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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Feb 04. 2024

1. 인생 스타트업과 스토아 철학

  2019년 뉴욕타임즈에 스토아 철학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스토아 철학자와 그 신봉자들, 구글부터 애플까지 기업의 정신적 지주가 되다”란 부제가 붙은 기사였다. 최근 20년 스토아 철학이 실리콘밸리의 이끄는 라이프 스타일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스토아 철학은 2천 여년 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이다. 낡아도 너무 낡은 이론이다. 아이폰도 없고 노트북도 없었던 옛날 사람들의 철학이다. 우리가 낡고 고리타분하다며 배격하는 유교만큼 오래 되었다. 그런 구닥다리가 다른 곳도 아닌 현대문명의 첨단을 대표하는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한다니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스토아철학이 실리콘밸리의 철학으로 각광받는 이유가 뭘까?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 제논도 원래 기업인이었다. 아테네에서 해상 무역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해상 무역이란 위험을 감수한 도전의 대가로 큰 이익을 얻는 사업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기업 운영의 모토는 실리콘밸리 기업과 일치한다. 스토아 철학자 제논은 원래 오늘날로 치면 실리콘밸리의 CEO였다.

고대의 해상 무역은 변덕스런 해상 환경의 위협을 감수해야 했다. 갑자기 해류가 바뀌거나 폭풍이라도 불어닥치면 모든 것이 일순간에 무너졌다. 제논은 폭풍 속에서 배와 무역품을 모두 잃었다. 겨우 자기 목숨만 건질 수 있었다. 이 실패의 경험은 제논에게 평생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이다. 제논은 인간의 삶이 해상 무역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인생이라는 항해는 언제 폭풍을 만날 지 모른다. 그 폭풍의 위협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스토아 철학이다.


  다른 스토아 철학도 마찬가지다. 키케로는 로마의 공화정이 몰락하고 제정이 탄생하는 격변의 시기를 살았던 유력 정치인이었다. 온갖 정치적 술수와 음모 속에서 항상 위태로운 삶을 살아야 했다. 에픽테토스는 노예였다. 주인의 변덕스러움에 무방비로 노출된 삶을 살았다. 세네카는 정치인이 된 후 유배를 당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말년에는 폭군 네로의 교사가 되었다가 반란 음모에 연루된 혐의로 자살을 명령받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황제였다. 그는 제국의 정치와 전쟁 속에서 제대로 된 황제로 살아가기 위해 늘 몸부림쳐야 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인생 폭풍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 폭풍들 속에서 나온 보석같은 삶의 지혜가 바로 스토아 철학이다.



  스토아 철학의 힘이 증명된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제임스 스톡데일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이다. 전투기 비행을 하던 중 격추되어 전쟁 포로가 된다. 열악한 포로 수용소의 환경, 끔찍한 고문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포로들도 많았다. 스톡데일은 많은 미군 포로들이 빠른 석방을 낙관하는 걸 목격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희망이 좌절되자 심한 상실감에 절망했다. 그 상실감은 죽음으로 이어졌다.


  스톡데일은 자신이 빠르게 석방되리라는 헛된 희망에 의지하지 않았다. 포로 수용소의 가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가 선택한 것은 섣부른 낙관 대신 정확한 현실 인식이었다. 그 현실에서 진정한 희망을 찾았다. 그렇게 8년이라는 포로생활을 이겨냈다. 여기서 희망의 역설을 뜻하는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 라는 심리법칙이 나왔다.


  스톡데일의 현실적 낙관주의는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스톡데일은 베트남전에 참전하기 전 에픽테토스의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 그는 자신의 전투기에서 낙하산으로 떨어지며 “나는 이제 에픽테토스의 세계로 들어간다.”라고 생각했다.


  해군 사관학교 철학교수였던 낸시 셔먼은 [스토아적 군인](The Stoic Warrior)이란 책에서 스토아 철학이 지구력, 자제력, 용기를 갖게 하여 강한 군인을 만든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전 국방장관인 제임스 메티스도 스토아 철학과 군인 정신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했다.


  기업인, 군인 외에 스토아 철학에 열광하는 운동 선수도 많다. NBA 선수인 르브론 제임스, 미식축구의 전설적인 쿼터백 톰 브레디, 테니스 선수 노박 조코비치 역시 스토아 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운동 선수도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는 직업이다.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승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견뎌야 한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심하면 경기력에 약해진다는 사실이다. 승리하려면 평정심이 중요하다. 평정심은 스토아 철학의 핵심적 가르침이다.



  “인생은 바다다.” 언제 폭풍이 밀려올지 예측할 수 없다. 그 엄청난 폭풍 앞에 인간의 능력은 너무 작다. 통제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 바다를 떠날 수는 없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기업인과 직장인, 정치가, 군인, 운동 선수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이 통제불가능한 운명의 바다 위에 떠 있다. 이 엄연한 현실을 부정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수 많은 철학과 종교가 그런 시도의 산물이다. 하지만 대부분 스톡데일의 동료 포로들처럼 헛된 희망과 환상에 의지했다. 그 헛된 시도는 대부분 좌절되었다. 현대인의 삶은 절망에 빠져있다.


  하지만 여전히 희망은 남아 있다. 바로 스토아 철학이다. 그 희망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허황된 목표 같은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스토아 철학을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스토아 철학을 ‘이론’으로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스토아 철학을 ‘살았다.’ 그래서 성공한 정치인, 기업가, 군인, 운동선수가 되었다. 로마 황제라는 막중한 임무도 훌륭하게 감당했다.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있으니 한 번쯤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스토아 철학이 유일무이한 진리를 가르칠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은 아니다. 스토아 철학에 로또 당첨처럼 인생을 한 순간에 바꿀 마법이 숨어 있지 않다. 스토아 철학은 행복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파는 '스토어 완제품'이 아니다. 그럼에도 귀를 기울여 보라고 권유하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감정과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절망과 혼동에 빠진 삶을 고치려고 했다.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을 고치는 의술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의사로 보지 않았다.


세네카는 의사 같은 전문가 행세를 하는 대신에 오히려 자신의 역할을 환자의 역할과 더 비슷한 것으로 보았다. 이를테면, 병원 침대에 누워서 곁에 있는 동료 환자들에게 자신이 받고 있는 치료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설명해주는 역할이다.(로마 황제처럼 생각하는 법, 도널드 로버트슨, p54)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론과 삶에서 완전하지 않았다. 우리와 똑같이 불완전한 보통의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노력했다. 삶을 아프게 하는 병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투병 동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그들의 진심어린 충고에 분명 우리에게 도움을 줄 지혜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 지혜를 행복한 삶의 처방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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