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현재는 미래를 삼켜가며 끊임없이 전진하는 과거입니다. 실은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각조차 이미 기억입니다."(The pure present is an ungraspable advance of the past devouring the future. In truth, all sensation is already memory.)(앙리 베르그송, <물질과 기억> 중에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순수한 현재'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정된 순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현재란 과거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흐름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현재는 하나의 순간으로 고정할 수 있는 분리된 점이 아닙니다.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강물은 쉼 없이 굽이치고 변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물줄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감각과 경험은 어디에 있을까요?
베르그송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감각이 기억과 얽혀 있다고 봤습니다.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단순한 순간의 감각이 아니라, 과거의 축적된 경험이 함께 작동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들어보세요. 첫 소절이 흘러가는 동시에 이미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다음 소절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곡 전체를 이해하게 됩니다. 또 다른 예로, 특정 향기를 맡으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냄새는 현재의 감각이지만, 동시에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며 감정까지 자극합니다. 이처럼 감각과 기억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베르그송에게 현재는 고정된 지점이 아닙니다.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흐름입니다. 예를 들어, 창문을 열고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지금 느끼는 바람의 시원함은 과거에 경험했던 비슷한 바람의 기억을 불러옵니다. 동시에 이 바람이 가져다줄 상쾌한 기분과 이후의 하루를 기대하며 미래를 준비합니다. 현재는 이렇게 과거와 미래가 감각을 통해 얽히고 연결된 과정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베르그송은 뉴턴적 시간 개념처럼 시간을 고정된 점들의 연속으로 이해하려는 방식에 반대했습니다. 그는 시간이 끊어지지 않는 ‘지속(durée)’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시간은 연속적으로 흐르며, 우리는 이 흐름 속에서 과거의 경험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통해 현재를 경험합니다. 그는 시간의 흐름을 멜로디의 흐름에 비유했습니다. 멜로디를 생각해보세요. 각 음이 하나하나 이어지면서 곡의 선율을 만들어냅니다. 이전의 음은 다음 음으로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음악적 흐름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멜로디는 단지 개별적인 음들의 집합이 아닙니다. 전체가 하나의 조화를 이루며 음악이라는 연속성을 형성합니다. 우리의 현재도 이와 마찬가지로, 고정된 점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만나 만들어지는 움직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베르그송의 철학적 통찰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우리는 현재를 독립적이고 고정된 상태로 생각하거나, 과거와 미래를 단절된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모든 순간이 과거와 미래의 연결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 냄새가 추억을 떠올리고, 그 추억이 현재에 영향을 미칩니다. 오늘의 선택이 미래의 삶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더 풍부한 삶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베르그송은 현재란 단순히 그 순간만의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금 느끼는 모든 감각과 내리는 모든 선택은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힘을 가집니다. 마치 강물이 쉼 없이 흘러가듯, 시간은 멈추지 않고 이어집니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감각과 기억,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며 살아갑니다. 오늘 당신의 현재는 어떤 기억을 담고 있으며,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나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시간을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