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그 집에서 인간은 거주한다. 사유하는 자들과 시 짓는 자들이 이 거처의 수호자들이다."(Language is the house of Being. In its home man dwells. Those who think and those who create with words are the guardians of this home.)(마르틴 하이데거, <휴머니즘에 관한 편지> 중에서)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하지 못해 평생 후회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우리는 종종 말은 그저 소리나 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해"라는 말이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거나, "미안해"라는 말이 관계를 회복시키는 순간을 떠올려 보면, 말이 단순한 소리를 넘어서는 힘을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가 우리의 마음을 전달하고, 상대방과 우리의 존재를 연결하기도 합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 불렀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마주치는 모든 대상들에 이름을 붙여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름을 통해 부여한 의미는 그 대상의 기능일 수도 있고, 가치와 의미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언어로 된 이름을 가진 대상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또한 언어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표현하며,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방식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언어는 우리가 머물고 살아가는 삶의 근본적인 집입니다.
하이데거는 이 언어라는 집을 사유하는 자(철학자)와 시인이 지키고 가꾼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철학자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인간의 사고와 인식의 구조를 탐구하며 언어의 가능성을 확장했습니다. 시인 이상은 "오감도"에서 기존의 언어 체계를 깨고 독창적인 표현으로 새로운 감각을 제시했습니다. 이처럼 사유하는 자와 시인은 각자의 방식으로 언어라는 집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그럼 사유하는 자의 역할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볼까요? 사유하는 자는 언어를 통해 존재와 세상을 깊이 탐구합니다. 그들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뒤에 숨겨진 의미를 밝혀냅니다. 예를 들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법적 정의를 넘어, 정의가 인간의 삶과 공동체에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묻습니다. 철학은 이런 언어적 탐구를 통해 우리의 사고와 존재를 더 풍요롭게 만듭니다.
시인은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시인은 단어와 리듬, 이미지를 통해 일상적 언어를 새롭게 느끼게 만듭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생각해 보세요. 이 시는 단순히 별을 세는 행위를 넘어, 고독과 희망,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깊이를 언어로 풀어냅니다. 시인은 우리에게 언어의 경계를 넘는 새로운 감각을 선사합니다.
사유하는 자와 시인은 언어를 통해 우리가 더 깊이 사유하고, 더 풍요롭게 느끼도록 도와줍니다. 이는 언어료로 표현되고 생각을 바꾸거나 풍요롭게 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철학과 같은 깊은 사고, 시를 통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은 언어를 바꾸고, 그렇게 바꾼 언어는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큰 힘이 됩니다.
이렇듯 중요한 언어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철학자나 시인의 언어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루 동안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을 돌아보면, 그 단어들이 우리의 감정과 관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버드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긍정적인 언어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은 더 높은 수준의 행복감을 느끼며, 더 건강한 대인관계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반면, 부정적인 언어는 스트레스와 갈등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 부정적인 언어의 세계: "힘들다", "안 된다", "못하겠다" 같은 말을 자주 사용할수록 우리는 더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 긍정적인 언어의 세계: 반대로 "괜찮아", "잘 될 거야", "시작해 보자" 같은 말은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우리가 모두 직업적인 철학자나 시인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이데거가 말한 언어라는 집을 지키고 가꾸는 일은 특정 직업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언어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가리킨 것이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 깊은 사유와 반성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지적 능력의 향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영역을 더 확장하는 기회가 됩니다. 또한 시인과 같이 늘 사용하는 언어를 새로운 시선을 담아 사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으로 인해 우리는 살아가며 마주치는 사소한 돌멩이 하나, 들꽃 하나를 만나더라도 큰 행복과 기쁨을 일구어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는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고 말합니다. 아무 소용없고 더럽다고 생각했던 연탄재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언어는 우리가 세상과 연결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언어는 우리가 살아가는 존재의 집입니다. 이러한 언어를 우리는 소중히 가꾸고 다듬어야 합니다. 마치 자기 집을 정성스럽게 청소하고 가꾸어 그 속에서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기회를 얻듯이 말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언어로 당신만의 집을 지을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