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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Dec 11. 2024

신화는 종교가 아니다


"이렇게 조화롭고 완벽하며 스스로와 조화를 이루는 우주 속에서 오직 인간의 삶만이 우연에 의해 휘둘리며, 우리의 운명만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두렵기만 하다."(It would be frightening to think that in all the cosmos, which is so harmonious, so complete and equal to itself, that only human life is happening randomly, that only one's destiny lacks meaning.)(엘리아데, <루마니아 지혜의 작은 책> 중에서)


 조화롭고 완벽한 우주 속에서 인간의 삶은 왜 이렇게  무질서하고 예측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의문은 오래된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연재해나 갑작스러운 죽음 같은 사건은 우리에게 큰 두려움을 줍니다. 엘리아데는 이런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인간이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말합니다.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기 위한 인간의 본능적인 도구입니다.


 옛날로 돌아가 보면, 원시인들에게 세상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맹수의 공격을 피하거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자연재해와 질병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카오스"였고, 이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엘리아데는 신화를 "혼돈(카오스)을 질서(코스모스)로 바꾸기 위한 도구"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고대의 창조 신화들은 세상이 혼돈 속에서 시작되어 신의 힘으로 질서 있는 세상으로 바뀌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단순한 설명을 넘어, 인간이 삶의 불확실성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빌로니아의 '에누마 엘리쉬' 신화에서는 마르두크 신이 혼돈의 여신 티아맛을 물리치고 그녀의 몸으로 하늘과 땅을 만들며 세상을 조직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단순한 우주의 기원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혼란 속에서도 삶의 질서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자연재해나 죽음 같은 두려운 사건들은 과거 사람들에게 큰 공포를 안겨주었지만, 신화는 이런 혼란을 설명하고, 인간이 우주의 조화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오늘날 신화는 옛날처럼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엘리아데는 현대인도 여전히 신화적인 사고를 통해 혼란을 극복한다고 말합니다. 자기계발서나 심리학 이야기는 현대의 신화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공은 작은 습관의 반복에서 온다"는 메시지를 담은 자기계발서는 사람들이 삶의 혼란을 극복하고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줍니다. 또 "트라우마는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심리학적 이론과 처방은 고난을 이겨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합니다. "힘든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말은 고대의 영웅 신화처럼 개인에게 어려움을 극복할 동기를 줍니다.


 현대인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신화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포츠 선수들이 경기 전에 반복적으로 하는 루틴은 마음을 정리하고 질서를 찾는 현대적 신화의 예입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행운의 물건을 챙기거나, 하루를 마친 뒤 명상을 통해 마음을 정리하는 것 역시 삶의 혼란 속에서 안정감을 찾으려는 시도입니다.


 엘리아데의 이론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삶의 혼란을 질서로 바꿔주는 신화를 가지고 있나요?" 신화는 꼭 종교나 옛날 이야기 속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삶의 혼란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는 이야기나 믿음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신화일 수 있습니다.


 삶이 무질서하게 느껴질 때, 어떤 이야기나 습관이 당신에게 안정감을 주나요? 어려운 상황에서 위로가 되었던 이야기를 떠올려 보세요. 그것이 바로 당신의 신화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신화가 당신의 삶에 어떤 질서를 가져다줄지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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