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동안 뜬금없는 진화론, 창조론 논쟁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이 단지 가설에 불과하다면, 창조론도 과학 수업에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언뜻 보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는 과학과 종교의 본질적 차이를 간과한 주장입니다. 이 문제를 칼 포퍼의 '반증가능성' 개념을 통해 살펴보고 교사의 입장에서 과학교과서에 창조론을 담아 가르치는 것이 적합한지 생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과학의 핵심: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
칼 포퍼는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반증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어떤 이론이나 가설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과학적 이론은 반드시 반증될 수 있어야 하며, 반증될 수 없는 이론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진화론을 연구하는 학자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의 이론이 틀렸다는 증거가 나오면 어떻게 할건가요?"라고. 그럼 대답할겁니다. "당연히 제 이론을 폐기하거나 수정해야죠."
진화론: 과학적 이론인 이유
진화론은 종종 "단지 이론일 뿐"이라고 폄하되곤 합니다. 하지만 과학에서 '이론'이란 단순한 추측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많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지지되는 설명 체계를 의미합니다.
진화론의 핵심 주장들은 반증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1. 화석 기록에서 현대적 포유류가 공룡보다 먼저 발견된다면?
2. DNA 분석 결과가 종 간의 유전적 관계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런 증거들이 발견된다면 진화론은 크게 수정되거나 폐기될 것입니다. '단지 가설에 불과하다'라며 창조론이 공격하는 바로 그 지점이 진화론을 과학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창조론: 종교적 믿음의 영역
반면 창조론은 어떨까요? 창조론의 핵심 주장 - 우주와 생명이 초자연적 존재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믿음 - 은 본질적으로 반증이 불가능합니다. 어떤 과학적 증거도 초자연적 존재의 개입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창조론이 틀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과학의 영역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창조론은 종교적 믿음의 영역에 속하며, 이는 과학 수업이 아닌 다른 맥락에서 다뤄져야 합니다.
학교의 과학 수업에서는 과학적 방법론을 따르는 이론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진화론은 이 기준을 충족하지만, 창조론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창조론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과학과 종교는 서로 다른 영역이며, 각각의 고유한 가치와 역할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이 차이를 이해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목표가 아닐까요?
과학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이 과학적 사고방식을 익히고, 증거에 기반한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과학의 경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란 낡은 논쟁에 대해 분명한 기준에 맞춰 판단하는 의견이 여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재 우리사회의 모습이 과학교육이 제대로 과학을, 그 기본정신과 원리를 가르치지 못했다는 증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사로서 반성하고 앞으로는 더욱 노력하겠습니다.