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부정적 감정 해체하기
"증오란 외적 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3부 감정의 정의 7
"분노란, 증오에 의하여,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에게 해악을 가하도록, 우리를 자극하는 욕망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3부 감정의 정의 36
지하철에서 누군가 새치기를 한다.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주먹이 쥐어진다. '저 사람이 나를 무시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스피노자는 이 분노의 본질을 정밀하게 해부했다. 놀랍게도 그에 따르면, 우리의 첫 경험은 '분노'가 아니다. 모든 분노의 가장 깊은 뿌리에는 '슬픔(tristitia)', 즉 나의 존재력(코나투스)이 감소했다는 고통스러운 느낌이 자리하고 있다. 새치기는 나의 공간과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미세한 '슬픔'의 경험이다.
그렇다면 이 '슬픔'은 어떻게 '분노'라는 폭발적인 감정으로 변하는가? 바로 '상상(imaginatio)' 때문이다. 스피노자에게 상상이란, 사물의 전체 인과관계를 보지 못하고 감각에 들어온 단편적인 이미지로 성급하게 판단하는 '1종의 지식'이다. 우리는 새치기한 사람의 복잡한 사정(급한 약속, 부주의 등)을 알지 못한 채, "나를 무시했다"는 가장 단순하고 자극적인 원인을 상상으로 만들어낸다.
결국 분노란, 나의 존재력이 감소한 '슬픔'이라는 고통에, '저 사람 때문이야'라는 '상상'에 기반한 부적합한 관념이 결합된 것이다. 분노는 오해에서 비롯된, 슬픔에 잘못 붙여진 이름인 셈이다.
1. 존재력 감소 (슬픔)과 그 신경학적 실체
누군가의 비난이나 무례한 행동은 나의 사회적 가치를 위협하며 존재력을 감소시킨다. 이 '슬픔'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UCLA의 나오미 아이젠버거(Naomi Eisenberger) 교수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거절이나 모욕을 당할 때 우리 뇌의 등쪽 전대상피질(dorsal ACC)이 활성화된다. 놀랍게도 이 부위는 뜨거운 것에 데었을 때와 같은 물리적 고통을 처리하는 영역과 동일하다. 즉, 뇌는 사회적 상처를 실제 신체적 고통과 거의 동일하게 처리하며, 이는 코나투스가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는 명백한 생물학적 증거다.
2. 코나투스의 방어 반응과 편도체의 경보
나의 존재를 지속하려는 힘, 코나투스는 이 고통스러운 감소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즉시 원인을 찾는다. 이때 뇌의 위협 감지 시스템인 편도체(amygdala)가 즉각적으로 활성화되어 '싸움-도피(fight-or-flight)' 반응을 준비시킨다. 편도체의 반응은 이성적 분석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우리는 전체 상황을 파악하기보다 가장 즉각적이고 손쉬운 외부 원인을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다.
3. 적대적 관념 형성 (부적합한 관념)과 전전두엽의 기능 저하
"저 사람이 의도적으로 나를 공격했다"는 적대적 관념, 즉 부적합한 관념이 형성된다.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합리적 판단, 충동 조절, 공감 등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억제된다. '인지적 하이재킹(cognitive hijacking)'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작은 불편을 큰 공격으로 확대 해석하고, 복잡한 원인을 단순화하는 등 인지적 편향에 빠지기 쉬워진다.
이렇게 형성된 분노는 외부 원인에 의해 내 존재력이 좌우되는 전형적인 '수동적 정념(passio)'이다.
스피노자는 "정서는 오직 다른 더 강한 정서에 의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분노라는 수동적 정념을 다스리는 힘은, 그것의 원인을 명확히 이해하는 '적합한 관념'에서 나오는 더 강력한 정서, 즉 '이해에서 오는 기쁨'이다.
인지적 재평가와 전전두엽의 역할
"새치기한 저 사람에게는 내가 모르는 급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처럼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는 '인지적 재평가'는, 억제되었던 전전두엽을 다시 활성화시켜 편도체의 과잉 반응을 조절하는 핵심적인 신경과학적 과정이다. 이는 부적합한 관념(상상)을 적합한 관념(이성)으로 바꾸려는 의식적인 노력이며, 우리 뇌의 회로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행위다.
감정 라벨링과 자기 인식
"나는 지금 내 공간이 침해당했다고 느껴서 모욕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구나"라고 자신의 감정과 그 원인을 정확히 명명하는 '감정 라벨링'은, 감정을 관찰하는 메타인지를 작동시킨다. UCLA의 매튜 리버만(Matthew Lieberman) 연구에 따르면, 이 과정은 언어 및 자기 통제와 관련된 우측 복외측 전전두엽(right ventrolateral PFC)을 활성화시켜 편도체의 흥분을 가라앉힌다. 이는 감정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우리를 덜 수동적이게 만든다는 스피노자의 통찰을 정확히 증명한다.
스피노자가 꿈꾼 자유인은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분노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에너지를 지혜롭게 활용하는 사람이다. 분노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강력한 신호이자, 나의 코나투스가 위협받고 있다는 경고등이다. 이 신호의 의미를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그 에너지를 나의 힘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할 때, 우리는 비로소 분노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
신경과학적으로 분노는 뇌의 좌측 전전두엽을 활성화시켜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 동기(approach motivation)'를 높인다. 이 에너지를 상대방에 대한 파괴적인 공격성으로 표출하는 것은 편도체가 주도하는 수동적 정념에 머무는 것이다. 반면, 그 에너지를 부당한 상황을 바꾸려는 사회적 활동으로, 혹은 나 자신을 더 강하게 단련하는 운동이나 창작 활동으로 전환하는 것은, 전전두엽이 주도권을 잡고 코나투스의 힘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코나투스의 '능동적 표현(Actio)'이다. 분노는 오해에서 시작하지만, 이해를 통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드는 동력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