연민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의 일처럼 느끼고,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행동하려는 마음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는 행동은 연민의 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연민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진정으로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라고 강조합니다.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세상을 두 가지 방식으로 경험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를 "의지와 표상"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의지"는 우리 안에 있는 본능적인 욕망과 동기를, "표상"은 우리가 세상을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쇼펜하우어는 이 세상이 기본적으로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았습니다.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계에서도 우리가 도덕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은 바로 "연민"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연민은 "나와 타인의 경계를 넘어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느끼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한겨울 추운 길에서 얇은 옷만 걸친 노숙자를 발견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때 자신이 입고 있던 따뜻한 코트를 벗어 건넨다면, 그 행동은 단순히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이런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도덕적 행동이라고 평가합니다.
연민은 우리를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만들고,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 행동하게 만듭니다. 쇼펜하우어는 도덕적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동기를 제시했는데요, 그것은 이기심(Egoism), 악의(Maliciousness), 그리고 연민(Mitleid)입니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도덕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연민뿐이라고 그는 주장합니다. 즉, 연민은 우리의 본능적인 이기심을 넘어서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심리학에서도 쇼펜하우어의 연민 개념은 "공감(Empathy)"라는 이름으로 널리 연구되고 있습니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을 함께 느끼는 능력을 말합니다. 2011년 한 연구에서는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들이 갈등 상황에서 타인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는 데 더 뛰어나다는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공감이 단순한 개인적 특성이 아니라, 사회적 유대와 문제 해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재미있는 것은 맹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맹자는 인간의 도덕성과 연민의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 "이양역지(以羊易之)"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나라 선왕이 국가 행사에 제물로 사용될 소가 끌려가며 떨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소가 제단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소 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명령합니다. 신하가 "왜 양으로 바꾸셨습니까?"라고 묻자, 임금은 이렇게 답합니다. "그 소가 제단으로 끌려가는 것을 내 눈으로 보니 마음이 아팠다."
맹자는 소는 불쌍하고 양은 불쌍하지 않냐는 반문에 답합니다. 선왕이 끌려가는 소는 보았지만 양은 보지 못했다는 데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소에 대해서 알고 관계를 맺었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공감이라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쇼펜하우어의 동물에 대한 공감도 동물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감하여 동물과도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은 선한 인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쇼펜하우어나 맹자 모두 도덕의 시작은 공감을 통해 이어지는 관계가 도덕성의 기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도덕을 말할 때 함께 지켜야 할 규칙을 먼저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외적인 규칙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형성이 우선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관계가 곧 도덕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