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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보노보 vs 침팬지 : 프란스 드 발

: 인간 도덕성의 진화적 뿌리

by 정지영

1. 도덕성은 껍데기에 불과한가?

1970년대~1990년대 생물학계에서는 인간의 도덕성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생물학자들은 대부분 인간의 도덕성이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이른바 '껍데기 이론'(Veneer Theory)에 따르면, '도덕성'이라는 얇은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있으나 한 꺼풀만 벗겨내면 악하고 폭력적인 본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마이클 기셀린(Michael Ghiselin)은 이러한 관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감상주의만 벗겨낸다면, 진심어린 도움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협동이라 불렸던 것은 기회주의와 빼앗기의 혼합에 불과하고 (…) 자기 이익대로 행동할 완전한 기회만 부여된다면, 인간이 인간을 두들겨 패고, 고통을 주고, 살인하는 것을 제약하는 것은 오직 그의 편의성 밖에 없다. 그 대상이 그의 형제든, 배우자든, 부모든, 혹은 자녀들이든 말이다. '이타'라는 말을 지우고, 거기서 '위선'의 존재를 보라." (Ghiselin, The Economy of Nature and the Evolution of Sex, 1974:247)




당시 생물학자들은 인간이 본성상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근거로 침팬지를 들었다. 침팬지는 육식동물이며 동족을 살해하여 잡아먹기까지 한다. 그런데 침팬지는 유인원들 중 인간과 가장 가깝다. 인간과 약 99% 가량 DNA를 공유한다. 침팬지와 같은 본성을 가진 인간이 도덕적인 척 흉내를 내고 있으나 언제든 침팬지와 같은 폭력성을 드러내고 만다고 믿었다.

© anritikhon, 출처 Unsplash


당시 생물학자들은 인간이 본성상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근거로 침팬지를 들었다. 침팬지는 육식동물이며 동족을 살 잡아먹기까지 한다. 그런데 침팬지는 유인원들 중 인간과 가장 가까워 약 99% 가량 DNA를 공유한다. 이들은 침팬지와 같은 본성을 가진 인간이 도덕적인 척 흉내를 내고 있으나 언제든 침팬지와 같은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었다.


네덜란드 출신 동물학자 프란스 드 발은 이러한 '껍데기 이론'을 비판하며, 침팬지와 마찬가지과 비슷한 DNA를 가진 보노보를 살펴볼 것을 제안했다. 그는 침팬지와 보노보를 다음과 같이 비교했다.


드 발은 인간이 침팬지와 보노보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은 잔인하고 이기적이며 폭력적인 면도 있지만 동시에 인정 많고 이타적이며 평화적인 면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침팬지조차도 공격성과 이기심만 가지고 있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공격성을 억제하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강조한다.

© mediaecke, 출처 Unsplash


이러한 관점은 '껍데기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인간의 도덕성이 단순한 위선이 아닌 진화의 산물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2. 프란스 드 발의 사회성 이론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은 도덕성이 진화의 산물이며, 영장류와 인간의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의 연구는 도덕적 행동이 단순히 인간의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본능적 특성임을 강조한다.


(1) 공감과 사회적 유대

드 발은 공감이 도덕적 행동의 기초라고 주장한다. 그는 영장류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이에 반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침팬지나 보노보는 동료가 고통을 겪을 때 위로하거나 도움을 주는 행동을 보인다. 이는 공감이 단순히 인간의 특성이 아니라, 진화적으로 형성된 본능임을 시사한다.


공감이 어떤 단계를 거치며 진화했을까?

첫째, 공감의 가장 기초적인 형태는 감정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다. 영장류는 어느 한 마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영장류도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한다. 이런 감정 전염은 집단 내에서의 공감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다.


둘째, 침팬지는 부상당한 동료를 돌본다. 보노보는 슬퍼하는 동료를 위로하는 행동을 한다. 이는 공감의 다음 단계로, 동료의 감정을 인식하고 이에 반응하는 능력인 동류의식(Kin Recognition)이다.

© sid_suratia, 출처 Unsplash


셋째, 자기-타자 구분(Self-Other Distinction)이다. 진화가 진행됨에 따라, 동물들은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는 능력을 발달시켰다. 이는 고차원적 공감의 기초로,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자신의 감정과 구분하는 능력이다. 침팬지가 거울을 보고 자신을 인식하는 실험은 자기-타자 구분 능력을 보여준다. 이는 더 복잡한 형태의 공감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넷째, 공감적 관심(Empathic Concern)이다.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고 이에 반응하는 행동적 공감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 그 감정을 경감시키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보노보는 동료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성행위를 하거나, 침팬지가 동료의 상처를 핥아주는 행동을 한다.


다섯째,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이다. 타인의 감정 상태뿐만 아니라 그들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 이해하는 능력이다. 이는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며, 협력과 상호 지원을 강화한다. 인간은 타인의 상황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는 행동을 한다. 이는 인지적 공감의 발현이다. 영장류에서도 유사한 행동이 관찰된다.



(2) 협력과 상호주의

프란스 드 발은 영장류의 행동을 연구하면서 협력과 상호주의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동임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인간 사회에서도 이러한 행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협력 (Cooperation)

협력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며, 드 발은 이를 다양한 예시를 통해 설명한다. 기초적 협력의 예로는 침팬지의 집단 사냥과 도구 사용이 있다. 침팬지는 집단으로 사냥을 하며 서로 협력하고, 도구를 사용해 먹이를 잡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협력적인 행동을 보인다. 이러한 기본적인 협력은 집단 전체의 생존에 기여한다.

© miinyuii, 출처 Unsplash


더 복잡한 형태의 협력은 보육과 집단 방어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영장류는 자식을 키우는 과정에서 서로 협력하며, 어미가 부재 중일 때 다른 어른 영장류가 새끼를 돌보는 행동을 보인다. 또한,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집단을 방어하는 과정에서도 협력이 이루어진다. 침팬지는 무리를 지어 침입자를 쫓아내거나 방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신뢰와 호혜는 협력의 중요한 요소이다. 드 발은 영장류가 상호 호혜적 행동을 통해 신뢰를 쌓는다고 설명한다. 이는 한 개체가 다른 개체에게 도움을 주면, 나중에 그 도움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호 호혜적 행동은 집단 내에서 신뢰를 형성하고 협력적인 행동을 촉진한다.



상호주의 (Reciprocity)

상호주의는 협력의 또 다른 형태로, 드 발은 이를 세 가지 주요 원칙으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직접적 상호주의이다. 이는 "네가 나를 도우면 나도 너를 돕겠다"는 원칙에 기반한 직접적인 도움 주고받기이다. 예를 들어, 침팬지가 서로 털을 손질해 주는 행동은 직접적 상호주의의 예다. 털 손질을 받는 개체는 나중에 손질해 준 개체에게 도움을 줄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는 간접적 상호주의이다. 이는 "네가 다른 이를 돕는 것을 보았으니, 나도 너를 도울 것이다"는 원칙에 기반한 행동이다. 이는 개체들이 직접적인 상호작용 없이도 협력할 수 있게 한다. 간접적 상호주의는 사회적 평판에 의존하며, 도움을 주는 행동이 다른 개체들에게 알려질 때 협력을 촉진한다.


세 번째는 장기적 상호주의다. 드 발은 영장류가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상호주의를 실천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신뢰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침팬지 무리 내에서 오랜 기간 협력하는 개체들은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이는 무리의 안정성과 번영에 기여한다.



진화적 이점

협력과 상호주의는 생존과 번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협력적 행동은 집단 내의 자원 분배를 효율적으로 하고,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는 데 유리하다. 상호주의적 행동은 신뢰를 구축하고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며, 이는 집단 전체의 생존과 번식 성공률을 높인다.


프란스 드 발의 연구는 협력과 상호주의가 도덕적 행동의 근간을 이루며, 이러한 행동이 진화적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의 연구는 영장류의 행동을 통해 협력과 상호주의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동임을 보여준다. 이는 인간 사회에서도 협력과 상호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시사하며, 도덕성과 윤리적 행동의 진화적 기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3) 공평성과 도덕적 규범

프란스 드 발은 공평성과 도덕적 규범이 인간과 영장류의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행동이 도덕성의 근간을 이루며, 진화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평성 (Fairness)

드 발은 공평성이 인간과 영장류에게 본능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는 자원을 나눌 때 공정한 분배를 추구하며, 불공정한 대우에 강한 불만을 보인다. 그의 실험에서, 침팬지는 동일한 과제를 수행하고도 불공정한 보상을 받을 때 강하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인다.

© tingeyinjurylawfirm, 출처 Unsplash


도덕적 규범 (Moral Norms)

드 발은 도덕적 규범이 사회적 규칙으로서 인간과 영장류 사회에서 모두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수용 가능한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규정하며, 침팬지 무리에서는 싸움이나 음식 도둑질 같은 행동이 금기시되고 제재를 받는다. 이러한 규범은 주로 사회적 학습을 통해 전파되며, 젊은 영장류는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하여 규범을 학습한다.



진화적 이점

공평성과 도덕적 규범은 집단 내 조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구성원 간의 신뢰와 유대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갈등을 줄이고 협력을 촉진하여 집단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드 발의 연구는 도덕적 행동이 단순한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본능적 특성임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인간 사회의 도덕적 규범과 공평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하며, 도덕성과 윤리적 행동의 진화적 기원을 탐구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3. 결론 : 인간 도덕성의 진화적 기원

프란스 드 발의 연구는 인간과 영장류의 도덕성과 사회적 행동이 단순한 껍데기가 아니라, 진화의 산물이라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의 연구는 공감, 협력, 상호주의, 공평성 등의 도덕적 특성이 인간과 영장류 모두에게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본능적 행동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도덕성이 위선적이고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기존의 비관적인 이론을 넘어서, 도덕적 행동이 진화의 과정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본능적 특성임을 시사한다. 공감과 협력은 집단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며, 공평성과 도덕적 규범은 사회적 조화를 유지하고 신뢰를 강화한다.

© the_meaning_of_love, 출처 Unsplash


따라서, 인간의 도덕성은 단순히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진화적으로 형성된 본능적 특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인간 사회의 도덕적 규범과 윤리적 행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며, 현대 사회에서의 도덕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프란스 드 발의 연구는 우리가 인간 본성의 복잡성과 도덕적 행동의 진정한 기원을 깊이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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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교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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